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내용은 태고시절에는 미국에 두 인종이 살았는데 한 민족은 바벨탑이 무너질 때 거기에서 직접 온 사람들이고 한 인종은 기원전 600년경 예루살렘에서 건너온 요셉 지파 사람들인데 바벨탑이 무너질 때 온 사람들은 요셉지파 사람들이 들어오자 도태되어 멸종되었고 이스라엘 사람들로 된 왕국들이 생겼는데 이 역시 기원 후 400년경에 망해 버렸고 그 남은 족속이 지금의 인디언들이랍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미국에 나타나셔서 복음을 전하시고 초대교회와 똑같은 교회를 세우셨지만 이 백성 역시 타락하여 멸망하였고 그때 맨 마지막에 남은 유일한 사람인 몰몬이 미국대륙의 역사와 복음을 기록하여 그모라 산에 묻었는데 그 황금판을 스미스가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원전 600년에 예루살렘에서 요셉지파 사람들이 북아메리카대륙으로 건너왔다는 것은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이고 기원전 600년경이면 예레미야 시대인데 그때는 대서양이나 태평양을 건널만한 항해술이 없던 시대입니다. 그리고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이전에 유럽 사람이나 근동 사람들이 미국에 건너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1492년에야 비로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디뎠던 것을 보면 몰몬경의 내용은 허무맹랑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미스는 몰몬경 외에도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계명의 책을 썼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이 왔으니 초대교회에서와 같이 기적과 이상한 언어, 병 고치는 은혜와 예언 등을 부흥시켜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미스는 몰몬경과 계명의 책, 그리고 성경을 경전으로 삼고 가족을 포함한 6명의 찬성자를 얻어 1828년 말일성도 그리스도교회라는 것을 조직하였습니다. 이들은 자칭 성도라 하고 다른 교파를 이단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일부다처였기에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어려움을 겪다가 일노이주에 신앙촌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일노이 주에서도 주 정부와 갈등을 일으켜 스미스와 그 동생이 감옥에 갇혔다가 결국 1844년 폭도들에게 암살당하였습니다.
스미스는 죽었지만 지도력과 조직력이 뛰어난 후계자 부리감 영은 1847년 소수의 신도들을 이끌고 로키산맥을 넘어 갖은 고생을 겪은 후에 유타주에 있는 그레이트 솔트레이크에 이르러 사막을 개간하여 정착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체계를 갖추고 전 세계에 선교사를 파견하여 자기네 교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한국 같은 경우는 잘생긴 젊은이들이 양복을 멋있게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전도하는데 영어를 가르쳐 주겠다며 접근하여 젊은이들이 많이 가담하고 있습니다.
몰몬교는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자기네 마음대로 짜깁기하여 만든 것이고 침수 세례를 거행하고 성찬식도 거행하는데 포도주 대신 물을 쓰고 하느님은 사람의 형상을 가졌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그야말로 하느님과 전혀 다른 분이며 성령은 하느님이 아니라 다만 힘이고 사람의 영혼은 사람이 나기 전부터 있어서 많은 영혼이 지상으로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천 년 동안 몰몬교도들과 함께 계시며 왕으로 계실 것이라고 합니다. 몰몬경에는 일부다처제가 금지되어있지만 실제는 일부다처제가 관행으로 되어 있어서 창시자 스미스는 50명의 아내를 거느렸고 2대 교주 브리감 영은 25명의 여자와 결혼하여 56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우리는 몰몬교를 사이비그리스도교라고 보는데 전교가 잘 되는 이유는 그들의 선교 열의 때문이라고 봅니다. 2-4년 동안은 의무적으로 선교에 헌신하도록 되어 있고 또 다른 이유를 들면 그들의 본거지인 솔트레이크시와 유타주가 다른 시에 비해 교육, 보건, 복지시설이 잘되어 있으며 시민들이 근면, 정직, 명랑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교 신자들인 우리의 삶이 세상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일 수 있기를 각성해야 하고 선교 열기를 새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알프레히트 뒤러의 <성 삼위에 대한 경배>, 1511년경
이 제단화는 현재 빈의 미술사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나이든 장니들을 도와주던 ‘열 두 형제의 집’이라는 기관의 예배당을 위해 뉘른베르크 출신의 부유한 상인 마테우스 란다우어가 주문한 작품이다. 이 의뢰에는 뒤러가 디자인하고 뉘른베르크의 조각가가 조각한, 장식이 풍부한 도금 목제 액자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1585년 합스부르크의 황제 루돌프 2세가 이 그림을 왕실 소장품으로 가져갈 때, 액자는 뉘른베르크에 그대로 남겨 두었다. 액자 윗부분에 조각된 최후의 심판과 패널에 빽빽하게 그려진 성인들은 성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에 바탕을 둔, 하나로 통합된 도상 체계의 일부분이다. 성 삼위 주변에 성인들을 특이하게 반원형으로 배열함으로서 뒤러는 가장 숭고한 이탈리아 작품들과 겨루면서 독일 미술사에서 전례없는 절정에 도달하고 있으며 특히 화려한 색채 사용이 매우 돋보인다. 광활하게 펼쳐진 배경과 장중한 고전적 구성과 더불어 뒤러는 꼼꼼하고 세밀하게 등장인물의 의상을 그렸는데 이는 전형적인 북유럽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는 대담하게 북유럽 양식과 이탈리아의 양식을 결합시키고 있다.
그리스도의 수난의 도구를 들고 있는 천사들은 생생하고 화려한 색채를 발산하고 있다. 강렬하고 밝은 색채는 뒤러와 동시대인인 '마티스 그뤼네발트'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성인들은 두 개의 반원을 이루면서 하늘의 성 삼위를 둘러싸고 있는데 이러한 구성은 바티칸의 라파엘로의 방에 있는 라파엘로의 프레스코화, <논쟁>(1508)의 구성과 비슷하다. 성녀들은 종려나뭇잎을 들고 있는데 이는 순교의 상징이면서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을 찬미하기 위해 가져온 종려나무를 시각적으로 연상시킨다.
뒤러는 십계명을 들고 있는 모세, 하프를 들고 있는 다윗, 왕족의 상징인 담비털을 단 가운을 걸친 솔로몬 등 구약의 인물과 당대의 의상을 입고 있기도 한 수많은 성인을 그렸다. 이렇게 훌륭한 초상화가 모여 있는 이 작품은 독특한 개개인이 서술적 구조 안에서 강렬하게 어울리게 그려졌기 때문에 ‘세익스피어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맨 왼편에 이 그림의 주문자 마테우스 란다우어의 초상이 보인다. 그는 겸손하게 무릎 꿇고 헌신적으로 기도하고 있다. 그의 수수한 어두운 외투는 진한 붉은색 주교복을 입은 성 히에로니무스와 금색옷을 입은 대(大) 그레고리 교황의 눈부신 망토와 매우 대조적이다.
뒤러의 자화상은 하단부 오른편에 자신의 서명과 라틴어로 연도를 써 넣은 커다란 기념비와 함께 보인다. 뒤러는 매우 잘생긴 남자였고 자신의 외모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한없이 넓은 고요한 강물이 있는 풍경은 뒤러가 베네치아 여행 때 칭송했던 가르다호수일지도 모른다.(천년의 그림여행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