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머리를 땋아 올리거나
검소한 학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장관이 주최하는 파티에 초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평소대로 수수한 차림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걸어 파티 장소에 도착하였습니다. 오색 불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가운데 멋진 차림을 한 사람들이 그곳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입구에 다다르자 문지기가 갑자기 그를 막아섰습니다. 옷이 허름하다는 이유였습니다. 다행히 아는 사람을 만나 안으로 들어간 그는 구석에 앉았지만 그를 아는 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술을 권하는 사람도, 음식을 가져다주는 종업원도 없었습니다. 학자는 머쓱해져서 그곳을 나왔습니다.
그는 곧 집으로 돌아가 좋은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파티 장소로 갔습니다. 좀 전에 밀쳐냈던 문지기가 재빨리 거수경례를 하며 입구를 통과시켰습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이번엔 장관과 참석자들이 악수를 청하며 술을 권하였고 고급스런 음식도 나왔습니다. 그는 의자에 앉아서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습니다. 그러고는 옷을 벗더니 음식과 술에 가져다 대며 중얼거렸습니다. “옷아! 이것들은 네가 먹어라. 사람을 보고 주는 음식이 아니라 너를 보고 주는 음식이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옷차림이나 키가 큰 것 등, 외적인 겉모습을 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보십니다.(1사무16,7) 그러므로 “머리를 땋아 올리거나 금붙이를 달거나 좋은 옷을 차려입거나 하는 겉치장을 하지 말고, 온유하고 정숙한 정신과 같이 썩지 않는 것으로, 마음속에 감추어진 자신을 치장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 앞에서 귀중한 것입니다.”(1베드3,3-4)
주님께서는 우리가 앉거나 서거나 아시고 우리의 생각을 멀리서도 알아채십니다. 우리가 길을 가도 누워 있어도 주님께서는 헤아리시고 주님께는 우리의 모든 길이 익숙합니다. 정녕 말이 우리의 혀에 오르기도 전에, 이미 주님께서는 모두 아십니다.(시편139,2-4) 그러므로 주님 앞에 그리고 그분이 사랑하시는 이웃 앞에 겉꾸미거나 포장하지 않는 거룩함을 지켜야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죠의 <이삭의 희생>, 1603년경, 캔버스 유화, 104×135cm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카라바죠의 사실주의가 이 장면을 지배한다. 아브라함, 천사의 손, 이삭의 머리에 고정된 빛에 의해 사실성이 한층 고양된다.아브라함은 칼을 들어 올려 막 아들을 찌르려고 하고 있다. 다른 손으로는 아들의 목을 단호하게 누르고 있다. 성경에 따른 여러 세부(칼, 제단, 나귀, 장작, 숫양)가 이 장면에서도 역시 제시되어 있다. 몸의 대부분이 그림 바깥에 있는 천사가 아브라함의 손을 제지하면서, 소년 대신 제물로 바칠 숫양을 가리킨다. 전례적으로 볼 때 이삭의 희생 장면은 하느님 아버지에 의해 이 세상에 보내져 희생된 그리스도의 십자가처형을 예시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장작을 진 이삭은 그리스도가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이고 가는 것을 예시한다.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은 가시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원형이다. 이삭은 이미 장작을 놓은 제단 위에 벌거벗은 채 누워 있다. 자신의 운명을 깨달은 그는 곧 일어날 일에 대한 공포로 비명을 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