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아주 먼 옛날에 지렁이는 멋진 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재는 눈이 없는 대신 예쁜 비단 띠를 두르고 있었고요. 둘은 서로 상대방의 눈과 비단 띠를 부러워했습니다.
어느 날, 지렁이가 말했습니다. “가재야, 네 비단 띠하고 내 아름다운 눈하고 바꾸지 않을래?” 가재가 말했습니다. “좋지, 아무렴 좋고말고.” 지렁이와 가재는 눈과 비단 띠를 바꾸고 나서, 서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서로가 가지고 싶은 것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며칠 후, 지렁이는 눈과 비단 띠를 바꾼 것을 후회했습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어 너무 답답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신히 가재를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가재야, 눈과 비단 띠를 도로 바꾸자. 응?” 그러나 가재가 말했습니다. “흥! 싫어. 눈이 얼마나 좋은데. 한 번 바꿨으면 그만이야!” 지렁이가 소리쳤습니다. “내 눈 내 놔! 내 눈 내 놔!” 가재는 “싫어, 싫다니까!”하였습니다.
지렁이는 있는 힘을 다해 가재의 눈을 붙잡고 늘어지는 바람에 가재 눈이 툭 튀어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재는 눈을 도로 빼앗길까 봐 뒷걸음 쳐 멀리 도망쳤습니다. 지렁이는 자신이 한 짓과 눈이 없는 게 창피해서 깜깜한 땅속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남의 밥 콩이 더 굵어 보인다.”는 옛말이 있듯이 남의 것은 자기 것보다 좋게 보이는 법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은 누구 것이 더 좋고 나쁠 수는 없습니다. 은총의 선물은 여러 가지지만 지금 받은 은총이 최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각자의 조건에 따라 이런 사람에게는 이런 것을, 저런 사람에게는 저런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알맞은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2코린9,8) 그러므로 서로 다르게 가진 은혜로움을 인정하고 나에게 주신 은총을 잘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디에고 로드리게스 데 실바 이 벨라스케스의 <요셉의 피 묻은 튜닉을 받는 야곱>,1630년경, 엘 에스코리알, 산 로렌초 수도원
요셉의 형들은 목동의 전형적인 의복인 민소매의 짧은 튜닉을 입고 있다. 야곱이 요셉에게 준 ‘긴소매 옷’은 고귀함과 위엄의 상징이었다. 이처럼 발까지 내려오는 긴 옷은 노동에 종사하는 자들이 아닌 왕자를 위한 옷이었다. 형들은 이 옷에 동물의 피를 묻혔다. 옷을 가져온 형들은 아버지가 자신들의 거짓말을 믿는지 알아보려고 아버지를 주시한다. 모자를 쓴 이의 표정은 미소를 드러내는 듯하다. 한편 그 앞에 선 젊은이는 무슨 일이 일어날 지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다. 야곱은 아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두 팔을 벌린다. 이는 엄청난 고통의 표시이다. 카펫 위에 맨발로 앉아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 아버지는 아들을 다시 이집트에서 볼 때까지 깊은 슬픔에 잠긴다. 예민한 후각을 가진 개만이 옷에 묻은 피가 요셉이 아닌 동물의 피임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누구도 개지는 소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