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가톨릭교회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계기는 영국 왕 헨리 8세의 결혼 문제입니다. 그 후 영국에서의 가톨릭교회는 종교개혁을 표방하고 나섰고 국가 교회로 발전하였습니다. 성공회의 위계제도, 전례, 성사, 신심생활은 가톨릭과 비슷합니다. 다만 로마 교황과 일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다릅니다. 현대에 와서는 여성 성직자도 양성하고 있습니다.
헨리 8세(1509-1547)는 1509년 12살의 나이에 15살의 카타리나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카타리나는 헨리 8세와 결혼하기 전에 헨리 8세의 친형 아아더와 결혼하여 4개월간 산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아더가 중병으로 죽자 교황으로부터 인척장애를 관면 받아 결혼하였습니다. 헨리 8세와 18년 동안 행복하게 살면서 7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1527년 헨리 8세는 궁녀 앤 보레인과 결혼하기 위해서 카타리나와 헤어지려고 하였습니다. 헨리 8세는 욕정에 눈이 멀었는지 궁녀를 차지하기 위해서 교회법이 금하는 것을 알면서도 앤과 결혼하려고 한 것입니다. 카타리나와의 사이에 아들이 없어서 왕의 자리를 이을 아들을 얻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헨리 8세는 레위기 18장 16절과 20장 21절에 보면 친형제와 결혼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데 이것은 하느님의 법인만큼 교황도 면제할 수 없는 것이므로 자신과 카타리나와의 혼인은 무효라고 주장하며 교황에게 혼인 무효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클레멘스 교황은 헨리 8세와 카타리나의 결혼은 유효하며 그러므로 절대로 이혼할 수 없다고 판결을 내리고 만일 이 결정에 따르지 않으면 교회에서 쫓겨나는 파문을 당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헨리 8세는 교황과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때에 총리대신이 토마스 모어입니다. 토마스 모어는 불법으로 이혼하려는 헨리 8세의 뜻을 따르지 않고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헨리 8세는 토마스 모어를 쫓아내고 그 대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앉혔습니다. 왕궁의 지도신부 토마스 크래머를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하고 국무총리 자리도 주었습니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1533년 비밀리에 헨리 8세와 앤을 결혼시켰고 이어서 카타리나와의 결혼은 무효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자 교황은 1534년 헨리 8세와 앤과 크래머 대주교를 파문하였습니다. 그동안 영국에서는 교황을 공공연하게 비판하고 공격하였습니다. 결국 1534년 11월에는 ‘수장령’을 발표하여 왕이 영국 교회의 최고 우두머리가 되어 주교 임명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로마 교황청과의 관계단절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계속되었습니다.
헨리 8세는 앤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게 되었는데 이름이 엘리자베스였습니다. 카타리나에게도 딸밖에 없었으니 왕위를 누가 계승할 것인지 문제가 되었고 교회의 모든 권한을 차지한 헨리 8세는 수장령을 통해 모든 성직자와 공무원은 영국 교회의 우두머리는 왕이고 엘리자베스가 왕을 계승할 사람이라고 선서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이 선서를 하지 않는 사람은 대역 죄인으로 처형되었습니다. 성 토마스 모어, 성 요한 피셔가 바로 이때 처형되었습니다.
헨리 8세는 점점 폭군이 되어 선서를 거부하는 성직자와 수도자, 공무원 200여 명을 처형하였고 선서하지 않는 수도회를 해산하였으며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여 국가에 귀속시켰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복종하기로 선서한 성직자들만을 주교로 임명하여 영국 교회를 완전히 장악하였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교회가 영국 성공회입니다. 오늘도 교황청과는 무관하게 주교를 임명하고 가톨릭 신자는 영국의 왕이나 왕비가 될 수 없습니다.
타 종교를 이해하고 그리스도 안에 하나 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몫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암브로지오 로렌제티(Ambrogio Lorenzetti, 1290-1348)의 <예수 신전에 바치심“(부분)>,
1342년, 257 x 168cm,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이탈리아이탈리아 시에나 화파를 대표하는 화가 로렌제티의 아름다운 제단화로, 화려하고 선명한 색채와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표현이 시에나 회화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러 들렀을 때, 예언자 시므온이 생전에 구세주를 보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감격스러운 장면이다. 반면 입에 손가락을 물고 발버둥치는 아기예수의 천진난만함이 사랑스럽다.
