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6. 대림 제2주일]광야에서 외치는 이 (루카 3,1-6)

2015. 12. 5. 오후 6:52:37

글자


 

[12. 6. 대림 제2주일]광야에서 외치는 이 (루카 3,1-6)


 (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인간 존중과 인권의 신장은 복음의 요구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짓밟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따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82년부터 해마다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로 지내기로 하였다. 교회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존엄한 인간이 그에 맞갖게 살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보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권 주일로 시작하는 대림 제2주간을 2011년부터 ‘사회 교리 주간’으로 지내 오고 있다. 현 시대의 여러 가지 도전에 대응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교회의 ‘새 복음화’ 노력이 바로 사회 교리의 실천이라는 사실을 신자들에게 깨우치려는 것이다.


바룩서의 앞부분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하여 참회하며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을 기억하고, 마지막 부분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선포하며 예루살렘을 위로한다. 흩어졌던 이스라엘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모여들게 될 것이다(바룩 5,1-9)
1 예루살렘아, 슬픔과 재앙의 옷을 벗어 버리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영광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입어라.
2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의 겉옷을 걸치고, 영원하신 분의 영광스러운 관을 네 머리에 써라. 3 하느님께서 하늘 아래 어디서나 너의 광채를 드러내 주시고, 4 ‘의로운 평화, 거룩한 영광’이라는 이름으로 영원히 너를 부르실 것이다.
5 예루살렘아, 일어나 높은 곳에 서서 동쪽으로 눈을 돌려 보아라. 네 자녀들이 거룩하신 분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께서 기억해 주신 것을 기뻐하면서, 해 지는 곳에서 해 뜨는 곳까지 사방에서 모여드는 것을 보아라.
6 그들은 원수들에게 끌려 너에게서 맨발로 떠나갔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왕좌처럼, 영광스럽게 들어 올려 너에게 데려오신다. 7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당신 영광 안에서 안전하게 나아가도록, 높은 산과 오래된 언덕은 모두 낮아지고, 골짜기는 메워져 평지가 되라고 명령하셨다.
8 하느님의 명령으로 숲들도 온갖 향기로운 나무도, 이스라엘에게 그늘을 드리우리라. 9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서 나오는 자비와 의로움으로, 당신 영광의 빛 속에서 이스라엘을 즐거이 이끌어 주시리라.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롭게 되어 그 열매로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필리피 1,4-6.8-11)
형제 여러분, 나는 4 기도할 때마다 늘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5 여러분이 첫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 여러분 가운데에서 좋은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8 사실 나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애정으로 여러분 모두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증인이십니다. 9 그리고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더 풍부해져, 10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고, 1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의로움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세례자 요한이 그분의 오심을 준비한다. 그는 바룩서의 말씀대로 산과 언덕이 낮아지고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임을 선포한다(루카 3,1-6)
1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십오년,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헤로데가 갈릴래아의 영주로, 그의 동생 필리포스가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로, 리사니아스가 아빌레네의 영주로 있을 때, 2 또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3 그리하여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4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5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6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대림 제2주일 제2독서 (필리1,4-6.8-11)

"그리고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더 풍부해져,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고" (9~10)

필리피서 1장 9절'기도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된 '프로슈코마이'(proseuchomai)하느님을 향한 기도를 나타내는 동사이며, 여기서는 직설법 현재 시제로 쓰였다. 여기서 직설법 현재 시제지속과 반복의 의미로 쓰여 기도의 행위가 지속적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사도 바오로는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항상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필리피 교인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한 것이다. 

그리고 9절부터 11절까지 사도 바오로가 필리피 교인들을 향한 사랑과 애정의 발로로서 바친 기도의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다. 9절에 나오는 첫번째 기도 내용 필리피 교회가 사랑이 풍부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랑'은 '아가페'(agape) 사랑인데, 전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말하며, 하느님께 의존된 사랑이고 하느님으로부터 기인된 사랑이다. 또한 이 사랑은 타인이 나에게 유익을 주지 않아도 사랑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며, 타인의 유익을 위해 헌신하는 이타적 사랑이다. 

