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남을 판단하지 마라
살다 보면 고집이 세고 급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부드럽고 여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감정이 풍부한 사람도 있고 아주 이성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꼭 단점이나 장점이라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고집이 세다’는 것은 주관이 뚜렷한 것으로 볼 수 있고 ‘급하다’라는 것은 추진력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감정적이라는 것은 마음의 여유가 있고 깊이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섣불리 저 사람은 ‘이렇다’ 혹 ’저렇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내가 상대를 알면 얼마나 알아서 시시콜콜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무엘 상권 16장 7절 이하를 보면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하고 이르셨습니다. 그러므로 겉모양을 보고 이러니저러니 판단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로마서 2장 1절에서 바오로 사도는 경고합니다. “남을 심판하면서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으니, 남을 심판하는 바로 그것으로 자신을 단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웃을 판단하거나,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마치 다른 모든 이들이 따라야 하는 표준이나 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면 매우 모순된 일입니다. 여러 면에서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 또는 자신이 내 놓은 의견을 받아들이기를 꺼려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두 적대시해서는 안 됩니다. 비판 받을 만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을 지탄하는 비평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판단하거나 비평하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부드러운 눈길이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실 까를 늘 염두에 두고 그 눈길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손길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남을 판단하기에 앞서 나를 주님 앞에 비춰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매일 거울을 봅니다. 거울을 보면서 잘못된 부분을 고칩니다. 화장도 고치고 옷매무새도 바르게 합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은 왜 바르게 하지 않는지요? 하느님의 말씀에 나를 비춰보고 예수님의 마음에, 성모님의 마음에 나를 비추어 고칠 것 고치고, 바로 잡을 것은 바로 잡는 우리이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헤롯의 향연>, 6세기. 사본화. 30.0x25.0cm. 시리아, 혹은 메소포타미아. 파리 국립도서관.
이 그림은 마태오 복음서 4장 3절에 기록된 <세례자 요한의 죽음> 장면이다. 오른쪽은 요한이 헤로데를 비난했기 때문에 감옥에 감금된 장면이고 왼쪽은 헤로데 자신의 생일연회에서 춤을 춘 살로메에게 요한의 머리를 주고 있는 장면이다. 이 사본은 소아시아의 흑해 연안 마을 시노베에서 발견된 것으로 마태오복음서에 포함된 5매의 삽화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