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예수님의 약점

2011. 3. 15. 오후 8: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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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예수님의 약점

 구엔 반 투안 주교님은 13년간 옥살이를 하셨습니다. 그 중 9년을 독방에서 지내셨고 손바닥을 제대와 성작으로 삼아 포도주 두 방울과 물 한 방울로 남몰래 미사를 봉헌하셨습니다. 주교님은 예수님의 약점을 사랑하셨습니다. 주교님께서 사랑한 예수님의 약점을 정리해 봅니다.

 1.예수님은 기억력이 좋지 않으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고난 중에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23,42)하고 말하는 당신 오른쪽 강도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23,43)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지은 죄를 모두 잊으신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도 작은아들이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루카15,18-19)하고 마음속으로 할 말을 되 뇌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멀리서 오는 아들을 보았을 때 모든 것을 잊고 아들에게 달려가 껴안으며 아들이 준비한 말을 할 겨를도 주지 않았습니다.

 

2. 예수님께서는 수학을 모르십니다.: 양 백 마리 가운데 한 마리를 잃었을 때 지체하지 않고 아흔아홉 마리를 사막에 놓아둔 채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섰습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구하기 위해 어떤 위험이나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계산할 줄 모르는 단순함과 죄인들을 위한 사랑이 넘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잔머리를 굴리며 계산을 합니다.

 

3. 예수님께서는 논리학을 모르십니다.: 은전 열 닢을 가진 여인이 한 닢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그 은전을 찾기 위해 등불을 켭니다. 은전을 찾자 이웃을 불러 모아 잔치를 벌입니다. 단지 은전 한 닢 때문에 친구들을 번거롭게 한다는 것은 비논리적입니다. 되찾은 은전을 축하하기 위해 잔치를 벌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들을 초대하여 은전 한 닢보다 더한 것을 낭비하는 것은 더욱 어이없는 일입니다. 잔치에 들어가는 비용은 은전 한 닢으로도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은전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해보면 정말 하나가 소중합니다.

 

4. 예수님께서는 재정과 경제를 모르십니다.: 포도밭 일꾼들의 비유를 생각해 보면 오전 아홉 시, 열두 시, 오후 세시와 다섯 시쯤에 온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고 똑같은 품삯을 주었습니다. 아마도 공동체의 관리자였거나 회사의 경영자였더라면 분명 망하거나 파산했을 것입니다. 새벽부터 일한 사람이나 오후 5시부터 일한 사람이나 똑같이 품삯을 주었는데 단순한 실수일까요? 계산착오를 하신 걸까요?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그리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단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마태20,15)

 

예수님께서는 이런 약점을 지니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는 사랑(1요한4,16)이기 때문입니다. 참사랑은 이유를 찾지 않고 헤아리거나 벽을 세우지 않으며 계산하지도 모욕을 기억하지도 않고 조건을 달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사랑 때문에 움직이시고 그 사랑은 바보짓에 이르게 하며 인간적인 계산을 허물어뜨립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약점을 사랑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사랑합니다.

  

아이크의 <롤랭 수상의 성모상>, 1436년. 파리, 루브르박물관,


그림의 안으로 들어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니콜라 롤랭(Nicolas Rolin: 1376-1462)이라는 주문자는 브르고뉴 공국의 3대 공작인 선량공 필립(Philippe de Bon)의 수상으로 부르고뉴 공국의 정치, 경제, 외교의 권력을 거머쥐었던 권력자였지만 그는 부유한 시민 계급 출신이었다. 아이크의 이 그림을 X-레이로 촬영한 결과 롤랭수상은 돈주머니를 차고 있었다고 한다. 그림이 진행되는 동안 이 돈주머니는 지워졌지만 그러나 그의 부(富)는 그림 곳곳에 나타나 있다. 이탈리아의 제단화에서는 주문자가 아직 작은 크기로 묘사되었던 시대에 플랑드르에서는 이렇게 주문자를 그림의 주역으로 크게 등장시키는 것은 참으로 대담한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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