사도 바오로는 필리피 교인들에게 아가페 사랑이 더욱 풍성하여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충만함에 이르도록 간구한다. 

한편, '더욱더'로 번역된 '에티 말론 카이 말론'(eti mallon kai mallon; more and more)이란 부사구는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뉘앙스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먼저 부정적으로는 필리피 교인들이 아직 완전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암시한다(필리3,12~15). 

즉 사도 바오로는 이 표현을 통해 필리피 교회가 사랑이 아직도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밝히고 있다. 

반면, 긍정적으로는 필리피 교인들이 지금 지니고 있는 아가페 사랑이 날이 갈수록 풍성해져서 그리스도의 성숙한 경지에까지 이르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에페3,13참조).

그리고 '풍부해져'로 번역된 '페릿슈에'(perisseue; may abound)'페릿슈오'(perisseuo)의 가정법이다. 

'페릿슈오''풍부하다', '충분하다'라는 의미의 동사로서, 복음이 가져온 결과를 한마디로 특징짓는 말이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이루시는 일인데, 하느님의 계시로 말미암아 지혜가 풍성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은총과 사랑이 충만히 넘쳐나는 것을 말한다.

'지식과 온갖 이해로'

여기서 '지식'으로 번역된 '에피그노세이'(epignosei; knowledge)의 원형 '에피그노시스'(epignosis)는 일반적인 보통의 지식을 말하는 '그노시스'(gnosis)'~위에', '~에 더하여', 또는 '철저한'이란 뜻이 있는 전치사 '에피'(epi)가 더해졌다. 이것은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것과 관련해서 '그노시스'(gnosis)보다 완전하고 진보된 깊은 지식을 말한다. 즉 이것은 하느님의 자기 계시를 통해 가능하게 된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말한다. 

그리고 '이해'로 번역된 '아이스테세이'(aisthesei; insight)  감각적으로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분별력을 말하는 것으로서, '감각', '지각', '경험'모두 포함한 도덕적인 이해와 분별력을 말한다.  또한 '이해' 앞에 수식된 '온갖'으로 번역된 '파세'(pase; all)'이해'의 완전성을 말하기 보다는 '이해'의 깊이를 말한다(히브5,14). 

사도 바오로가 이렇게 사랑에 지식과 이해가 더하여지기를 기도한 것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열정에는 반드시 하느님의 의로움을 분별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분별'이란 바로 악에서 선한 것을 가려내는 능력이며, 선을 택하고 악을 배격하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별하여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분별이 결핍된 사랑은 무분별한 헌신을 초래할 수 있으며, 또한 지식없는 열정은 오류에 빠지기 쉽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지식과 이해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을 저버리고 '자신들의 의로움'를 세우려 했던(로마10,2.3) 유대인들의 어리석음을 필리피 교인들이 답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가페' 사랑에 올바른 지식과 이해를 더불어 가지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랑에는 참된 지식과 올바른 분별력이 겸비되어야 한다.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이것은 지식과 이해를 겸비한 사랑이 풍부할 때 오는 두번째 결과이다. 그것은 필리피 교인들이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순수'로 번역된 '에일리크리네이스'(eilikrineis)'햇빛'이란 뜻의 명사 '헤일레'(heile)'판단하다'라는 뜻의 동사 '크리노'(krino)의 합성어로서 '해가 비침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어떤 것의 확실함'을 의미하며, 이것이 '흠없는', '섞이지 않은', '투명한'이란 의미로 발전했다. 여기서도 '섞이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은 순수한'이란 뜻으로 사용되어 '도덕적으로 순결한 것'을 말한다(2베드3,1). 

또한 '나무랄 데 없는'으로 번역된 '아프로스코포이'(aproskopoi)의 원형 '아프로스코포스'(aproskopos)'넘어지게 하지 않는', '깨끗한', '불쾌감을 주지 않는', '범죄케 하지 않는'이라는 뜻인데, 길에서 어떤 장애물에 걸려 '넘어져서 상처를 입지 않고'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다. 

