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진 신부의 교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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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화란 무엇인가
새로운 문화를 만날 때 '문화충격'이라는 말을 한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그 민족의 인종적 시대적 장소적 문화라는 조건 안에서 살아가면서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형성해간다. 사실 문화를 정의는 쉽지 않지만, 간단하게 문화를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문화란 '인간의 사고와 행동, 생활양식을 지배하고 결정하는 정신적, 물질적 모든 요소'를 말한다.
2. 독일사람, 한국사람
1) 독일과 균형감각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폐허가 된 독일이 다시 일어설 때 손이 많이 필요했다.
독일은 당시 50년대 중반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을 많이 유치했다. 터키와 폴란드 등지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독일은 외국 노동자들에 대해 자국 노동자들과 거의 같은 조건으로 대우해 주었다. 임금․노동시간 등 노동조건에서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때 독일에서 번 돈을 착실히 모아 기반을 잡은 사람이 많다. 당시 독일은 가난한 나라 노동자들에게 커다란 용기와 힘을 주었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용기와 힘을 바탕으로 독일은 바로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어 냈던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독일은 또 아시아․아프리카 등지에서 우수한 인재를 유치해서 장학금을 대주고 공부를 하게 했다. 이 장학생들은 모두 자기나라에서는 엘리트들이었다. 이 사람들이 모두 공부를 마치고 자기나라로 돌아가면 그 나라의 지도층이 되었다. 이들은 자기들을 공부시켜준 독일에 대해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기 마련이다.
독일에서 살았던 한국의 노동자들과 지식층들은 어려움도 많았지만, 독일에 대해서 감사한다. 이런 방식으로 독일은 국제사회에서의 위상과 신인도를 인정받고 있다. 게르만민족이라는 자부심으로 다른 민족을 낮추어보거나 외국인들에 대해 적대적인 신나치주의자들도 있지만, 독일의 정책은 한결같이 정당이나 파벌의 이익을 넘어 국가 전체의 국익을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멀리 보는 독일의 안목과 균형감각이 부럽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절대적 가난에서 벗어나 완전한 선진국 대열을 목표로 더욱 매진하고 있다. 한강의 기적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 빠른 성장, 여기에는 뛰어난 기업인들의 기업가정신과 함께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깔려있다.
우리나라도 1980년대 말부터 노동력이 부족했다. 동남아에서 노동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파키스탄, 스리랑카, 네팔... 특히 조선족들이 대거 몰려왔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말을 듣는다.
우리도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들에 대해 좀 더 잘 대해 줌으로써 이들이 돌아갔을 때 반한파가 아니라, 한국에 대해 고마움을 가지는 친한파가 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이것이 글로벌 시대, 세계인의 왕래가 잦은 새시대의 경쟁력이 아니겠나.
2) 독일 수상 빌리 브란트(1913-1992)와 통합의 리더십
1969년 독일 수상에 선출된 빌리 브란트는 2차 대전 전쟁피해 국가들을 방문하여 독일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분단된 독일통일의 초석을 다진 뛰어난 수상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에 대한 세계의 시선을 싸늘했다. 하지만 브란트는 반대자들의 온갖 저항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유럽통합'과 '독일통일'에 기초를 놓았다.