영국의 가톨릭교회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계기는 영국 왕 헨리 8세의 결혼 문제입니다. 그 후 영국에서의 가톨릭교회는 종교개혁을 표방하고 나섰고 국가 교회로 발전하였습니다. 성공회의 위계제도, 전례, 성사, 신심생활은 가톨릭과 비슷합니다. 다만 로마 교황과 일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다릅니다. 현대에 와서는 여성 성직자도 양성하고 있습니다.
헨리 8세(1509-1547)는 1509년 12살의 나이에 15살의 카타리나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카타리나는 헨리 8세와 결혼하기 전에 헨리 8세의 친형 아아더와 결혼하여 4개월간 산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아더가 중병으로 죽자 교황으로부터 인척장애를 관면 받아 결혼하였습니다. 헨리 8세와 18년 동안 행복하게 살면서 7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1527년 헨리 8세는 궁녀 앤 보레인과 결혼하기 위해서 카타리나와 헤어지려고 하였습니다. 헨리 8세는 욕정에 눈이 멀었는지 궁녀를 차지하기 위해서 교회법이 금하는 것을 알면서도 앤과 결혼하려고 한 것입니다. 카타리나와의 사이에 아들이 없어서 왕의 자리를 이을 아들을 얻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헨리 8세는 레위기 18장 16절과 20장 21절에 보면 친형제와 결혼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데 이것은 하느님의 법인만큼 교황도 면제할 수 없는 것이므로 자신과 카타리나와의 혼인은 무효라고 주장하며 교황에게 혼인 무효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클레멘스 교황은 헨리 8세와 카타리나의 결혼은 유효하며 그러므로 절대로 이혼할 수 없다고 판결을 내리고 만일 이 결정에 따르지 않으면 교회에서 쫓겨나는 파문을 당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헨리 8세는 교황과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때에 총리대신이 토마스 모어입니다. 토마스 모어는 불법으로 이혼하려는 헨리 8세의 뜻을 따르지 않고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헨리 8세는 토마스 모어를 쫓아내고 그 대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앉혔습니다. 왕궁의 지도신부 토마스 크래머를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하고 국무총리 자리도 주었습니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1533년 비밀리에 헨리 8세와 앤을 결혼시켰고 이어서 카타리나와의 결혼은 무효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자 교황은 1534년 헨리 8세와 앤과 크래머 대주교를 파문하였습니다. 그동안 영국에서는 교황을 공공연하게 비판하고 공격하였습니다. 결국 1534년 11월에는 ‘수장령’을 발표하여 왕이 영국 교회의 최고 우두머리가 되어 주교 임명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로마 교황청과의 관계단절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계속되었습니다.
헨리 8세는 앤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게 되었는데 이름이 엘리자베스였습니다. 카타리나에게도 딸밖에 없었으니 왕위를 누가 계승할 것인지 문제가 되었고 교회의 모든 권한을 차지한 헨리 8세는 수장령을 통해 모든 성직자와 공무원은 영국 교회의 우두머리는 왕이고 엘리자베스가 왕을 계승할 사람이라고 선서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이 선서를 하지 않는 사람은 대역 죄인으로 처형되었습니다. 성 토마스 모어, 성 요한 피셔가 바로 이때 처형되었습니다.
헨리 8세는 점점 폭군이 되어 선서를 거부하는 성직자와 수도자, 공무원 200여 명을 처형하였고 선서하지 않는 수도회를 해산하였으며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여 국가에 귀속시켰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복종하기로 선서한 성직자들만을 주교로 임명하여 영국 교회를 완전히 장악하였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교회가 영국 성공회입니다. 오늘도 교황청과는 무관하게 주교를 임명하고 가톨릭 신자는 영국의 왕이나 왕비가 될 수 없습니다.
타 종교를 이해하고 그리스도 안에 하나 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몫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암브로지오 로렌제티(Ambrogio Lorenzetti, 1290-1348)의 <예수 신전에 바치심“(부분)>,
1342년, 257 x 168cm,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이탈리아이탈리아 시에나 화파를 대표하는 화가 로렌제티의 아름다운 제단화로, 화려하고 선명한 색채와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표현이 시에나 회화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러 들렀을 때, 예언자 시므온이 생전에 구세주를 보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감격스러운 장면이다. 반면 입에 손가락을 물고 발버둥치는 아기예수의 천진난만함이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