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성탄 대축일] 말씀이 사람이 되시다.(요한 1,1-18)

2015. 12. 25. 오전 5: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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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성탄 대축일 낮 미사] 말씀이 사람이 되시다.(요한 1,1-18)

오늘은 예수 성탄 대축일입니다. 한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이신 영원한 말씀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십니다. 그분을 알아 뵙고 맞아들여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겸손한 마음을 주시기를 청합시다.


이사야 예언서는 폐허가 된 예루살렘, 시온으로 주님께서 돌아오신다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 주시어 그들을 위로하시고 구원해 주신다.(이사야 52,7-10)
7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 “너의 하느님은 임금님이시다.” 하고 시온에게 말하는구나.
8 들어 보아라. 너의 파수꾼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다 함께 환성을 올린다. 주님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심을, 그들은 직접 눈으로 본다.
9 예루살렘의 폐허들아, 다 함께 기뻐하며 환성을 올려라.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예루살렘을 구원하셨다. 10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의 거룩한 팔을 걷어붙이시니, 땅끝들이 모두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시편 98(97),1.2-3ㄱㄴ.3ㄷㄹ-4.5-6(◎ 3ㄷㄹ)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
○ 비파 타며 주님께 찬미 노래 불러라. 비파에 가락 맞춰 노래 불러라. 쇠 나팔 뿔 나팔 소리에 맞춰, 임금이신 주님 앞에서 환성 올려라. ◎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 하느님께서 신약에 이르러서는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그분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 만물이 그 아드님을 통하여 만들어졌다.(히브리 1,1-6)
1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2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4 그분께서는 천사들보다 뛰어난 이름을 상속받으시어, 그만큼 그들보다 위대하게 되셨습니다.
5 하느님께서 천사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6 또 맏아드님을 저세상에 데리고 들어가실 때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은 모두 그에게 경배하여라.”


복음은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성을 노래한다. 그분은 하느님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영광을 지니셨다.(요한 1,1-18)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 15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16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가톨릭 구약성경 이사야서 요약 [청담성당]

예수 성탄 대축일 낮 미사 제1독서 (이사52,7-10)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 "너의 하느님은 임금님이시다." 하고 시온에서 말하는구나." (7)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문자적으로 '그 산들 위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라는 의미가 된다. 발은 신체의 지체 중에서 아름답지 못한 부분으로 간주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발이 아름답다고 표현되는 것 그 발을 통해서 아름다운 하느님의 구원의 소식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본문에서 '산'에 해당하는 '헤하림'(heharim; the mountains)은  복수로서 '그 산들'이라는 의미이므로, 여기서 그 발은 여러 봉우리의 산들 위에 서 있는 것이 된다. 

그리고 '위에'로 번역된 '알'(al)전치사로서, 본문은 발이 산을 넘는 동작을 강조하기보다 산 위에 굳게 서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How beautiful upon the mountains are the feet of him'의 뜻이다. 

즉 원문은 복음 선포자가 높은 곳에 올라 거기에서 만방에 복음을 전하는 이미지를 전달한다.

이것은 이사야서 40장 9절"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하고 말하여라."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라고 한 표현과 유사하다. 

그리고 본문은 궁극적으로 사탄의 세력에 포로된 자들에게 영적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복음 선포자들의 활동을 칭송하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본문을 인용한 사도 바오로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로마10,15). 

이사야서 52장 7절주님의 승리를 전달하는 전령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앞선 이사야서 40장 9절과 41장 27절과 유사하게 되어 있다. 

본절은 원문상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해당하는 구절이 맨 앞에 위치해 강조되고 있으며, 그 이하를 다섯 개의 분사 구문이 뒤따르는 형태로 되어 있다. 

다섯 개의 분사는 모두 남성 단수로서, '발'에 해당하는 '라글레'(laglle; are the feet of)라는 단어를 수식하고 있다. 

즉 그 발은 첫째, 기쁜 소식을 전하는 발이며, 둘째, 평화를 선포하는 발이며, 째, 기쁜 소식을 전하는 발이며, 넷째, 구원을 선포하는 발이며, 다섯째, 시온에서 '너의 하느님은 임금님이시다'(너의 하느님이 통치하신다)라는 사실을 전하는 발이다. 

