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지옥이 있다고?
어려서부터 늘 들어왔던 이야깁니다. “선한 일을 하면 천당에 가고 잘못을 저지르면 지옥에 간다.” 그렇다면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지옥을 만드셨을까요? 한마디로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그분께서 만드셨다면 사랑의 하느님, 자비의 하느님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릅니다. 불이 활활 타올라 잘못한 사람을 벌하는 어떤 장소가 아니라 인간이 갈망하는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주시는 하느님과의 영원한 단절에 처하는 고통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죽을죄를 뉘우치지 않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죽기를 고집하여 하느님과 단절되는 것 자체가 고통이며 심판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옥은 하느님과 또 복된 분들과 이루는 친교를 결정적으로 거부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까롤로 까레또는 “사랑이 있으면 천국이요, 사랑이 없으면 지옥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고통을 겪기도 하고, 어떤 사람을 시기하고 미워함으로써 마음의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 고통은 누가 일방적으로 주었다기보다는 관계의 단절로 말미암아 아파하는 상태입니다. 바로 이 상태를 지옥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옥의 고통은 하느님께서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떨어져 나감으로써 초래하는 고통입니다. 곧 스스로 선택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지옥에 대한 성경이나 교회의 가르침을 보면 불이나 고통으로 무섭게 경고하고 협박하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체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자신의 자유를 잘 사용하라는 호소입니다. 하느님을 등지거나 이웃과 등지고 사는 사람,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내 뜻을 고집하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 ‘지상의 지옥’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타인을 바라볼 줄 모르고 영원히 자기 자신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방식 자체가 이미 지옥입니다. 그래서 “지옥의 문은 안쪽에서 잠겨있다.”고 합니다.
지옥은 회개의 촉구입니다. 인간은 구원받을 수도 있고 버림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편으로 ‘자업자득’입니다. 자기가 부린 씨를 자기가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지옥은 하느님의 주권에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라는 촉구이기도 합니다. 사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느님의 주권을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 자체가 지옥의 출발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버린다.”(요한15,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판과 지옥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양심과 의지를 일깨워주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말합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벌을 주실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 앞에서, 그분 권능의 영광에서 떨어져 나가 영원한 파멸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2테살1,8-9)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야고2,13)
그러므로 지옥을 두려워 말고 자비로우시고 너그러우신 주님을 믿고 그분 안에 머물며 그의 가르침을 실행함으로써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반 아이크의 <최후의 심판>, 1430, 캔버스 유화, 메트로폴리판 미술관, 뉴욕
'최후의 심판'은 화면 위로부터 천국, 지상 세계, 지옥이 3단으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 인물들은 사실적인 비례를 떠나서 상징적인 중요성에 따라 크기가 결정되었다. 상단 중앙에 자리한 예수는 가장 크게, 그리고 지옥에 빠진 죄인들은 보잘 것 없이 작게 그려졌다. 마지막 심판의 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예수는 양손을 들었으며, 그 아래에는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이 예수를 향해 경배의 손짓을 하고 있다. 붉은 색의 그리스도의 옷은 죄를 사하는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