사도 바오로는 필리피 교인들이 더러운 세속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을 지킬 뿐 아니라, 자신을 통해 다른 사람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위해 기도한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필리피 교인들이 악한 것과 선한 것, 천한 것과 귀한 것을 구별하여 순결하고 흠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기를 바라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날'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하여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날(로마2,16)이며, 여기서 쓰인 전치사 '에이스'(eis; into)순수하여 허물없는 상태가 그리스도의 날 이후까지 계속된다는 뉘앙스를 나타내고 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소리

<회개>  송영진 모세 신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루카 3,4-6)


'광야에서 외치는 이' 라는 말은 '하느님의 예언자'를 뜻합니다.
(여기서는 '세례자 요한'입니다.)
원래 '광야'는 하느님을 체험하는(만나는) 장소를 상징합니다.
'광야'를 황무지로 생각한다면,
외롭고 쓸쓸하고 두렵고 삭막하기만 한 우리 인생을 상징하는 것으로,
광야에서 외치는 예언자의 소리는
그런 인생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길'은 여기서는 '주님께서 나에게 오시는 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길을 마련하라는 말은,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잘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말이고,
이 말은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길'을 '내가 주님께 가는 길'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듯이, 또는 길 잃은 양을 찾듯이 나를 기다리시고 찾으시는
주님께로 가기 위한 길.
그래서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것은
주님께로 잘 가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이 노력이 바로 회개입니다.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라는 말은,
탐욕과 이기심과 원한과 미움 등을 없애라는 뜻입니다.
탐욕(욕망), 이기심, 원한, 미움 등은 우리 마음속의 가장 깊은 곳에 있어서
누구라도 그런 것들을 없애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쉬운 일이 아니니까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라는 말은, 교만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라는 말이 연상됩니다.
인간이 아무리 잘난 체 해도 한낱 피조물일 뿐입니다.
지금 세상을 보면, 자기가 한 일을 과시하고 자랑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일이 인간들의 눈에는 위대한 업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일이 아니라면,
그런 것은 그냥 허물어져서 먼지처럼 흩어지고 마는 바벨탑이 될 뿐입니다.
그러니 항상 하느님 앞에서 겸손해져야 합니다.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라는 말은,
죄에 물들어서 비뚤어지고 거칠어진 생활을 버리고,
올바른 생활을 하라는 뜻입니다.
요즘 세상을 보면, 다들 이상한 사고방식에 물들어서
'비단결 같은 고운 마음씨'로 사는 사람은 비웃고, 조롱하고,
제 멋대로 죄를 지으면서 거칠게 사는 사람에 대해서는
매력적이다, 멋있다, 라고 말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선을 비웃고 악을 칭찬하는 일, 그런 일은 '사탄의 일'입니다.


 


'모든 사람'은 글자 그대로 '모든 사람'입니다.
죄인이라고 낙인찍힌 사람들만 회개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이(마르 16,15) 전부 다 회개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심판은
공적으로 죄인이라고 낙인찍힌 사람들만 대상으로 하는 심판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무도 하느님 앞에서
"나는 죄인이 아니다. 나는 죄가 없다." 라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말 자체가 죄가 됩니다.
 


'회개'는 단순히 죄를 뉘우치는 일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죄를 뉘우치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인생 전체를 바로잡아서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가르침에 일치되는 생활을 하는 것,
그것이 회개입니다.
 


