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성령으로 인하여
“마리아님께서 예수님을 낳으셨는데 어떻게 동정녀일까? 이 의문이 풀리면 성당에 나갈 것입니다.”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하며 우리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마태복음 1장 23-25절에 보면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그러나 아내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루카복음 1장 26-27절에서는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였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라고 성모님의 동정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참 하느님(신성)이시라는 것을 나타내며 동정녀께 나셨다는 것은 참사람(인성)을 취하셨다는 것을 확인해 줍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루카1,37) 인간이 ‘복제인간’을 추구하는 마당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못하실 것이 없습니다. 성령으로 인한 잉태는 하느님이심을 멈추지 않으시고 하느님께서 동시에 인간이 되셨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강생의 원천은 하느님께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아도 중요한 순간에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악의 어머니 사라(창세18장),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1사무1장), 그리고 삼손의 어머니(판관13장) 등은 모두 수태하지 못하는 여인들이었습니다. 곧 돌계집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세 여인이 모두 이스라엘에 구원을 가져다 줄 아이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은 불가능한 일을 이루고(창세18,4; 루카1,37), 비천한 이들을 들어 올리는(1사무1,11.2,7; 루카1,48.1,52) 하느님의 자비로운 은총의 결과입니다. 한마디로 구원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고백에는 성령으로 인하여 잉태하신 하느님의 아들은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취함으로써 온전히 인간이 되셨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만약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순수한 인간으로서의 탄생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이는 구약의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약속의 성취를 나타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로부터의 탄생은 하느님께서 구원 섭리의 약속대로 역사 안에 개입하셔서 활동하신다는 신앙을 드러냅니
다. 예수님께서는 참 하느님이시기에 동정녀 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마리아는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길 바랍니다.”(루카1,38)하는 응답으로써 ‘어머니’이면서 ‘동정녀’로 머물고, ‘동정녀’이면서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이 일은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마리아님은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이루어지소서.’ 하고 온전히 응답함으로써 자신을 바치셨고 그리하여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되었고 하느님이 그녀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이로써 마리아님은 예수님의 어머니로, 신앙의 모범으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증거자로 우리의 신앙에 의미를 줍니다.
성모님은 동정의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셨고 또 그 후에도 평생 동정이셨습니다. 동정녀 잉태의 강조점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행위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말해 주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신비에 응답하고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인간이 되셨음을 믿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준비된 여인으로 마리아를 보호하셨고 선택하셨습니다. 동정녀 마리아께 대한 믿음을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1440년 무렵, 187 x 157 cm, 프레스코, 산 마르코 박물관, 피렌체
천사가 인간을 찾아간다니 참 신기한 만남이다. 루카는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서로 다른 곳에 발을 딛고 있는 두 존재, 두 세계, 두 차원의 충돌을 증언한다. 가브리엘이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라고 말을 걸자 마리아는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 천사의 말대로 기뻐하기는커녕 어쩔 줄 몰라 하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낯선 이의 갑작스런 방문에는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