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미래를 보고 살아라
신앙인은 미래를 보고 사는 사람입니다. 더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곧 올 것입니다. 오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한 그것은 결코 좋은 것으로 오지 않습니다.
창세기 48장을 보면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두 손자 므나쎄와 에프라임에게 축복기도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전통에 따르면 장자인 므나쎄에게 오른손을 얹어 기도하고 차남인 에프라임에게는 왼손을 얹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오른손 끝에 므나쎄를, 왼손 끝에 에프라임을 앉혀 놓았지만 야곱은 양팔을 엇갈리게 하여 축복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요셉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맏아들에게 오른손을 얻어 축복해 주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아들아, 나도 안다. 나도 알아. 이 아이도 한 겨레를 이루고 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우가 그보다 더 크게 되고, 그의 후손은 많은 민족을 이룰 것이다.”(창세48,19)하며 축복을 하였습니다.
축복을 바꾸어 준 이유는 그 이름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사실 ‘므나쎄’라는 말은 ‘나의 상처와 아픔을 하느님께서 잊게 하셨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과거를 청산하게 하였다는 뜻입니다. ‘에프라임’은 ‘미래는 번성하리라.’는 뜻입니다. 결국 야곱의 축복은 과거에 매어있는 축복이 아니라 미래 지향적인 축복입니다.
이사야서 43장 18절 이하에서는 “예전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생각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과거에 매달리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랬는데, 그때는 어땠는데 하면서 옛것에 매여 있습니다. 그러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전 것을 지금 여기서 어떻게 적용하며 근본정신을 살릴 것인가에 마음을 써야 합니다.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도 안 되고 발목을 잡지도 말며, 앞을 보고 더 좋은 것을 기대하며 또 기대를 이루어 가시기 바랍니다. 오상의 비오 신부님 말씀대로 지난 일은 하느님의 자비에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면서 오늘을 사랑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미래는 오늘을 통해 오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희망하는 만큼 오늘에 충직할 수 있기를 바라며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사랑합니다.
후고 반 데르 후스의 <뱀의 유혹에 빠진 아담과 이브>,1470
미술가들은 여성을 매우 추악하게 묘사하거나 남자를 유혹하는 음란한 괴물로 표현하는 두 가지 방식을 사용했다. 부정한 여자에 대한 불신감은 후고 반 데르 후스의 걸작 <인간의 타락>에서 절정에 달한다. 그림은 간교한 이브가 순진한 아담을 어떻게 유혹하는가를 흥미롭게 보여 준다. 교활한 여자와 천진한 아담의 표정을 비교해 보라. 하늘과 땅만큼 다르지 않은가? 화면 한가운데 이브를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그려 놓고 아담을 그 옆에 들러리 세운 것도 그만큼 여자의 죄가 남자보다 크다는 뜻이다. 더구나 화가는 사악한 뱀을 이례적으로 여체의 형상으로 표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