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삶을 바꾸어 놓을 말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루카1,28)라고 한 천사의 인사는 마리아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느님의 총애를 받아 예수님을 잉태하게 되리라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보십시오.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하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전례기도 안에서 자주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라는 인사를 접하게 됩니다. 이 인사가 정말 나의 마음에 심오한 의미로 다가오고 있는가?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 힘이 되고 위로가 되며 나의 삶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귀한 말씀으로 살아있는가를 살펴야 하겠습니다. 사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십니다.’라고 확신한다면 나의 행동이 이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은 단지 경건한 생각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실제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권능과 사랑으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우리에게 조언하시는 아버지이며, 우리를 부르시며, 꾸짖으시며, 용서하시며 우리를 항상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여러분은 아름다운 저택에 살든지 보기 흉한 움막에 살든지 관심을 두지 마십시오. 그대가 자신의 거처를 사랑의 거처로 만든다면 그곳은 하늘나라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하느님께서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구엔 반 투안 대주교) 그러므로 하느님과 함께 사십시오. 하느님의 나라는 지금 여기서 하느님의 현존 안에 사는 것입니다.
나무와 돌로 된 성전을 짓고 가꾸는 데는 열심이면서 우리의 영혼을 하느님의 거처, 성전으로 만드는 일에는 열의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얼굴을 가꾸고 몸을 치장하는 데는 많은 시간을 쏟으면서도 영혼을 가꾸는 말씀을 듣거나 기도하는 시간은 자투리 시간을 쓰면서 허겁지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말씀이 가슴으로 다가와 나의 삶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은총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사랑합니다.
 |
|
[성화에 담긴 영성] 디에릭 보우츠(Dieric Bouts, 1415-1475)의
<수태고지(The Annunciation, 1450-1455)>
지영현 신부 (가톨릭미술가협회 지도신부)
디에릭 보우츠는 네덜란드 화가로, 동시대 화가인 로히에 반 데어 웨이덴(Rogier van der Weyden)과 함께 수학하여 그의 영향을 받았기에 초기 작품에 상징적인 제스처를 통한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는 그림이 많습니다. 이 작품 ‘수태고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배경은 넓은 내부 구조, 짙은 붉은 색 커튼이 드리운 침대, 나무로 짜인 작은 앉은뱅이책상과 기도서 같은 책이 전부입니다. 마리아가 자신의 방에서 기도하는 중에 천사 가브리엘이 붉은 커튼을 젖히며 나타나,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하리라고 예고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놀라 당황하며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1,28-34)”라고 답합니다.
보우츠는 이 긴박하고 긴장된 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를 향해 돌아앉지 않았습니다. 비스듬한 자세로 눈은 아래를 향한 채 손을 들어 자신의 마음 상태를 드러냅니다. 천사는 마리아를 향하여 무릎을 꿇고 한 손으로는 커튼을 젖히고 한 손가락을 세운 채 매우 경건하면서도 단호한 모습을 취합니다. 여기서 커튼을 젖히는 것은 숨겨진 하느님의 뜻이 드러난다는 계시를 나타냅니다. 또한 보우츠가 표현한 수태고지의 모습은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와 같은 작품에서처럼 천사와 마리아가 서로 마주보며 대화하는 모습, 천사와 마리아가 진솔하고 깊은 영적인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아닙니다. 대신 천사 앞에서 마리아는 천사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어떤 대화도 없이 등을 돌리고 앉아 있습니다. 이러한 침묵은 마리아의 인간적 고뇌와 긴장을 심오하면서도 심도 있게 드러내는 동시에, 이 침묵 속에서 거룩하고 역동적인 대화가 이어지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마리아는 이 거룩한 침묵의 대화에서 천사로부터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에 마리아는 이렇게 답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5-3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