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간 모든 성인 대축일] (묵시 7,2-4.9-14; 1요한 3,1-3; 마태 5,1-12ㄴ)

2015. 11. 1. 오후 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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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1주간 모든 성인 대축일] (묵시 7,2-4.9-14; 1요한 3,1-3; 마태 5,1-12ㄴ)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Mt 5,1-12a<

오늘은 하늘 나라의 모든 성인을 기리는 대축일로, 하느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성인들의 모범을 본받고자 다짐하는 날이다. 특히 전례력에 축일이 별도로 지정되지 않은 성인들을 더 많이 기억하고 기리는 날이다. 동방 교회에서 먼저 시작된 이 축일은 609년 보니파시오 4세 교황 때부터 서방 교회에서도 지내게 되었다. 5월 13일에 지내던 이 축일을 9세기 중엽 오늘날의 11월 1일로 변경하였다. 교회는 이날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 뒤의 새로운 삶을 바라며 살아가도록 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준다. 또한 지상의 우리와 천국의 모든 성인 간의 연대성도 깨우쳐 준다.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 위령미사(연미사)란? / 위령성월

하늘 나라에서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의 무리가 하느님과 어린양을 찬미한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로 깨끗해진 이들이다'(묵시록의 말씀입니다. 7,2-4.9-14
나 요한은 2 다른 한 천사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인장을 가지고 해 돋는 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땅과 바다를 해칠 권한을 받은 네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3 “우리가 우리 하느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장을 찍을 때까지 땅도 바다도 나무도 해치지 마라.”
4 나는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인장을 받은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9 그다음에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10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구원은 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느님과 어린양의 것입니다.” 11 그러자 모든 천사가 어좌와 원로들과 네 생물 둘레에 서 있다가, 어좌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느님께 경배하며 12 말하였습니다. “아멘. 우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힘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13 그때에 원로 가운데 하나가, “희고 긴 겉옷을 입은 저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 하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14 “원로님, 원로님께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고 내가 대답하였더니,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 위령미사(연미사)란? / 위령성월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셔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우리도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고 그분처럼 될 것이다. 우리는 그날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요한 1서3,1-3)
사랑하는 여러분, 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Agnus Dei / 호세 카레라스 & 빈 소년 합창단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하고 슬퍼하는 사람, 온유하며 정의와 자비와 평화를 찾는 사람에게 하늘 나라를 약속하신다. 하늘 나라를 기다리는 이들은 행복하다.(마태 5,1-12ㄴ)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Agnus Dei / 호세 카레라스 & 빈 소년 합창단

천사의 인장을 받은 하느님의 종 십사만 사천 명! 시한부 종말론과 연관된 사이비 종파들은 구원받을 수 있는 숫자를 십사만 사천 명으로 못 박고 그 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이 숫자는 상징적입니다. 십사만 사천 명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만 이천 명씩 나온 숫자로서, 완전하게 가득 채워진 숫자를 뜻합니다. 따라서 그다음에 이어지는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와 가까운 의미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성인들 숫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가 성인들의 수를 수천 명, 수만 명으로 한정할 수 없다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 어린양의 피로 깨끗해져서 천국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이들, 하느님께서 사랑을 베푸시어 당신 자녀로 삼아 주신 이들은 그리스도를 닮아 순결하게 되어 언젠가 그분처럼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난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하늘 나라를 그리워하면서 정의와 자비와 평화를 추구하는 이들의 갈망도 언젠가 채워져, 하늘 나라가 바로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니, 이런 분들의 숫자가 십사만 사천 명뿐이겠습니까!
“성인들은 인간이었고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들이 성인이 되셨다면 나도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한 아우구스티노는 자신의 고백대로 성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나도 성인이 될 수 있고 또한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고 다짐하는 날입니다.
어떻게 살면 성인이 될 수 있을까요? “성인은 맡은 일에 열중하며 주어지는 모든 일을 거절하지 않는다. 성인에게는 주어지는 모든 것이 선행의 좋은 기회가 될 뿐이다”(루이 라벨). 성인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거절하지 않는다는 말이 매우 인상적인데, 아마도 이렇게 하여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행복한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은 짧고 하느님 나라의 기쁨은 영원하니, 눈을 들어 하늘 바라보기를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2014년[가해]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하느님 나라>  송영진 모세 신부

"그다음에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묵시 7,9)."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 라는 말은, 구원을 받아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들의 수가 아주 많다는 것과 인간의 능력으로는 그 수를 계산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말은 또, 몇 명이나 구원을 받게 되는지, 누가 구원을 받게 되는지 알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바로 앞에 있는 '십사만 사천 명'은 실제 숫자가 아니라 상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문'에 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마태 7,13-1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루카 13,24)."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수가, 즉 구원을 받아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수가 적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만일에 실제로 예수님께서 그런 뜻으로 말씀하셨다면, 이 말씀은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 라는 묵시록의 말과 모순됩니다.

