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강 교회의 위기

2011. 5. 22. 오전 6:4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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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광진 신부의 교회 이야기

 

제44강 교회의 위기


1989년 1월 27일,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네덜란드에서 활동 중인 신학자 163명은 독일 쾰른에 모여 쾰른선언(Kölner Erklärung)을 발표했다. 이 문서는 교황청이 오늘날 교회가 겪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보수적이다고 비판하고 있다.

 

교회역사를 통해 독일교회를 중심으로 스위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교회 등의 독일어권 교회들은 항상 교황청에 대해서 견제 내지는 비판적인 역할을 해왔다. 특히 90년대 이후로 일어난 오스트리아의 국민청원운동(Volksbegehrung)은 현대교회가 당면한 사상적 다원주의를 반영하고 있다. : 주교의 민주적 선출과 주교임기제, 사제독신제 폐지, 재혼한 이혼자들의 성사배령허용, 여성사제 서품허용, 인공피임 재고 등.

 

가톨릭교회는 교회 내부에서부터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상황에 직면해 있고, 교회와 세상의 간격은 더욱 멀어지고 있다. 교회는 완전히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빠르게 변하고 있고, 교회가 대처하기가 안쉽다. : 주일학교가 어렵고, 청년들이 교회를 외면하고 있다... 냉담자들이 늘어가고 선교도 더욱 어렵다... 이혼자들, 재혼자들 문제에다가 성직자들의 권위주의... 급격한 수도성소의 감소...

 

과연 우리가 어떻게 가톨릭교회의 순수성을 유지하면서 현대의 다양한 요구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1. 오늘의 세상변화

 

오늘날 세상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많이 바뀌었다.

 

1) 의식 : 이제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다고 인식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교회는 아직 '서열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2) 의사결정과정 : 의사결정과정도 이제는 보다 투명하고 '개방적'이 되었지만 교회의 의사결정과정은 전체적으로 아직 '폐쇄적'이다.

 

3) 소통방식 : 이제는 대화를 통해서 마음을 얻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지만 교회는 아직 엄격한 '순명' 속에 있다.

 

가톨릭교회의 시스템은 아직 세상의 정서에 익숙하지 않다.

 

 

2. 교회의 위기

 

 

1) 신앙의 위기

 

오늘날 사람들은 신앙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 영향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개인과 자유'를 가장 중요시한다.

 

신앙은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생각하고 자유보다는 계명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신앙이 오늘날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고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신앙은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 "사람은 무엇인가, 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인가, 고통은 무엇이며 고통을 겪을 때 어떻게 이겨나갈 수 있는가, 죽음은 무엇이며 죽음 앞에서 어떻게 의연할 수 있는가..." 사실은 신앙이 우리 삶에 큰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신앙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신앙은 우리 인생이 자기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생각하면서 살게 한다.

 

예수님의 한 생은 '오직 남을 위한 삶'이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기 눈앞의 것만 보기에 저 너머에 있는 신앙의 가치를 보지 못한다. 그러니 다들 신앙보다는 우선 재미있는 것을 찾아 바쁘게 사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은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는 것이 나약한 인간의 한계인 것 같다. 내적인 공허함이 정신을 황폐화시키고 결국은 삶을 망가뜨릴 수 있다.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2) 윤리의 위기

 

윤리의 위기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돈이 최고고 돈이면 다된다는 생각이 퍼져있다. 그러다보니 가치관이 흔들리고 온갖 부정과 부패가 불거지고 있다.

 

가톨릭 윤리의 위기는 특히 성윤리의 위기에서 전형적인 양상을 가지게 되었다. 성이 개방되어 상품화되고 있다. 쾌락이 성의 주요한 기준이 되고 있고, 성적 만족이 개인의 권리가 되고 있다. 그리하여 성이 온갖 형태로 상품화되어 매매되고 있다. 성매매가 법으로 단속된다고 하지만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성의 문제 외에 사회윤리, 생명윤리 문제가 확산되고 있다. 각종 테러, 마약, 폭력, 인신매매, 안락사, 자살, 시험관 아기, 마침내 줄기세포를 통한 복제인간에 이르기까지 과학주의의 환상은 그 끝을 모르게 전진을 계속하고 있다.

 

윤리적 가치가 준거점을 잃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로의 무분별한, 절제되지 않은, 여과되지 않은 개방을 부르짖고 있고, 일단의 사람들은 너무 빨리, 또 너무 앞서가 버렸다. 교회는 사회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교회의 전통을 고집하면서 사회로부터 따돌림 받을 각오를 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요구에 어떤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3) 성소의 위기

 

유럽과 남미, 북미의 성소의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가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무대가 바로 사제, 수도자들의 위기라 할 수 있다. 수도원, 수녀원간에 통폐합이 일어나고 있다.

 

성소가 격감하던 1960년대 유럽사회는 다음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국민소득 2만불 시기.

둘째, 출산율이 한 두 명으로 급격히 떨어지던 시기.

 

셋째, 포스트모더니즘이 일어나던 시기.

