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행하게 되는 희생과 보속은 단순히 ‘참아내자.’ ‘이겨내자’라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라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하시고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15,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치는 희생은 억지로 참아내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더 닮아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러 기쁨을 함께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신다.”(마태5,45)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하느님은 당신의 기쁨을 누구에게나 주시며 결코 한번 주신 것은 거두어가시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을 간직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제대로 간수하지 않아서 그 기쁨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주신 기쁨을 잘 지키고 더욱더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사람들에게는 처음에는 갈등이 생기고 또 할 일이 무척 많습니다. 사랑이 크면 클수록 행동치 않을 수 없고, 진실 될수록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께 가까이 가기만 하면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하느님은 기쁨의 원천이시기 때문에 준비만 하면 언제든지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는 “기쁨은 기도이며 힘입니다. 기쁨은 사랑이며 영혼을 사로잡을 수 있는 사랑의 그물입니다.”라고 하였고 성 아우구스티노는 “형제들이여! 세상을 두고 기뻐하지 말고 주님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죄 안에서 기뻐하지 말고 진리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허영의 꽃을 두고 기뻐하지 말고 영원의 희망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얼마나 오래 살든 간에 주님께서 가까이 계시니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하고 권고 하였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 기쁨을 지금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기쁨을 사는 것은 큰 활동입니다. 기쁨을 살면 기쁨이 널리 확산 됩니다. 주님을 만난 기쁨을, 성모님을 만나서 새로워진 나의 삶의 위로와 기쁨을 널리 확산시키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막달레나 마이스터, <막달레나와 생애의 일곱 가지 이야기>, 164x76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알몸으로 육욕을 증거하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중앙에 서 있다. 배경 그림은 왼쪽 위부터 <베다니아의 만찬에서 예수의 발에 향유를 바르는 마리아 막달레나>,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신 예수>, <마리아 막달레나의 승천>, <막 시미누스 주교에게 성체를 받는 마리아 막달레나>, 그리고 오른쪽 위부터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 <마르세유에서 설교하는 마리아 막달레나>,<광야에서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마리아 막달레나의 임종>이 재현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