'좁은 문'에 관한 예수님 말씀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사람들의 수가 많은지 적은지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아무렇게나 막 살아도 들어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 나라의 문은 '좁은 문'입니다. 들어가게 될 사람들의 수가 적어서 좁은 문인 것이 아니라.~~

'좁은 문'은 들어가는 사람들의 수를 제한하는 문이 아니라,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의 자격을 심사하는 문입니다. 그래서 자격만 있다면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고, 반대로 자격이 없다면 아무도 못 들어갑니다.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마태 7,14)." 라는 예수님 말씀은, 많은 사람들이 세속의 생활에 취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는 말씀이고,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루카 13,24)." 라는 말씀은, 들어가기를 원하더라도 자격을 갖추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못 들어간다는 경고 말씀입니다.

그런데 자기에게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자기 마음대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데 '나만' 못 들어가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나는 들어갈 수 있다." 라고 생각했는데, 못 들어가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람들이 다 "너는 못 들어간다." 라고 말하고, 나도 내가 못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느님께서 들어오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요한 1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1요한 3,3)." 이 말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희망한다면 예수님처럼 순결한 사람이 되라는 권고입니다. 

묵시록에서는 '예수님처럼 순결한 사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묵시 7,14)." 이 말은 일차적으로는 순교자들을 가리키지만, 넓은 뜻으로는 이 세상에서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을 모두 가리킵니다. 우리를 순결하게 만들어 주는 힘은 예수님에게서 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깨끗하게 만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지금 순결하지 않다고 절망하거나 포기하면 안 됩니다. 지금 회개하면 됩니다. 누구든지 '좁은 문' 앞에 섰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의 과거를 보지 않으시고,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의 현재 상태를 보실 것입니다.

다윗은 죄를 지은 다음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 주소서. 저의 죄에서 저를 말끔히 씻으시고 저의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하소서(시편 51,3-4)."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다윗의 죄만 보면, 그는 결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를 깨끗하게 만들어 주셨고, 그 자신도 회개함으로써 깨끗한 사람으로 회복되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갔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회개가 합해져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1코린 15,9-10)." 박해자였던 사울이 '바오로 사도'가 된 것은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일방적으로 하신 일이 아니라, 바오로 사도 자신도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기 때문에" 된 일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나라로 들어오라고 우리 모두를 부르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희망하고 노력하기만 한다면.~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복음 (마태5,1-12ㄴ)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11~12)

마태오 복음 5장 11~12절은 10절에 나오는 여덟번 째 행복의 보충 내용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3절~10절까지의 전체 팔복(八福)의 보충 내용으로서의 성격이 있다.

특히 마태오 복음 5장 10절'의로움 때문에'에 해당하는 '헤네켄 디카이오쉬네스'(heneken dikaiosynes; for righteousness)와 비교할 때, '~때문에', '~을 위하여'라는 뜻을 지니는 '헤네켄'(heneken; for)동일하고, 다만 '의로움'(디카이오쉬네스;dikaiosynes)이 '나'(에무; emou; me)로 바뀌어진 것만 차이가 있다.

사실 마태오 복음 5장 6절과 10절에 나오는 '의로움'에 해당하는 '디카이오쉬네' (dikaiosyne; righteousness)윤리적인 의로움인 동시에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종교적인 의로움이다.

죄인을 심판하고 멸하시며 의인을 보호하시는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의 기준인 '공의'(公義)로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태오 복음 5장 10절의 '의로움'은 6절보다 종교적인 측면이 더 강한 의로움이며, 인간으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느님의 의로움으로서,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성경이 말하는 의로운 삶은 바로 '의로움', '의'(義)의 전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며,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다는 뜻과 동일한 것이다.

한편 마태오 복음 5장 3~10절까지 나오는 팔복(八福)의 서술에서는 모두 '그들'에 해당하는 '아우토이'(autoi; they)3인칭 남성 복수 주격 인칭대명사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 5장 11절과 12절에서는 '너희'에 해당하는 '휘마스' (hymas; you)라는 2인칭 복수 대명사가 나온다.

