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강 여성사제문제

2011. 5. 22. 오전 6:3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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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광진 신부의 교회 이야기

 
제36강 여성사제문제 

1. 가톨릭교회의 여성사제서품 불가선언

 

 

1976년 10월 15일, 교황청 신앙교리성성은 '여성사제서품은 불가하다'는 가톨릭교회의 전통적 입장을 재확인하는 문서를 발표하였다.

 

1) 예수님께서 여자들에게 12사도의 직무를 맡기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2) 남자들로 이루어진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도 복음선포와 여러 봉사 직무에 여자들을 참여시키면서도, 사제로 서품 시키지는 않았다.

 

3) 그리스도는 남자였기 때문에 남자만이 그리스도의 역할을 대리하고 표지가 될 수 있다.

 

4) 여자도 사제서품을 받을 수 있었다면 성모마리아부터 가장 먼저 사제로 서품되었을 것인데, 마리아도 사제로 서품되지 않은 것을 보면 여성사제서품은 불가한 것이다.

 

 

오늘날 여성의 지위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역사의 오랜 유산인 여성차별은 이제 그 종말을 향하고 있다. 오늘날 여자들도 자아의식을 찾게 되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줄 알게 되면서, 남녀관계의 지위에 대한 인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오게 되었다. 오늘날 여자들이 사회 곳곳의 분야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교회내에서도 여자들이 교리교사로서 종교교육자로서, 복사나 독서, 성체분배, 강론 등 다양한 직무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와 함께 더욱더 나아가 '여자가 사제로 서품받기에 본질적으로 불가능한가'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 과연 사제인호라는 것이 남자의 영혼에만 찍히는 표지인가?

 

이에 대해 교황청에서는 여전히 '여성사제서품은 여전히 불가하다'는 입장을 확고하게 하고 있지만... 개혁적 신학자들은 '여성도 사제서품을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하고 조심스럽게 그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2. 여성사제서품 불가의 신학적 근거

 

 

가톨릭교회의 여성사제서품 불가의 결정적 원인은 '전통'에 있다.

 

이에 대해 개혁적 신학자들은 항상 남자들로만 이어져온 전통을 근거로 하는 여성사제서품 불가는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앙의 진리는 불변하는 것이지만, 신앙을 실현하는 제도와 방식은 그 시대에 맞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1) 성서적 근거

 

(1) 구약성경

 

전통적으로 여성사제직 반대의 근거로 창세기의 두 곳을 들고 있다.

 

첫째, 창세기 2, 18 : 창조설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둘째, 창세기 3, 1-24 : 원죄사화

 

신학자들은 아담보다 아담을 꼬신 하와를 범인으로 지목해 여자를 더욱 지독하게 몰아붙였다. 특히 창세기 3, 16절, "너는 네 남편을 갈망하고 그는 너의 주인이 되리라." 이런 구절 때문에 교회 안에서도 여자는 두고두고 손해를 보고 불평등한 대접을 받아야 했다.

 

이렇게 여자를 열등하게 보는 구약사상은 여성사제서품 불가의 바탕이 되고 있다.

 

이러한 구약사상에 대해, 개혁적 신학자들은 단순한 성경지상주의를 버리고, 성경의 표현이 드러내고자하는 본래의 정신을 이 시대에 맞게 올바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구약성경이 쓰여 질 당시의 유대사회는 극심한 남존여비사회였고, 그러한 사회의 불평등한 의식이 반영된 여성사제 서품불가제도는 오늘날 다시 검토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2) 신약성경

 

놀랍게도 예수님은 그 당시 사회상황과는 대단히 파격적으로 여자들을 대우하고 있다.

 

극심한 남존여비 사상의 유대사회에서 예수님은 남녀의 장벽을 깼다. '성차별은 있을 수 없다. 하느님의 자녀에는 남녀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확신이었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예수님의 파격적인 태도는 초대교회 때부터 제대로 계승되지 못하였다. 사도 바오로부터 어떨 때는 남녀평등을 말하고, 어떨 때는 남녀불평등을 말하는 등 사정에 따라 이중적인 여성관을 가지고 있다.

 

우선 남녀평등을 말하는 대목은,

 

첫째,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갈라 3, 28)

 

둘째,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1코린 12, 13)

 

셋째,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가 있을 수 없고, 여자 없이 남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1코린 11, 11)

 

이런 남녀평등의 여성관을 바탕으로 초대교회 여자들은 비교적 활발하게 교회내의 여러 직무에서 활동하였다. 선교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교리교육과 같은 예언직을 수행하였고 상당히 오랫동안 부제로 서품되기도 했다.