1970년, 브란트는 먼저 폴란드를 방문해서 유대인학살기념비를 찾아 '나치의 만행에 대해 사죄'했다. 헌화도중 브란트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오랫동안 참회의 묵념을 올렸다. 각본 없는 수상의 행동에 외교관들은 당황했지만 세계는 수상이 보여준 진심어린 사죄의 눈물과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나치시대 때 브란트는 오히려 반나치 투쟁을 했었고 나치를 피해 망명생활을 했던 사람이었다. 브란트는 그 다음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1973년, 브란트는 서독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하였다. 당시 독일에 대한 유대인의 격앙된 감정으로 수상의 방문자체가 껄끄러웠지만 브란트는 솔직하고도 정중하게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가했던 만행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청했다. 이스라엘 수상은 멋진 말로 화답했는데 이 말이 유명한 말이 되었다. '우리는 용서한다. 그러나 잊지는 않을 것이다.' 이 방문이 독일과 이스라엘의 화해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 브란트는 분단된 독일의 통합을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브란트의 정책은 '동방정책'이었다. 동서독이 냉전을 버리고 화해협력으로 돌아서게 한 것이다. 당시 독일의 보수적인 사람들과 정적들은 브란트의 정책을 맹비난하였다. 브란트에 대한 인신공격에서부터 좌파빨갱이, 동독퍼주기 등 온갖 비난이 난무했다. 수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브란트는 흔들리지 않고 동서독의 통합을 추진해나갔다. 그리하여 브란트시대에 동독과 서독은 함께 유엔에 가입하였고 이산가족방문, 우편과 통신교류, 무역을 통한 상호 화해와 발전을 이루었다.
1970년, 브란트는 독일분단 이후 처음으로 역사적인 '동서독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상호간에 경제와 여행, 스포츠 등의 분야에서 활발한 교류를 활성화시켰고, 수차례 더 동독정상을 만나 독일통합의 초석을 다졌다. 이후 독일은 1989년에 통일을 이루었으니 브란트의 용기가 밑거름이 되었다. 정치에 혐오감을 갖고 있는 독일젊은이들도 빌리 브란트만큼은 가장 존경하는 정치가로 생각하고 있고, 브란트는 '독일 통일의 아버지'로 평가받고 있다.
3) 독일과 전후배상
매사에 철두철미한 사람을 보고 흔히들 '독일병정 같다'는 말을 한다. 독일은 전쟁뒤처리에서도 철두철미한 것 같다. 독일은 2001년 6월부터 2차대전 때의 피해자들에게 보상하는 돈을 송금하기 시작했다. 포로수용소에서 죽은 사람들 한 사람당 우리 돈으로 80만원씩, 또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난 사람들에게는 우리 돈으로 50만원씩, 총 5조5천억 원이 그 유족들에게 지급된다. 유엔독일대사는 이런 말을 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도덕적 책임은 끝이 없는 것이다."
올해 일제강점기 100년을 맞는 시점에서 일본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나라 민족들에 입힌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해 진정으로 용서를 청해야 할 것이다.
3. 한국문화의 특성
우리나라는 5천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중국이라는 큰 나라와 일본이라는 좀 호전적인 나라 사이에서 불행하게도 크고 작은 전쟁에 많이 시달려야 했다. 수많은 민족적 시련을 겪으면서도 우리 민족은 꿋꿋하게 극복해온 저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 민족은 독특한 민족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첫째, 우리는 인내와 끈기를 가진 민족이다.
둘째, 우리는 신바람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
셋째, 우리 민족은 좋은 머리와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넷째, 우리 민족은 끈끈한 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민족성을 바탕으로 이제 선진국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다 더 성숙한 문화와 의식을 가질 때 더욱 완전한 선진국이 될 것이다.
우리 의식과 문화에서 고쳐야할 점들을 함께 생각한다.
1) 집단주의
세상에서 '우리'라는 말을 제일 많이 쓰는 사람들은 아마도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끼리 똘똘 뭉쳐 단합하자는 뜻은 좋은데... 자칫 우리끼리는 서로 봐주고 다른 집단은 경쟁의 대상으로 보는 이기적인 집단성을 드러낼 수 있는 말이다.
집단주의란 '개인보다는 가족과 같은 집단이 더 우선되는 의식'을 말한다. 여기서 생긴 것이 '가족주의'다. 가족주의와 집단주의는 많은 문제를 낳는다.
(1) 붕당주의 : 능력보다는 혈연(가문), 지연(출신고향), 학연(출신학교)에 따라 서로 밀어주는 것이다.
(2) 기타 : 사교육문제, 촌지문제, 장례문화, 족보, 동창회, 지역감정 등이 우리의 집단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일 것이다.
2) 권위주의
유교 영향으로 우리는 '권위주의'가 강하다.
