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란시아

2011. 4. 4. 오전 9: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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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 독자면서 나는 왜 교회를 나가는가?
 

새로운 진리를 깨달은 독자가 전통 종교의 세속적인 신앙생활에 습관적으로 따르는 것은 큰 갈등과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아래 게시글을 읽으면서 예전에 다루었던 이러한 갈등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독자마다 입장이나 신앙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다룰 문제는 아니지만, 개인의 처지가 비슷하다면 참고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유란시아 책을 처음 읽으면서 이 책이 이단 서적임을 밝혀, 교회에 빨리 일러바쳐야겠다고 마음먹을 정도로 교회를 오래 다녔습니다. 유란시아 책을 삶의 중심에 두고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교회에 나가고 있습니다. 유란시아 진리를 받아들이면서, 교회를 나가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말씀하는 독자를 몇 분 만난 적도 있습니다.

문제투성이인 세속화된 교회와 유치한 설교 내용을 알면서 습관적으로 끌려 나가는 유란시아 독자를 보면, 진리의 실천을 외면하는 위선자로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진리와 역행하는 일이 수시로 일어나는 교회를 내가 왜 주일마다 나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유란시아 책이야말로 성경이 감히 견줄 수 없는 신성한 책이라고 확신하면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회에 주일마다 앉아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앞뒤가 안 맞는 행동 같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길들여져서 그런 건지, 영적 게으름 때문인지, 옳고 그른 것을 구분 못하는 것인지 가끔 되돌아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교회에 나가면 영적 갈증이 실질적으로 해소됨을 느끼고, 새로운 에너지로 삶에 탄력을 받으며, 유란시아 책에서 깨달은 여러 진리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이런 느낌은 스터디 그룹이나 혼자 책을 읽거나 묵상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습관적인 예배 형식이 심리적으로 평안을 주기 때문에 마치 명상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높은 차원의 느낌과 버금가는 체험을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명철하신 목사님이 교회에 나와서 성경이나 설교에 집중하지 않고, 엉뚱하게 명상 시간으로 보내는 이단적 행위를 아주 질이 나쁜 죄이며 사이비 교인이라고 무섭게 질타하지만, 성경보다 더욱 성경적이고 설교보다 더욱 차원 높은 설교로 해석하며 듣고 있으니 그런 공갈이나 협박이 귀에 들어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설교는 삶과 직결된 성경 진리가 주제이기에, 항상 유란시아 진리를 떠올릴만한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이러한 실질적인 이야기를 통하여 삶의 현장에서 적용되는 유란시아 가르침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런 동기가 없다면 아마, 막연한 생각으로 마음속에 머무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설교를 들을 때 유란시아 내용을 기억하며 성경을 업그레이드 시켜보곤 합니다. 처음에는 유란시아 가르침을 잣대로 설교를 평가하고 자질을 비평하며 실망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목사님도 발견하지 못하는 성경에 숨겨진 깊은 의미를 떠올리고 설교 내용에도 더욱 확대된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기도와 찬양이 단순한 형식이 아니고, 유란시아 계시의 고마움과 개인적 소망을 다짐해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곤 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수시로 일어났지만, 요즘은 오늘은 뭐가 씌었나 왜 저런 이상한 얘기를 하시나하는 심정으로 흘려듣는 여유도 생긴 것 같습니다.

유란시아 책에 확신을 가지면서, 가장 먼저 갈등을 겪은 것이 사도신경입니다. 사도신경의 다른 내용은 참을 수 있지만, 중간에 있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부분은 유란시아 진리를 받아들인 독자로서는 그대로 따라 외우기가 참 힘든 구절입니다.

낮 예배에는 이런 신앙고백은 안한다 하며 입을 다물고 넘어갈 수 있지만, 소그룹 예배에서는 침묵으로 넘어갈 처지가 아니라서 속이 심히 불편하지만, 분위기를 망칠 권리는 없다는 생각에서 사도신경을 외우게 됩니다. 마음이 보통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좀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조절자가 불가피하게 외우는 이 애끓는 심정을 설마 모르시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으로 마음을 가볍게 가지면서 기계적으로 외우곤 합니다. 외우고 나서, 이놈의 사도신경은 언제쯤 바뀔까 늘 중얼거려 봅니다.

이런 교회 생활을 듣고, 어떤 독자는 그런 배교자의 신앙을 가지느니 차라리 교회를 뛰쳐나오라고 조언했지만, 맹목적인 충성과 신앙을 거부하는 것은 배교가 아니라,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여 참 진리를 더욱 키워가는 신앙인의 자세라는 생각입니다. 교회를 뛰쳐나가는 것이 오히려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고 허용하고 포기하는 배교적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을 믿는 교회가 목사를 따르는 교회로 바뀔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한사람의 참된 교인이 있는 한, 그 교회는 하나님을 따르는 교회입니다. 몇몇 목사와 임직자를 뺀, 나머지 교인들이 모두 참된 신앙인인 교회도 많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유토피아 11-03-29
신앙심이 깊지는 않지만 그래도 좋은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마도 대다수 교인들이 비슷한 과정을 따르지 않을까 싶군요.
불가능할지 아니면 언젠가 기적처럼 갑자기 다가올지 알 수는 없지만. 기독교가 정식으로 유란시아 책을 받아들이고. 우선은 최소한 성경과 버금가는 경전으로 인정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새 진리의 선포겠지요. 그러면 교회도 전혀 낯설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예수님의 유란시아 전당으로 될 수 있겠지요. 지금으로서는 힘들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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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당천 11-03-29
 
교회에 무슨 유란시아를...가당치도 않은 발상같네요. 진리 이전에 십일조 제도만 포기해도 교회는 영적으로 급상승할 겁니다
 
유토피아 11-03-30
.  돈걷는 제도는 아무 문제가 안될겁니다. 걷은 돈을 어떻게 쓰는가가 문제죠. 기독교외에는 거의 다 십일조같은거 안걷는 것으로 아는데, 그래서 영적으로 상승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네요. 모든게 공짜인 종교단체가 있는지 잘 모르지만, 있다면 영적차원에서는 아주 보잘것 없을 것 같아요. 사람 심리가 그렇거든요. 일기당천님이 십일조에 불만이 많으신가보네요.^^
 
블루베리 11-04-02
어들어 실제로 세상을 바꿔야 하는 주인공의 절박한 느낌이 강도는 다를지 모르지만, 처지가 처지라서 실감이 갑니다. 세상을 차분히 바라보는 관전자의 연륜에서 나오는 긍정적인 느낌에 큰 도움을 받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뛰 와닿네요. 매일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 당사자의 입장이라서 화도나고 절실하고 초조한 느낌도 늘 따라다닙니다. 지치지않고 끝까지 해보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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