이렇게 인칭이 바뀐 것은 지금까지 말했던 객관적인 진리를 이제는 예수님 앞에 있는 제자들에게 적용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마태오 복음의 일차적 독자였던 초대 교회 시대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당면한 현실, '모욕과 박해를 당하고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미래에 주어질 하느님의 상을 바라보면서, 결코 좌절하지 말 것을 교훈하기 위한 목적도 들어 있는 것이다.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당시 유다인들로부터 하느님의 거룩함을 훼손시키는 신성모독자로 취급되어 극심한 박해를 받았고, 또한 로마 지배 세력으로부터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반국가사범이란 죄목으로 잔인하게 처형당했으며, 일반 믿지 않는 대중들로부터는 자신들의 믿음 생활 때문에 질시받고  부도덕한 자들로 매도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마태오 복음 5장 1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고난을 삼중적으로 표현하여 강조하셨는데, 이러한 극심한 고난을 당할 때 사람들은 실의에 빠져 애통해할 수 밖에 없기에, 이제 마태오 복음 5장 12절에서 두 번 거듭 명령형 사용해서 이러한 극한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을 제자들에게 촉구하고 있다.

여기서 '기뻐하고'에 해당하는 '카이레테'(chairete; rejoice)의 원형 '카이로'(chairo)'기뻐하다', '안녕하다'는 뜻으로서, 마음에 기쁨이 넘쳐나며 행복에 겨운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즐거워하여라'에 해당하는 '아갈리아스테'(agalliasthe; be glad)의 원형 '아갈리아오'(agalliao)'영화롭게 하다', '높이다'는 뜻이 있는 '아갈로'(agallo)'뛰다', '솟아나다'는 뜻이 있는 '할로마이'(hallomai)의 합성어로서 밖으로 넘쳐나오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희열을 느끼는 을 뜻한다.

특히 이 두 단어가 모두 현재형으로 쓰인 것 지금 극한 고난의 상황에 있어도 그 기쁨이 넘쳐나야 함을 보여 준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박해는 절망과 고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차 받게 될 영광과 기쁨의 약속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5장 12절에서 '상'으로 번역된 '미스토스'(misthos; reward)'품삯', '임금', '보상'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박해를 이겨낸 공로에 대한 '보상'으로 이 상이 주어진다고 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기준이 아닌 당신의 기준에 다라 각자에게 적절한 상을 주신다(마태20,1~16; 루카17,7~10).

또한 그리스도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에게 '상이 크다'는 약속에서 '크다'에 해당하는 '폴리스'(polys; great)는 크기가 크다(large)는 뜻이 아니라 양이 아주 많은(much) 것을 뜻한다.

이것은 천국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상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이 지상의 어떤 보상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갖가지 보상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믿는 이들은 극한 고난 가운데서도 미래에 종말론적으로 주어질 이 상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가 있는 것이다.

끝으로, 믿는 이들이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이유가 추가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과거에 예언자들이 하느님을 위해 박해받았던 사실을 회상케 하며, 지금 이 설교를  듣고 있는 자들도 '나 때문에'(마태5,11) 즉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이 당연함을 보여 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과 하느님을 동등한 위치에 놓으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과거에 예언자들이 하느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했듯이, 이제는 제자들이 동일한 분이신 그리스도 당신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여 헌신할 것을 촉구하시는 것이다.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제1독서 (묵시7,2-4.9-14)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제1독서 (요한묵시7,2-4.9-14)

오늘은 천국에 있는 모든 성인들을 모두 합쳐서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이다. 이 축일의 유래는 이러하다. 로마에는 예수님께서 강생하시기 전에 이미 여러 신들에게 바쳐진 웅대한 신전이 있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가지각색의 신들을 숭배하며, 더욱이 자신들이 정복한  다른 민족의 신까지 숭배했다. 그래서 이러한 무수한 신들에게 일일이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므로 그들은 하나의 원형 신전을 세우고 그곳에서 모든 신들을 합사(合祀)했다.

로마인의 소위 판테온(pantheon)은 이 신전을 말하는데, 현재도 남아 있어  로마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의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가 되어 있다.  로마가 가톨릭의 혜택을 받자 이 신전은 성당으로 개조되었으며, 전에 잡신들의 상이 있는 곳에 성인들의 성상이 들어섰을 뿐 아니라 성인 순교자들의 유해가 카타콤바에서 그곳으로 옮겨졌다.

609년 5월 13일 성 보니파시오 4세 교황님이 로마의 판테온 신전을  교회에서 사용하도록 허락하시고, 성모 마리아께 봉헌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835년 그레고리오 4세 교황님이 이 성당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든 성인들께 봉헌하시고 11월 1일을 기해 그들을 기념하는 날로 정하고 온 교회에 전파하였다. 

그래서 오늘 묵시록의 7장 4절의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144,000명'이라는 말씀과 묵시록 7장 9절의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아무도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라는 말씀을 묵상하게 된다.

인장(표; stigma)을 찍는다는 것은 소유물로 삼는 것을 상징하는데(에제9,4참조), 하느님께서 당신 종들에게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넘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참아낼 수 있도록 어떤 초자연적인 힘을 주시며, 동시에 악인들이 받는 벌의 판결에서부터 보호되리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144,000 은 상징적 숫자인데, 구약의 이스라엘 12지파를 표시하는 12민족들과 연관하여 충만을 의미하거나 신약의 12사도를 의미하는 12 , 그리고 하느님의 영역에 속하는 완전수 1,000 이 결합된 숫자(12x12x1000)다.