라디오를 제대로 들으려면 우선 먼저 주파수를 잘 맞추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기 위해서 마음의 주파수를 잘 맞추는 일에서부터
회개가 시작됩니다.
만일에 주파수를 올바르게 맞추지 않는다면 잡음만 듣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세속의 소리들만 잔뜩 듣게 될 것이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것은
아마도 그 전에 이미 하느님의 음성을 안 듣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을 받을 때, 그리고 그것을 식별하기가 어려울 때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은 기도밖에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마르 9,29).
유혹이 다가오기 전에 미리 그것을 막는 방법도,
유혹인지 아닌지 식별하는 방법도,
이미 다가온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도 기도뿐입니다.
기도 생활을 하지 않으면서 회개한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난센스입니다.
(기도 없는 회개는 회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회개는 우리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제대로 회개하려면 주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일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지만,
주님께서 도와주셔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일은, 즉 회개는
내가 주님과 함께 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회개를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실 때 직접 도와주시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옆에 있는 형제를 통해서 도와주시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형제의 충고나 권고나 훈계가 듣기 싫어도,
그것이 나의 회개를 도와주기 위한 선한 말이라면,
기꺼이 들어야 하고, 고마워해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이 어떤 방식으로 오든지 간에
그것은 우리가 주님께로 곧장 갈 수 있는 지름길을 알려주는 일과 같습니다.
'회개'는 한눈팔지 않고,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다른 곳을 들르지도 않고,
지름길로 곧장 주님께로 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입니다.


오늘의 묵상

 흔히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은 서로 대조되는 인물로 소개합니다만, 사실 세례자 요한만큼 예수님과 공감할 수 있는 분도 드물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마지막 예언자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선구자였고, 예수님께서는 그를 두고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과 자신을 구분하려고 요한은 자기를 ‘광야의 소리’로 겸손하게 밝혔고, 설령 자기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도 고백하였습니다. 사실 회개도 겸손에서 출발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셨다고 하여, 이스라엘에게 요한이 촉구했던 회개가 무의미하게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의 오심을 준비하고자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이렇게 준비한 그 길로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해마다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 시기는 우리가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면서 주님의 오심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치우는 때입니다.
하느님께 궁극적인 희망을 두지 못하여 우리가 깊은 어둠 속을 헤매고 있다면, 또는 우리 자신의 힘과 능력만을 믿으면서 하느님 앞에서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마치 그분의 도우심이 전혀 필요 없는 것처럼 거만을 떨고 있다면,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을 스스로 가로막고 있는 셈이 되겠지요.
세례자 요한의 권고대로, 오늘 주님께서 오시는 길목에서 걸림돌 하나쯤은 치우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림2주일  대림 제2주일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주일복음강론

목록 전체보기 →
[대림 제4주일]믿으신 분! (루카 1,39-45)15.12.20조회 339[대림 제3주일.장미주일. 자선 주일]성령과 불로 세례를 (루카3,10-18)15.12.12조회 60[12. 6. 대림 제2주일]광야에서 외치는 이 (루카 3,1-6)15.12.05조회 89[11월 29일다해 대림1주일] 깨어 기도하라 (루카 21,25-28.34-36)15.11.28조회 58[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성서주간 (요한 18,33ㄴ-37)15.11.22조회 55[연중 제33주일.평신도주일]무화과나무의 교훈 (마르 13,24-32)15.11.15조회 57[연중 제32주일] 가난한 과부의 헌금 (마르코12,38-44)15.11.08조회 127[연중 제31주간 모든 성인 대축일] (묵시 7,2-4.9-14; 1요한 3,1-3; 마태 5,1-12ㄴ)15.11.01조회 76[연중 제30주일] 예리코 소경치유 (마르 10,46ㄴ-52)15.10.25조회 57[연중 제29주일] 전교주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마태 28,16-20)15.10.17조회 61[연중 제28주일] 낙타와 바늘 구멍 (마르 10,17-30)15.10.11조회 55[연중 제27(군인)주일]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 (마르 10,2-16)15.10.04조회 126[연중26주일 한가위]어리석은 부자 (루카 12,15-21)15.09.26조회 311[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루가9,23-26)15.09.19조회 96[9월13일 연중 제24주일]하느님의 일 (마르 8,27-35)15.09.12조회 110[연중 제23주일] “에파타!” (마르 7,31-37)15.09.05조회 429[연중 제22주일]조상들의 전통 (마르 7,1-8.14-15.21-23)15.08.30조회 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