[연중 제22주일]조상들의 전통 (마르 7,1-8.14-15.21-23)
오늘 독서와 복음은 성경 말씀의 실천을 강조한다. 요르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모세는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하느님의 계명을 충실하게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 계명 안에 지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신명 4,1-2.6-8)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 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무엇을 보태서도 안 되고, 빼서도 안 된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주 너희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 6 너희는 그것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민족들이 너희의 지혜와 슬기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모든 규정을 듣고, ‘이 위대한 민족은 정말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이구나.’ 하고 말할 것이다. 7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8 또한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내놓는 이 모든 율법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시편 15(14),2-3ㄱ.3ㄴㄷ-4ㄱㄴ.5(◎ 1ㄱ)
◎ 주님, 당신의 천막에 누가 머물리이까?
○ 흠 없이 걸어가고 의로운 일을 하며, 마음속 진실을 말하는 이, 함부로 혀를 놀리지 않는 이라네. ◎
○ 친구를 해치지 않으며,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이라네. 그는 악인을 업신여기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존중한다네. ◎
○ 이자를 받으려 돈놀이 않으며, 죄 없는 이를 해치는 뇌물 받지 않는다네. 이 모든 것 행하는 그 사람, 영원토록 흔들림 없으리라. ◎
야고보서는 말씀을 듣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들은 말씀을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말씀에는 우리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다.(야고 1,17-18.21ㄴ-22.27)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17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옵니다. 빛의 아버지에게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분께는 변화도 없고, 변동에 따른 그림자도 없습니다.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21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22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27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은,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말로는 하느님을 공경하면서도 마음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을 수 있다.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들은 사람을 더럽힌다.(마르 7,1-8.14-15.21-23)
그때에 1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2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4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5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14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5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21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23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손을 씻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는 제자들을 두둔하신 것이 아니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전통을 지킨다는 미명 아래 거기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외면하거나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위선과 완고한 마음을 질책하셨습니다.
독서 말씀도, 모세를 통하여 선포된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 명령을 한 마디도 보태거나 빼지 말고 그대로 실천할 때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이 될 수 있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의 간청을 하느님께서 기꺼이 들어주신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에는 구원 능력이 있으니, 그저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말씀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고 충고하면서, 그 사람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 주며 자기 자신을 지켜 세상에 물들지 않게 하는 사람이라고 부연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말로 많은 일을 합니다. 설득하고 위로하고 위협하고 강요하는 등 많은 일이 인간의 말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고받는 말은 빈말이 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은 너의 생각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규정과 법규, 명령을 포함하여 하느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히브 4,12). 더욱이 하느님의 말씀은 변하지도 않고, 인간의 힘에 꺾이지도 않습니다. 그 말씀에는 지혜가 있고,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말씀으로 세상과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 말씀으로 계속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또한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본디 우리가 창조된 목적대로 완성되는 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야고 1,21).
<조상들의
전통에 관한 논쟁> 송영진 모세 신부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마르 7,6-8)."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정결 예식을 행하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본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왜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는가?" 라고 시비를 걸자(마르 7,5) 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정결 예식을 무시하셨습니다. "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루카
11,38)."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너희는 입술로만 하느님을 공경하고, 마음은
하느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는 위선자들이다. 2)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만 지킨다.
입술로만
하느님을 공경한다는 말은, 겉으로
보이는 어떤 형식만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만 행하면서 자기는
하느님을 공경한다고 말한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은
입술로 하는 생활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생활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예식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마음을 씻지 않고 몸만 씻으면서 자기들은
깨끗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이 정결 예식을 행하지 않는 것을 보면 '부정한(더러운)
사람'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정결 예식을 무시하셨을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무시하시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 했을 것입니다.)
1)
예수님께서는 "아무리 몸을 깨끗하게 씻어도 마음이 깨끗하지 않다면, 그런
사람은 깨끗한 사람이 아니다." 라는 것을 가르치시려고 의도적으로
정결 예식을 무시하셨을 것입니다.
2)
마실 물도 부족했던 당시의 그곳 상황에서, 일반
서민들은 규정대로 정결 예식을 행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서민들은 흔히 정결 예식을 무시하면서 살았고, 열성적인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만 정결 예식을 행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서민들 편에 서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3)
당시에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행했던 복잡하고 세세한 정결 예식은 구약성경에
있는 율법이 아니라 자기들이 만든 규정이었습니다. 그들만의
전통이었고 관습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일부러 무시하셨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의 계명'을 정결에 관한 계명으로 좁혀서 생각한다면,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9,2)." 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는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하느님의 계명은 지키지 않고, 몸을
씻는 일에 관한 전통만 지키고 있다." 라는 뜻이 됩니다. (마음이
깨끗해야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계명'과 '사람의 전통'이 대립되어 있는데, 신앙인은
'하느님의 계명'을 먼저 지켜야 하고, 그
계명 안에서 '사람의 전통'을 지켜야 합니다. 만일에
'사람의 전통' 때문에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또는
지키지 않는 일이 생긴다면, 그 전통을 없애야 합니다. (반대로,
'하느님의 계명' 때문에 '사람의 전통'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
전통을 유지하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고, 그냥 없애면 됩니다.)
당시의
서민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규정들은(전통과 관습들은) '무거운
멍에와 짐'이었습니다(마태 11,28). 그래서
그런 규정들은 신앙생활에 방해만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공경하는 일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교통
법규는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에 교통 법규 가운데에 생명을 보호하기는커녕 위협하는 규정이 있다면, 그
규정을 빨리 뜯어고치든지 없애야 합니다. '법'은
본래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고, 만들었다면
그 목적대로 실행해야 합니다. 그게
안 된다면 모두 '악법'이고, 악법은 없애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만든 전통이라는 것들은, 원래는
하느님의 계명을 잘 실천하기 위해서 만든 세부 지침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계명'의 근본정신은 '사랑'입니다. 그러니
'전통'의 근본정신도 '사랑'이어야 합니다.
또
'하느님의 뜻'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관해서 논쟁이 생겼을 때,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27)."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계명의 근본정신과 목적은 '사랑'이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교회가 '사랑'을 잊어버리고, '사람'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규칙'만 강조한다면, 누구든지 숨이 막혀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숨 막힐 정도로 엄숙한 것이 거룩한 것은 아닙니다.) 천진난만한 어린 아기가 엄마와 함께 있는 것 자체를 기뻐하는 것과 같은 그런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천사와 같은 어린 아기의 그 '기쁨'은 '거룩함'의 한 모습입니다. 그 기쁨은 엄격한 규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옵니다.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야고 1,21-22)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편인가요?
사실 어떤 사람의 말이라도 귀기울여 듣게 되면
나에게 유익한 양식이 됩니다.
사람의 말이 그럴진대
하느님의 말씀을 귀기울여 듣게 되면
얼마나 큰 축복이 따를까요?
야고보 사도는
그리하면 영혼이 구원받게 된다고 하네요.
다만 듣는 것으로 만족치 말고
말씀을 실행하라네요.
말씀을 전해받으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만 바쁘진 않으세요!
말씀을 나누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 말씀을 좋다고만 생각하고
생활 안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오늘 말씀도
공손히 감사한 마음으로 받습니다.
그리고 오늘 다른 사람의 말을
더욱 귀담아 들으려 노력하겠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새겨듣고 삶 안에서 실천하겠습니다.
그렇게 사는 오늘 되십시오.
[출처] 2015.08.30.|작성자 알타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