먼저 '기쁜 소식을 전하는'에 해당하는 '메밧세르'(mebasser; tose who bring goods news)원형 '빠사르'(basar)는  주로 전쟁과 관련하여 전령이 승전 소식을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2사무18,19.26.31). 

여기에서는 일차적으로, 바빌론 압제하의 이스라엘 자손이 해방되어 곧 시온으로 귀환할 이라는 소식을 전하는 것을 의미하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관련된다.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실 때 천사는 베들레헴 근처의 목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라고 선언하였는데, 이것은 본문 내용과

깊은 관련을 가진다(루카2,10).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소식 가운데서 그리스도 탄생보다 더 기쁜 소식도 없다. 

그 사건은 인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와 영원한 죽음과 멸망의 문제를 해결하는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 확대하여 말하자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 사업을 바탕으로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 놓여진 인간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70인역(LXX)에서는 이 단어를 '복음을 전하다'는 의미를 갖는 희랍어 '유앙겔리조'(euangellizo)의 분사형으로 번역하여 이런 의미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평화를 선포하고'에서 '평화'에 해당하는 '샬롬'(shallom)은 기본적으로  더 이상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할 뿐 아니라,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완전한 영육간의 복지(well-being)의 상태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

 본절의 세번째 분사 구문'기쁜 소식을 전하며'에 해당하는 '메밧세르 토브'(mebasser tob)'기쁜 소식을 전하는'으로 번역된 첫번째 분사 '메밧세르'(mebasser)의 내용을 강화하는 문장이다.  

'기쁜', '좋은', '선한', '아름다운'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토브'(tob)표현을 첨가해서 동일한 표현을 다시 반복하여 매우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네번째 분사 구문'구원을 선포하는구나'라는 표현은  '복된 기쁜 소식'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이것은 물론 일차적으로 바빌론의 압제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통한 죄와 죽음과 사탄에게서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서 '구원을'에 해당하는 '예슈아'(yeshuah; salvation)가  주님의 이름 '예수'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마태1,21).  

''너의 하느님은 임금님이시다'하고 시온에서 말하는구나' 

여기서 '임금님이시다'에 해당하는 '말라크'(mallak; reigns)는  '통치하신다'는 뜻으로 왕의 지배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바빌론의 포로로서 잔혹한 바빌론의 군주에게 다스림을 받아왔는데, 이제 그 압제에서 벗어날 것이며,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친히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 되어 이들을 다스리신다는 뜻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바빌론 유배의 근본 원인은 하느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는 불신앙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하느님께서 통치하신다는 본문은 가장 근원적인 측면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완전히 회복하게 하심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은 보다 궁극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께서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게 되는 비참한 인생을 해방시켜서(로마5,14; 8,2), 하느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과 가족(자녀)이 되게 하심(에페2,19)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축일미사(나해) 11-12-24] - 예수 성탄 대축일 전야(저녁 미사)


<빛>   송영진 모세 신부


요한복음의 '머리글'(요한 1,1-18)은,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신앙고백이기도 하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또는 요한복음서의 내용을 요약한 글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복음서 저자의 신앙고백으로 시작해서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이라는 토마스 사도의 신앙고백으로 끝나는 책입니다. (요한복음 21장은 '부록'과 같습니다.)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고, 그렇게 믿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요한 20,3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이 말은 "예수님은 하느님으로서 한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왜 '말씀'이라고 표현했는지는... 모릅니다. 학자들이 이것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있고, 논란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결론은 없습니다.)


성탄절은 '한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신 분이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그분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성탄절은 우리의 '참 생명'이 시작된 날입니다. 단순히 예수님의 탄생을 경축하는 날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새 생명, 참 생명을 얻게 된 날이고, 우리는 바로 그것을 경축해야 합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을 '빛'이라고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이 '빛'은 생명의 원천을 뜻하기도 하고,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등불을 뜻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빛'을 받아서 살고 있고, 또 이 '빛'의 인도를 받아서, 참 생명을 얻는 하느님 나라에 가게 됩니다.
'빛'의 반대는 '어둠'입니다. '어둠'은 죄와 죽음을 뜻합니다. (죄는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에 죄가 곧 죽음입니다.) 그 '어둠'에서 벗어나려면 '빛'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 세상을 보면, '어둠'에서 벗어나려고 하기는커녕 그 속에서 살겠다고 고집 부리면서 '빛'을 거부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5)." 이 말은 '어둠'이 '어둠'이라는 것을 모르고, '빛'이 '빛'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모른다는 말은, 사실은 거부한다는 뜻입니다.)


