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안락사

2011. 4. 15. 오후 9:09:43

글자
 
84. 안락사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이에 따라 스스로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자유의지는 그에 따르는 책임도 함께 부여받은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자유는 무한한 자유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지켜야 할 하느님의 법을 준수하는 한에서의 자유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지만 선과 악을 알게 되는 나무 열매만큼은 따 먹지 말라는 의무도 주셨습니다. 이는 바로 책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는 선택의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유의지를 가지고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합니다. 가치의 우선순위는 하느님의 뜻과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이웃에 대한 책임이 따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 생명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생명이지만 이는 내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속한 것이고 따라서 이 생명에 대한 어떤 권한도 내게 없다는 것이 우리가 믿는 신앙의 내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살도 하느님의 생명을 마치 내 것인 양 내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고 안락사 역시 내가 생명의 주인인 양 행사하는 한 형태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이동익신부, 생명, 인간의 도구인가?)

 

나는 자유를 가진 인간이지만 하느님 안에 있으며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라. 살인하지 말라는 하느님의 법을 외면하면서 자유를 행사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따라서 죽음을 조절하여, 정해진 시간 이전으로 앞당기며 자신의 생명이나 타인의 생명을 ‘편안하게’ 끝맺게 하는 안락사는 비인간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물론 안락사는 이른바 ‘과도한 의학적 치료’를 그만두는 것과는 구별해야 합니다. 죽음이 임박하고 피할 수 없을 때, 사람은 양심 안에서 비슷한 경우의 환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상적인 간호를 중단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결과가 불확실하고 큰 부담이 되는 생명의 연장밖에 보장하지 못하는 종류의 치료 행위들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특별하거나 또는 부적절한 수단들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자살이나 안락사와는 다릅니다. 그것은 오히려 죽음 앞에서 인간의 조건을 받아들인다는 표현입니다. 

 

분명한 것은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무죄한 인간 존재, 갓 잉태된 태아든 다 자란 태아든, 어린이든 노인이든 불치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든 죽어가는 사람이든 결코 인간의 살해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통의 경감이라는 이유로 안락 살해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예외 없이, 그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거스르고 근본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또한 극도의 중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소홀히 하는 시류에 맞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생명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프라 안젤리코, 프라 필리포 리피의 <동방박사들의 경배>, 목판에 템페라, 지름 137.2cm, 국립미술관, 워싱턴, 미국

 

동방에서 온 박사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며 예물을 봉헌하고 있다. 왼쪽의 허물어진 건물은 예수님의 탄생과 더불어 낡은 시대가 지나가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것을 나타낸다. 오른쪽 상단에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도시 베들레헴과 시민들이 묘사되어 있다. 마구간의 지붕에 앉아 있는 공작은 불멸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즉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영생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음을 나타낸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