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성탄을 기다리며

2011. 4. 1. 오전 8:31:57

글자
성탄을 기다리며

 

우리는 흔히 전례를 ‘하느님께 드리는 공적인 예배’로 표현합니다. 좀 더 부연하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계속 수행하는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드리는 공적인 예배입니다. 전례는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입니다. 왜냐하면 사도적 활동의 목표는 모든 이가 신앙과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한데 모이고 교회 안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거룩한 제사에 참여하고 또한 주님의 만찬(성체)을 먹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 전례를 일 년을 한 주기로 하여 구세사를 새롭게 기념하며 하느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리고 교회 구성원 각자가 구원의 은총을 입어 성화의 길로 나아가게 합니다. 전례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시작되고 주님의 부활에서 완성되기 때문에 전례주년도 성탄과 부활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시작이 대림절입니다. 대림 시기는 성탄 전 4주간 동안입니다. 4주간은 구약시대에 4천 년 동안 약속된 구세주를 기다리던 기간을 상징합니다. 대림은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오심을 기다린다는 뜻인데 세 가지 의미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구세주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심을 해마다 경축합니다. 2천 년 전 일이지만 이 사건으로 인류는 구원의 은총을 받았고 오늘 우리에게도 그 은혜가 주어지고 있으니 경축함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 끝 날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그때 하늘에 사람의 아들의 표징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세상 모든 민족들이 가슴을 치면서,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마태24,30)하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미사 때마다 “복된 희망을 품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소서.”하고 기도합니다. 사도신경에서도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하고 고백합니다. 우리 일상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살기를 희망합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잘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요한14,23)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주님께서는 성체성사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주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만큼 기쁨과 평화로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셔도 내 마음 안에 주님을 낳아드리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대림 기간에는 화려함을 피하고, 주일에도 대영광송을 하지 않습니다. 제의는 회개와 보속, 속죄의 의미를 담은 자색제의를 입습니다. 그리고 구세주께서 가까이 오심을 일깨우기 위해서 대림환을 만들고 매주 촛불을 하나씩 늘려가며 기쁨을 준비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마음에 허물과 죄를 용서받고 거룩함으로 성탄을 준비 해야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준비된 마음 안에 태어나시길 원하십니다. 사랑합니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아기 예수 탄생>,1480년경, 우피치미술관, 피렌체, 이태리

 

성모 마리아께서는 두 손을 경배하는 자세로 포개고 그녀 앞에 누워있는 아기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있다. 좌측의 요셉 성인은 조는 듯이 자고 있다. 대부분의 이런 소재의 그림에서 요셉 성인은 주변부로 밀려나기 마련인데, 이 그림에서는 단연 성모님과 함께 화면의 양축을 이루고 있다. 오른쪽 중앙 멀지 않은 곳에 황소와 나귀가 보이고 양을 안은 두 목자가 등장한다. 좌측 상단에는 이집트로의 피난이 그려져 있다. 그렇게 함으로 예수님의 탄생, 목자들의 경배, 이집트로의 피난을 모두 한 그림 안에 담고 있는 셈이다. 아기 예수님의 누워있는 모습이 특이한데, 땅에 누워 있다기보다는 성모님의 옷자락 위에 떠 있는 듯이 보인다. 자고 계시는 예수님은 미래에 있을 그분의 죽음을 예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원형의 캔버스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작도 끝도 없는 연속이라는 점에서 영원을 상징한다. 유한의 삶을 영원으로 이어주는 통로를 그리스도께서 열어주고 계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전하려 하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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