누가 보아도 잘못된 신념인데도 자기 혼자서만 올바른 신념이라고 고집을 부리는 정치인들, 종교인들, 언론인들...
혼자서만 그렇게 살다가 끝나면 그 혼자만의 문제로 끝나지만, 자기의 잘못된 신념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그래서 세상을 어지럽히고...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19-20)."


지금 어둠 속에 있다는 점도 문제이지만,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단순히 몰라서 어둠 속에 있는 것이라면 깨우쳐 주면 됩니다.
그러나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면...? 누가 어떻게 해 줄 수가 없습니다.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가 하는 일이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또는 자기의 삶이 죄 속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사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나중에 자기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신경 쓰지 않고 지금 부귀영화와 쾌락을 누리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들이 바로 그런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자들이 하느님의 심판대에 설 때에는 분명히 후회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들이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것 자체가 이미 심판을 받은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요한 3,19).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 사랑, 참 평화, 참 행복을 얻지 못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이미 심판을 받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성탄절은 어둠 속에 있는 인간들에게 참 빛이 비추어지기 시작한 날입니다. (우리가 참 빛을 만난 날입니다.)
따라서 성탄절은 참으로 회개가 시작된 날이기도 합니다. 회개는 단순히 죄를 뉘우치는 일만 뜻하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 쪽을 향해서 '온 삶'을 바로잡는 일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방향을 바로잡는 기준이 되는 신호등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요한 1,12)."


여기서 '권한'이라는 말에는 '자유'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지 않을 권한'이기도 합니다.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은, 인간들이 각자 자유의지로 선택하는 일입니다.그러니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각자 자신이 져야 합니다. '멸망'은 자기 선택에 대해서 자기가 책임지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성탄 대축일 낮 미사 복음 (요한1,1-18)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12) 

이 세상을 죄악과 멸망에서 구원하시려고 오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인간들의 태도에 있어서, 앞선 요한 복음 1장 11절은 거부하는 태도를 지적하고 있지만, 요한 복음 1장 12절은 반대로 영접하는 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받아들이는'으로 번역된 '엘라본'(elabon; received)은  '람바노'(lambano)의 부정 과거이다. 

'람바노'(lambano)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가지다', '취하다'인데, 받아들이거나 영접하는 것, 모셔들이는 것을 나타낼 때에도 종종 쓰인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이는 얼마든지 많이'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엘라본'(elabon)과거의 일회적 동작을 나타내는 단순 과거로 쓰였다는 점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그 시점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사건이 발생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받아들이는 것'과 관련해서 요한 복음 1장 11절의 영접 12절의 영접이 서로 다른 의미로 쓰였는데, 11절에는 집단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나타내는 '파랄람바노'(paralambano)가 쓰인 반면에, 12절에는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는 '람바노'(lambano)라는 단어가 쓰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써 이루어지는 구원이 집단적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인 사건임을 드러낸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방법'믿음','그 이름을 믿는 것'이라고 보충적으로 설명해 준다. 

히브리인들의 사고에 있어서 이름은 단순히 호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의 본질을 나타낸다. 따라서 '당신 이름'예수님의 존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알아 들어야 한다. 특히 여기서 '믿는 모든 이이게'로 번역된 '피스튜우신'(pisteuousin; believe)시제가 현재 분사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희랍어에서 현재 시제는 계속적인 동작을 나타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여기서 믿는다는 것은, 단 일회적인 '받아들임'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이 내 인생의 주인이며 하느님이심을 확인하는 것'을 나타낸다. 

시제의 용법을 통해 우리는 정상적인 믿음, 온전한 신앙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바르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권한을 주셨다' 

여기서 '권한'으로 번역된 '엑수시안'(eksousian; the right, power)의 기본적인 의미는 '권리', '능력', '권세', '권위'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합법적으로 하느님의 자녀의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갈라4,5). 이 권리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내세에서 상속(기업, 유업)을  계승한다는 뜻도 포함된다(로카8,17).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이요 전적인 은혜이기에(에페2,8.9), 하느님의 자녀들은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먼저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탄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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