 

그러나 바오로는 한편으로 남녀불평등 사상을 말하고 있다.

 

남녀불평등 사상을 말하는 대목은,

 

첫째, 여자들은 공석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가리라는 것이다. : "남자는 하느님의 모상이며 영광이기 때문에 머리를 가려서는 안 됩니다...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 어울리는 일입니까?" (1코린 11, 2-16)

 

둘째, 여자들은 공석에서 침묵할 것이다. "여자들은 교회 안에서 잠자코 있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서 남편에게 물어보십시오." (1코린 14, 33-44)

 

바오로의 여성관은 사정에 따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3) 바오로 이후

 

오늘까지 교회는 원론적으로는 남녀평등을 말하지만, 각론에서는 하나같이 남자에 대한 여자의 복종을 명하고 있다. : "여자는 조용히 또 온전히 순종하는 자세로 배워야 합니다. 나는 여자가 남을 가르치거나 남자를 다스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조용해야 합니다." (1티모 2, 11-14. 참조 : 콜로 3, 18-4,1 ; 에페 5, 21-33 ; 티토 2, 1-9 ; 1베드 3, 1-7)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남녀차별의 관습을 깨고 여자들을 평등하게 대했지만, 초대교회가 이를 물려받지 못하고 남성중심의 성직제도가 확립되면서 여자들은 사제서품에서 제외되었다.

 

2) 그리스도는 남자였다

 

예수님은 남자로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여자는 그리스도의 대리자 역할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개혁적 신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 '예수님이 남자로 세상에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수적인 사실이다. 예수님이 인간을 구원한 것은 남자로서가 아니라 인간이 됨, 강생을 통하여서다. 여기서의 핵심은 예수님의 인간성이지 남성은 아닌 것이다. 예수님이 남자로 온 것은 그 당시 사회의 전통에 부응하기 위해서였지 반드시 그래야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3) 사도들은 남자들뿐이었다

 

예수님은 남자들에게만 사도직무를 맡겼기 때문에 여성사제서품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개혁적 신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 '그것은 역사적 사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그 시대 역사적 제약을 받았던 사실이었다. 당시 법률생활에서 여자의 증언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여자는 법정에서 아무런 진술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역사적 제약을 받았던 사실을 토대로 어떤 불변의 원칙을 만들 수 없다. 예수님은 여자가 사제직에서 영원히 제외된다고 말한 적이 없다.'

 

 

4) 성모마리아는 사제가 아니었다

 

성모마리아도 사제가 아니었고, 만약에 여자가 사제가 되어야 했더라면, 첫 번째로 마리아가 사제가 되어야 했을 것이기에 여자는 사제서품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개혁적 신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 '성모마리아의 모성은 그 어떤 사제직보다 크다. 성모마리아의 모성은 그것만으로 넉넉하고 충분하다. 마리아가 사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여성사제서품 불가의 근거가 될 수 없다.'

 

 

3. 평가

 

오늘날 한 공동체의 지도자로 여자들이 전면에 부각하고 있다.

 

지도자의 카리스마란 것이 인간의 카리스마인 것이지, 반드시 어떤 성과 결합된 카리스마만은 아닐 것이다. 일반사회에서는 여자가 공직을 맡는데 있어서 특별한 조건이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 사람의 능력여부이다.

 

따라서 여성사제직 허가 문제는 신학적으로 계속 토론되어야 할 것이다. 신학적 토론을 계속 하는 것은 시각을 객관화시키고 올바른 관점을 부각시킬 수 있다.

 

현대의 대표적 신학자인 칼 라너신부(1904-1984)는 여성사제서품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하고 있다. 특히 여자수도자를 사제로 서품시켜 수녀원 안에서라도 미사도 드리고 성사도 집행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요청이 제기되고 있다.

 

 

여성사제문제는 앞으로 계속 논의되어야 할 문제다.

 

어떤 사실이 교회 전체의 결정이 되려면 공의회를 거쳐야 한다. 그때까지는 신학자들의 의견들이 서로 대립되거나 서로 토론되면서 정제되는 과정이 필요하고 여건이 성숙되어야 교회전체의 신앙감을 바탕으로 교리로 선포될 수 있다. 하느님께서 여성사제서품을 원하신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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