유교의 첫 번째 덕목인 효는 주로 아랫사람의 윗사람에 대한 태도를 가르치고 있고, 우리는 여기에 익숙하다.
한국말의 존칭체계도 서열주의를 반영하고 있다.
히딩크감독이 우리나라선수들을 보고 첫 번째로 지적한 것이 경기 중에 원활한 의사소통이 필수인데 선후배간에 질서가 강해서 도대체 소통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선후배의식이 너무 강해서 굳어있다는 것이고, 창의적이 플레이를 못한다는 것이다.
여성차별도 서열주의를 반영하고 있다. 논어 :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가 힘든데, 멀리하면 원망하고, 가까이하면 기어오르기 때문이다.'
3) 극단주의
우리는 극단적인 감정을 나타낼 때가 많다. 신명과 신바람을 넘어 극단적인 모습이 부정적인 경우도 많다.
학자들은 한국의 신바람 종교문화를 말하면서 대표적으로 무속인의 굿과 기독교의 부흥회, 김일성숭배 세 가지를 든다.
4) 폐쇄주의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지 못하는 폐쇄주의도 고쳐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정당간의 대립은 종종 상대 당을 역모로 몰아 죽음에 이르게 해서야 끝이 났다. 여기에는 국가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자기당의 이익과 지속적인 정권유지가 목표였다.
살기가 서린 정당간의 대립은 종종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아직도 정당간의 극단적인 정쟁, 같은 당내에서도 계파간의 암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대화나 타협보다는 소위 끝장대립이 국민들에게 혐오감을 주고 있다. 정치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국익보다는 자기 당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다.
일찍이 김구 선생은 남이 잘되는 것을 좋게 생각해주지 않는 우리의 심성을 안타까워하면서 '松茂栢悅'(소나무가 무성해지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말을 즐겨했다.
세계역사에서 반도국가 민족들은 진취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가 그랬고 로마가 그랬다. 우리민족도 진취적인 기상을 펼 좋은 지정학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 일찍이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네덜란드와 같은 반도국가들이 대양시대를 열고 세계를 경영하여 시야를 넓히고 국력을 키웠다. 장보고처럼 우리도 밖으로 나갔다면 우리의 상황도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민족은 같은 언어와 문화라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고 능력은 뛰어나다. 글로벌시대에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인이 많다. 진작부터 세계로 뻗어나가 그 기상을 폈어야 했을 것을, 역사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쇄국으로 돌아서 버렸다. 쇄국으로 민족의 기상이 쪼그라들었고 결국에는 일제 식민지 지배라는 참담한 불행을 겪었다.
성숙한 문화의식이 꼭 필요하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 나라에는 '국격'이 있다. 우리나라의 격을 올려야 하겠다. 그저 돈만 많은 천박한 부자보다는, 보다 품위 있는 개인과 국가를 이루어야 하겠다.
그동안 우리는 절대적인 가난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쳐왔다. 어느 정도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사회의 여러 가지 부실을 낳기도 했다. 사람은 돈만 있다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 돈이 중요하지만, 돈과 함께 의식과 문화가 있어야 한다. 돈과 함께 반드시 올바른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 나라도 돈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다. 저절로 우러나오는 향기, 곧 문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격동의 역사 안에서 수많은 고통을 겪으면서 한을 품고 살아온 우리이기에 더더욱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면 좋겠다. 또 글로벌 시대에 우리민족을 넘어 세계의 다른 민족들을 품을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전쟁터에서 죽은 병사를 보면 아군이든 적군이든 그 죽은 병사의 어머니가 있을 것이고, 그 어머니의 아픈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하겠다.
더욱 신앙인들은 내 혼자 잘 먹고 잘살다가 이담에 천당에 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 혼자 기도 열심히 하고 성인되고 천당에 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신앙인들은 남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하겠다.
니꺼내꺼 따져서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신앙이 아니라 남을 생각할 줄 아는 거룩한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다.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을 축복하여 주시고 모든 어려움에서 지켜주시기를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