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맞게 표현된 말은 은 쟁반에 담긴 황금사과와 같다. 들을 줄 아는 귀에 지혜로운 훈계자는 금 고리요 순금장식과 같다.”(잠언25,11)라고 하였습니다. 알맞게 표현된 말은 곧 축복의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말할 때 기왕이면 부정적인 말을 삼가고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여야겠습니다. 남을 험담하고도 그가 복을 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훌륭하십니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아름답습니다.”하고 말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자녀에게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너는 나의 희망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몸에 배여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만나는 모든 이에게 사랑과 축복이 담긴 말을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축복의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하고 오히려 상처받고 무너진 채로 평생을 살아가는 이들도 많습니다. 제가 “사랑합니다.”하고 인사를 하는데 그 한마디에 감동하는 분이 계십니다. 자기는 일생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였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형제님을 사랑하십니다.”라고 하면 “정말 저 같은 죄인도 사랑하십니까?”하고 되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죄가 있기에 더 사랑하십니다. 그 허물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지요.”라고 대답합니다. 우리가 입교를 권유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중에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데 ‘알맞게 표현된 말’을 쓴다면 그 효과가 훨씬 좋을 것입니다.
집회서 20장 8절에는 “너무 수다를 떠는 자는 남의 빈축을 사고 말로 남을 누르려는 자는 남의 미움을 받는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사람의 혀는 아무도 길들일 수 없습니다. 혀는 쉴 사이 없이 움직이는 악한 것으로, 사람을 죽이는 독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미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느님과 비슷하게 창조된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같은 입에서 찬미와 저주가 나오는 것입니다.”(야고3,8-10)하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활동에 앞서 절제된 축복의 말로 무장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못 들은 체 해 두어라. 네 종이 너를 욕하더라도 귀담아듣지 마라. 너 자신도 남을 얼마나 욕했는지 모르지 않느냐?”(전도7,21-23)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주변 사람들의 이러저러한 말에 흔들리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좋게 이야기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오늘이기를 기대합니다. 사랑합니다.
카라바조의 <일곱 가지 자비로운 행동>, 1607년경. 캔버스 위에 유화. 390x260cm. 나폴리 피오 몬테 델라 메세리코르디아
이 그림은 매우 복잡한 구도를 가지고 있다. 일곱 가지 자비가 한 공간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모습으로 일찍이 시도된 적이없는 일이다. 그 화면 속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얽혀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그림의 윗부분에는 날개를 활짝 편 두 천사의 비호 속에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어두운 인간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성모 마리아는 자비라는 구원의 젖으로 상징되는 영원한 어머니로, 그 어머니의 넉넉한 사랑의 품을 알 때, 우리는 참되고 아름다운 행동을 할 수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아래의 인간세상은 어둠에 싸여있는 것이 하느님이 은총을 상기하기에는 여전히 많은 시련과 고통의 시간이 남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둡고 악에 물든 인간세상이라지만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구원과 자비의 빛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