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위령 성월에
11월은 위령성월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억하고 그들을 위하여 특별히 기도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인 반열에 오르지 못한 평범한 사람에게도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말미암은 몫이 부여되기를 희망하면서 기도합니다. 하느님 앞에 나아가려면 정화되어야 할 부분이 많은데 죽은 다음에 치러야 할 정화의 과정을 연옥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연옥에서 단련 받고 있는 이들을 기억하고 천국의 성인들과 함께 그들을 위하여 기도와 희생과 선행으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느님께 바쳐지는 것이고 또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전능을 살아있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 누구에게나 베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대사(大赦:Indulgentia)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대사는 고해 성사 후 죄에 상응하는 잠벌을 사면해 주는 혜택을 말합니다. 고해성사를 통해서 하느님 앞에서 대죄를 용서 받으면 죄 자체를 용서받을 뿐 아니라 대죄에 상응하는 영벌(永罰)까지도 면죄를 받습니다. 그러나 죄인은 용서를 받은 후에도 영혼에 상처를 입었고, 지은 죄 때문에 자기 자신과 이웃과 교회에 손해를 끼쳤으므로 대죄에 따른 일시적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 일시적 벌은 이 세상에서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채우지 못하면 연옥에 가서라도 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남의 물건을 훔쳐서 손해를 끼쳤다면 그 손해를 기워 갚아야 합니다. 이 보상행위는 누가 시켜서 하고,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보상 행위를 하지 않고 고해성사만 본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보속(補贖)입니다.
그렇다면 그 손해를 끼친 것을 직접 갚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에 상응하는 액수를 가난한 이웃을 위해 써야 합니다. 어찌 되었든 그것은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이나 모함, 험담으로 남에게 해를 끼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말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든지 그 당사자에게 사과를 하든지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제가 주는 보속도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연옥 벌의 감면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대사의 원천은 교회의 보고에 간직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공로와 보상입니다. “이 보화는 무엇보다도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모든 성인의 선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하느님 앞에서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하고 새로운 가치를 지닙니다. 그들은 모두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그분의 은총으로 거룩하게 살며 성부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였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구원을 얻었고 신비체의 일치 안에서 형제의 구원에 협력하였습니다.”(바오로6세 교황령) 교회는 이 보화를 합당한 마음자세를 가진 신자들에게 분배합니다. 이것이 대사입니다. 대사는 교황과 교황의 허락 하에 주교들에 의해 베풀어집니다.
성 토마스는 대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은총 상태에서 행한 선행’이라고 하였습니다. 대사는 잠시적 벌(잠벌:暫罰)을 부분적으로 면제받는 한대사(限大赦)든, 전적으로 면제 받는 전대사(全大赦)든 자기 자신을 위하여 대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화중에 있는 죽은 신자들도 성인들과 통공을 이루는 같은 지체이므로 우리는 그들을 위한 다른 도움과 더불어, 특히 그들의 죄로 말미암은 잠벌을 사면해 주는 대사로써 그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교회법1479) 그러나 산 사람에게는 양보할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스스로 노력하여 대사를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대사를 얻기 위한 조건은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첫째, 대죄가 없는 은총의 상태에 있어야 하고 둘째, 정해진 기도나 선행을 정해진 시기에 합당한 방법으로 이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전대사를 받기 위해서는 위 두 가지 조건 외에 다음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채워야 합니다. 1. 고해성사 2. 미사참례와 영성체 3. 교황님의 뜻대로 사도신경과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한번을 바쳐야 합니다. 때로는 교황님께서 특별대사를 선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대사는 죄를 용서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용서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그 죄에 따르는 보속과 잠벌을 면제해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11월 2일 위령의 날을 전후하여 묘지를 방문하고 위의 방법으로 기도하여 전대사를 받고 또 연옥의 영혼에게도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두초의 <지옥문을 깨뜨리는 그리스도>,1308-11, 나무에 탬페라, . 두오모 미술관, 시레나, 이태리
그리스도가 지옥문을 깨뜨리는 장면은 미술에서 흔하게 다루어지는 소재입니다. 12~13세기 중세 고딕 성당 색유리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화가들은 부활이 사망을 이기는 감동적인 순간을 지칠 줄 모르고 재현하고 있습니다. 이탈이아의 화가 두초가 그린 '지옥문을 깨뜨리는 그리스도'에서 그리스도는 순교의 십자가 표식이 달린 승리의 깃발을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무릎을 꿇은 아담을 이끕니다. 아담은 눈이 부신지 눈살을 찌푸리고 있습니다. 까마득한 창세기부터 이곳에 붙잡혀 있었다니까 어둠의 더께가 눈까풀을 무겁게 눌러서 그랬을 것입니다. 지옥의 쇠 문짝이 떨어져 나가고 영원한 어둠에 빛이 스며들자, 사탄은 제풀에 거꾸러져서 버둥댑니다. 두초의 붓은 그날의 현장을 마치 직접 목격한 것처럼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사망을 이기신 부활의 기적을 이보다 더 통쾌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요? 예언자 이사야도 이 날이 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당신께서는 즐거움을 많게 하시고 기쁨을 크게 하십니다." (이사야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