셀 수 없이 많은 백성이 하느님의 구원을 얻을 것임을 상징적으로 표시한다. 아무도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창세15,5; 32,12) 살아 있으며, 참 이스라엘인 교회를 통해 실현됨을 말한다.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이라는 표현은 묵시록의 전형적인 표현으로서 세상에 있는 모든 백성을 가리킨다.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하늘 나라에 개선한 사람들임을 가리킨다.  구약에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든다는 것은 승전의 기쁨을 표시하기 때문이다. 

모든 천사가 어좌와 원로들과 네 생물 둘레에 서 있다는 말씀이 나온다. 흰 옷을 입고 금관을 쓴 원로 24명이란 말이 묵시록 4,4절에도 나오는데,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

천사들을 상징한다고 보는 견해, 선택받은 사람들, 지상에서 고생하고 승리의 월계관을 쓴 위대한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보는 견해, 하느님께서 재판하실 때 배심원 역할을 하면서 도와드리는 원로 천사라는 견해(다니10,9; 시편89,8; 이사24,23), 역데기 1서 25장 1~35절에서 말하는 하느님 궁전 성가대처럼 하느님 앞에서 찬양하는 24명의 선택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견해들도 있다.

24는 12+12로서 구약의 이스라엘 12지파와 신약의 새 이스라엘의 시초인 12사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흰옷은 초월적인 것을, 어좌 혹은 옥좌는 권위를, 금관은 그들이 받을 상급을 나타낸다고 볼 때, 24원로는 천상 하느님 백성의 상징적 존재일 거라고 본다.

네 생물이란 표현이 묵시록4,14절에 나오는데, 이미 에제키엘서 1장 5~14절에 언급되어  있는 '사자, 송아지, 사람의 얼굴, 독수리처럼 생겼다.'는 말씀에서 유래한다.

이 넷은 짐승도 사람도 아닌 천사를 가리킨다. 이들이 눈들이 많다는 것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전부 다 본다는 의미이고 눈은 성령을 상징한다.  네 생물의 기능하느님의 옥좌 앞에서 끊임없이 창조주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창조물 중 가장 강하고 가장 고귀한 존재들을 표현한 것 같다. 

교부들은 영성적으로 재해석하여 네 복음사가를 가리켰다.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되므로 사람 모습, 마르코 복음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사자후 소리로 시작하므로 사자 모습, 루카 복음은 즈가리야 사제의 제사 이야기로 시작하므로 제물로 바쳐지는 송아지 모습, 요한 복음은 한 처음에 하느님의 말씀이 저 높은 곳에서 떠돌다가 말씀에 의해서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하므로 독수리 모습으로 상징된다는 것이다.  

묵시록 7장 14절의 큰 환난 도미티아누스 황제 치세 말년(A.D.81~96년)의 대박해를 암시하는 것으로 보이며, 예수님께서 종말론적인 담화에서 인용하신 다니엘서 12장 1절의 '큰 환난'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리고 종말론적 예언의 차원에서 모든 시기의 교회가 감당해야 할 모든 투쟁과 박해를 암시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어린 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했다는 말씀이 묵시록 7장 14절의 끝에 나온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럽혀진 생활을 깨끗이 청산하고 용서받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즉 어린양이 겪은 시련과 고통의 결과로서 의인들이 나타난다(이사1,18; 64,5; 즈가3,3~5참조).

묵시록에서도 흰옷 입은 사람들이란, 하느님의 자비로 용서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 사람들이 자기 예복을 어린양의 피로 희게 빨았다는 것은 인류 구원 사업은 인간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임을 말한다.  

그러나 또한 무죄하신 그리스도께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써 얻은 선(善)과 그 효과(구속 성혈의 공로)가 자동적이고 피동적인 것은 아니며, 인간이 그리스도의 피의 효과를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도 포함된다. 

오늘 우리는 모든 성인 대축일을 맞이해서 천국(개선지회; 凱旋之會; 개선한 교회; Ecclesia triumphans)의 성인 성녀들을 바라보면서 발은 땅에 딛고 있지만, 천상의 영원한 생명과 복락을 희망해야 한다. 

지극히 거룩하시고 존엄하신 천주성삼께서 계시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면, 우리의 믿음 생활과 지상의 나그네 삶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한마디로 구원받지 못한다면, 이 땅에서 숨쉬고 산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씀대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이미 그 목적을 달성했으니 우리도 힘과 용기를 내어야 한다.  "성인 성녀들이 인간이었고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들이 성인이 되었다면 나도 성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골로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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