 

 

놀랍게도 지금의 우리나라가 유럽의 60년대와 비슷한 상황이다.

 

사제성소는 아직 괜찮은 편이지만 수도자들의 성소가 격감하고 있다. 급감한 출산율과 더불어 오늘날 아이를 키우는 방식이 옛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다르고, 교육방식, 사고방식, 삶의 방식들이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드가 되었다.

 

 

또 성소자들의 부르심의 동기가 순수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왜 사제, 수도자가 되려 하는가. 옛날 유럽에서는 부르심에 은밀하게 내재된 사회적인 동기가 숨어있었다. 성소의 동기를 순수하게 하는 것을 '동기정화'라고 한다. 동기정화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4) 사제, 수도자의 정체성

 

(1) 사제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첫째, 왜 사제가 되려고 하는가?

 

둘째, 사제가 되고난 후에 처음의 결심을 잘 지켜나가고 있는가?

 

사제를 가리키는 본래의 말은 '봉사'(diakonia)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성직자들은 평신도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들 위에 군림해왔다는 말을 들어왔다. 사제들은 서품 때의 순수했던 결심을 잊어버리고 어느새 권위주의에 물들어 갈 수 있다.

 

여전히 교회문제의 중심은 권위주의다. 권위주의는 중세시대의 유산으로, 아직도 많은 성직자들이 사제직을 신자들의 지배자로 생각하는 것 같다. 권위주의를 청산하지 못하면 사제직은 더 이상 봉사직이 아니라 봉사받는 직이 될 것이다.

 

 

사제들의 인간적인 나약함도 현실적인 문제다. 사제도 인간인지라 불같은 열정도 식고 피로에 지칠 수 있다. 세월과 더불어 건강도 나빠지고 마음도 약해질 수 있다. 이러한 인간적인 나약함 속에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이 때때로 힘겨울 때가 많다.

 

초세기 교부들도 사제생활의 어려움을 기록하곤 했는데 오늘날도 음미해볼만하다.

 

첫째, 사제자신의 자폐증. 사제로서 도저히 자격이 없다는 부정적인 체념이다. 스스로의 무력함과 부끄러움으로 많은 사제들이 갈등과 고민을 안고 산다.

 

둘째, 사제들간의 경쟁심리와 질투심리. 자기보다 더 잘 나가는 사제를 눈뜨고 못 봐주는 심리다.

 

셋째, 신자들의 입방다. 신자들은 자기 입맛대로 사제들을 비평한다. 신자들의 험담이 사제들을 아프게 한다.

 

신부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겠다. 사제직은 존귀하지만 사제직을 수행하는 사제들은 나약한 인간들이다. 오늘도 전 세계 40여만 명의 사제들이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사제직을 수행하고 있다. 훌륭한 사제도 많지만, 인간적으로 부족한 사제도 더러 있는 게 사실이다. 부족한 사제들을 욕하고 손가락질하기보다는 사제들이 처음 약속대로 죽기까지 사제직을 충실히 수행해나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다.

 

 

(2) 수도자들의 정체성도 흔들리고 있다.

 

첫째, 왜 수도자가 되려고 하는가?

 

둘째, 수도자가 된 후 처음의 결심을 잘 지켜나가고 있는가?

 

청빈, 정결, 순명이라는 삼덕을 지키면서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여 봉헌생활을 하는 수도자들도 급격한 세상변화에 그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과거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오늘날 모든 것이 다른 세상이 되었다.

 

과거 수도자들은 세상을 피하는 '도피의 영성'을 살았다. 중세의 세계관은 지금과 달랐다. 세속, 마귀, 육신을 3구라고 했다.

 

① 개인주의 : 내하나만 열심 해서 천당 가면 그만이라는 태도다.

 

② 내세주의 : 이 세상보다 저 세상을 중시하는 태도다.

 

③ 육신비하신앙 : 육신보다 영혼을 중시하는 태도다.

 

세상은 악이 들끓는 더러운 곳이고 그래서 수도자들은 세상으로부터 피해야 했다.

 

이러한 중세 수도생활은 많은 결실을 맺기도 했지만 다음과 같은 결과를 낳았다.

 

첫째, 수도자 개인의 재능과 능력은 철저히 묻혀버렸다.

 

둘째, 수도자들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다.

 

사제, 수도자들이 처음의 결심을 잘 간직하고 살아야 하겠다. 또한 오늘날 세상변화에 대한 안목을 갖추고 지혜로운 대처를 해나가야 하겠다. 교구나 수도회에 뛰어난 리더가 뽑혀야 할 것이고, 모든 구성원들이 단합하지 않으면 교회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3. 결론

 

교회의 위기 앞에 절박한 임무를 각성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현대의 시대적 요청과 전통적 신앙의 유산 사이에서 요구되는 균형감각'이다.

 

우리에게는 더 큰 절대적인 대명제가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이라는 진리이다. 그것을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지'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구원을 위해 연민의 마음으로 다가가셨듯이 교회도 연민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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