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없는 성인 없고, 미래 없는 죄인 없다”라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허물로 누벼놓은 하루의 끝맺음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여전히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일찍이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시작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이사43,18-19)하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는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9,62)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복된 미래를 기대한다면 과거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지배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과거의 실패나 슬픔도, 그리고 성공과 영광도 과거는 이미 지나간 역사입니다. 따라서 주님을 만났으면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분께서 열어놓으신 복된 미래를 기대하며 그 미래를 지금 여기서 내가 살아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삶을 보면 그는 주님을 만나 새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 입니다.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 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영광과 상처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3,5-9) 영광에 머물렀다면 교만해졌을 것입니다. 상처에만 매였다면 그는 주님의 사도가 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성모님의 여정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아기의 출생예고로부터 말구유에서의 출산, 이집트로의 피난,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가슴에 담아야 하는 고통만을 생각한다면 불행합니다. 아마도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권위를 누리려 했다면 그분의 삶은 실패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과 섭리의 손길을 믿고 사셨기에 오늘 우리는 그분을 은총이 가득하신 어머니로 부릅니다.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그 약속된 미래를 사신 분이십니다. 우리도 옛 것에 얽매이지 말고 오늘로부터 영원한 미래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마사초(Masaccio)의 <개종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는 성 베드로>, 255x162cm, 1424-25년경, 피렌체,카르미네 성당
<개종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는 성 베드로>는 베드로가 한 젊은이에게 세례를 주고 있는 장면이다. 이 그림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주인공 베드로보다는 세례를 받고 있는 신체 건강한 남자이다. 근육질의 상체와 단단한 허벅지를 가진 이 젊은이는 당시 육체노동으로 살아가던 평범한 서민을 연상시킨다. 화가는 이 장면을 통해 인체를 자유자체로 그릴 줄 아는 솜씨를 마음껏 뽐내고 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뒤에서 옷을 벗은 채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 이제 막 상의를 벗으며 그 다음 차례를 준비하는 사람의 모습 등은 고도의 연출력과 데생 능력을 요하는 부분이다. 이는 일상생활에서의 무의식적인 행동을 포착한 것으로, 이 그림의 매력은 이처럼 멀고 먼 과거의 성경 이야기를 일상의 한 장면으로 환원시킨 데 있다. 마사초의 서민들에 대한 관심은 이 예배실에 그려진 그림 전반에 걸쳐 두루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