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강 신부, 주교의 협력자

2011. 5. 18. 오전 6:4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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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강 신부, 주교의 협력자   

 

1. 사제직의 형성

 

 

원래 '사제'라는 말은 원래 주교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그러다가 500년대부터 주교와 신부를 가리키는 말로 같이 쓰이다가, 1200년대가 되면서 오히려 신부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사도들의 노력으로 예루살렘에 첫 교회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어서 점차 유대지역에 교회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새로 생겨난 교회들을 사도들과 신망 있는 원로들이 운영하였다.

 

가톨릭교회는 특히 바오로사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순식간에 로마제국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한 도시에 교회가 생겨나면 사도들은 그 교회를 책임지고 운영할 책임자를 뽑았는데 이 사람들이 오늘날의 주교였다. 주교는 일을 거들 협력자로 신부와 부제를 뽑아 교회를 운영하였다.

 

신약성경에 보면 감독(Episcopos)이라는 말이 주교를 가리키는 말이고, 원로(Presbyteros)라는 말이 신부를 가리키는 말, 봉사자라는 말이 부제(Diaconos)를 가리키는 말이다.

 

 

처음에는 교회가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주교를 중심으로 신부와 부제들이 주교를 보좌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점차 교회가 지방으로 확대되면서 '본당'이 생겨나게 되었고, 주교는 신부를 파견해서 본당사목을 맡기게 되면서 한 사람의 주교를 중심으로 여러 신부와 부제가 주교에게 협력하는 '교구'가 형성되었다.

 

 

대체로 400년대 초부터 사제들은 고유한 복장을 착용하기 시작하였고, 400년대 말부터 수도자들의 영향으로 삭발(Tonsur)을 하였고, 500년대 이래로 독신제가 널리 보급되었다.

 

트리엔트공의회(1545-1563)는 2디모 1,6-8을 인용해서 신품성사의 근거를 명시하고 있다. :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2. 사제직과 주교직

 

 

구약시대에는 하느님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와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사제'가 따로 있었다. 근데, 신약시대에는 말씀과 제사가 합쳐져서 사제가 예언자와 제관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게 되었다.

 

신품성사는 부제품, 신부품, 주교품 이렇게 세 단계가 있는데, 500년대 말부터 신부가 됨으로써 '신품성사가 완성'된다는 인식이 생기게 되었다. 왜냐하면 신품성사의 핵심을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신부가 됨으로써 신품성사가 완성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트리엔트공의회(1545-1563)에서 확인되었다. 공의회는 '사제직을 우선적으로 미사집전과 고해성사와 관련시키고 있고, 사제품을 신품의 완성'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주교는 신품에 있어서는 신부와 같지만, 다만 신부보다 더 큰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신부를 ‘미사 드리고 고해성사 주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는 주교품이 신품성사의 완성이라 하고 있다. : '거룩한 공의회는 주교축성으로 충만한 성품성사가 수여된다고 가르친다...'(교회헌장 21) 신품성사에 있어서는 주교나 신부가 꼭 같고, 주교는 다만 권한만 더 가진다는 것이 아니라, 주교품이 신품성사의 완성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신부를 첫 번째로 미사 드리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사람, 강론하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3.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제직무

 

 

옛날 트리엔트공의회는 사제직무의 초점을 '성사집행'으로 보았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사제직을 더욱 넓게 확대시켜서 사제직무를 설명하고 있다. : 신부는 주교의 협력자로서 신부가 하는 일은 '성사집행'만이 아니라 '말씀을 선포'하고, '신자들을 사목하는 일'이 핵심인데... 그 중에 첫 번째는 '말씀을 선포하는 일'이라고 하고 있다.

 

 

1) 말씀의 봉사(예언자직)

 

신부의 첫 번째 직무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은(교회헌장과 사제생활교령) 사제들의 첫 번째 임무가 복음을 전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 "사제들은 주교들의 협력자로서 하느님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선포하는 것이 첫째 직무이다."(사제생활교령 4항)

 

마태 28,19,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는 '너거는 온 세상에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이었다. 따라서 사제들의 목표는 교구나 교회 안 만이 아니다. 교회라는 울타리를 넘어 인류와 세상 전체다.

 

 

말씀, 곧 복음을 전하는 일이 신부들의 첫번째 사명이다. 복음을 듣고 사람이 모여야 성사집행도 가능하기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사제직무의 첫 번째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오늘날 사제들은 주어진 본당을 관리하는 관리자를 넘어 복음화의 투사가 되어야 하겠다.

 

복음선포는 예비자교리, 훈화, 강의, 강연 등 다양한 형태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실천적으로 첫 번째는 무엇보다도 '강론'이다.

 

오늘날 강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옛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사회가 발달하고 생활수준이 나아지면서 사람들의 정보수준이 놀랄만큼 향상되었다. 많이 보고 많이 듣다보니 많이 알게 되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아는 것이 힘이다. 정보가 힘과 권위의 원천이다.

 

이와 함께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수준도 볼라보게 높아졌다. 신자들도 사회에서 좋은 강의나 강연을 많이 접하다보니 웬만한 강의나 강론은 시시하게 되었다.

 

옛날에는 종교적인 강론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듣고 무조건 실천해야 했다. 하지만 오늘날은 특히 여러 종교방송에서 설교나 강론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듣는 사람들의 입맛도 까다로워지게 되었다. 귀맛이라고 해야 하나?

 

이와 함께 신부들의 강론도 이제는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 이제는 강론을 자기 입맛대로 평가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좋은 강론에 감동하기도 하고, 나쁜 강론에 실망하여 더 좋은 강론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강론이 좋으면 성당에 갈 맛이 난다고 하고 강론이 나쁘면 성당에 가기 싫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좋은 강론은 결코 말로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강론은 생활에서 나온다. 사제 평소의 좋은 생활에서 좋은 강론이 나온다. : 확신에 찬 목소리, 진솔한 열정,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인생문제에 대한 처방... 등등은 평소 신부들의 정리된 생활에서 나온다.

 

 

오늘날 다들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세상이다. 할 일이 많다. 모임도 왜 그래 많은지... 정신없이 바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길이 막히면 어쩔 줄 몰라한다.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느님말씀이 힘을 줄 수 있다.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이 주옥같은 하느님말씀을 목말라 하고 있다. 진리의 말씀이 사람들을 일으켜주고 어깨를 어루만져 줄 수 있다. 진리의 말씀이 사람들에게 자유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 말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사제들이 강론을 목숨처럼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사제들이 죽을힘을 다하는 강론, 명품강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명품강론은 쓰러졌던 사람들을 일으키고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방송에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가 있다. 사제들은 강론의 달인이 되면 좋겠다.

 

 

2) 전례의 봉사(사제직)

 

사제는 전례를 주관하는 사람이다. : "사제들은 주교의 집전으로 하느님께 축성되고,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특별한 자격으로 참여하며, 성사 거행에서 그리스도의 봉사자로 행동한다."(사제생활교령 5항) 전례란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를 말한다. 7성사가 대표적인 전례다.

 

무엇보다도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미사가 전례의 중심이다.

 

옛날에는 미사를 비롯한 모든 전례를 거행하는 사람은 사제였다. 신자들은 단순한 참석자였다. 공의회 이후로 사제와 신자들이 함께 전례를 거행하는 개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전례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이 전례를 거행하지만 사제는 전례를 주관하는 사람이다.

 

전례를 주관하는 사람으로서 사제는 전례의 의미와 효과가 전례에 참석하는 공동체 모두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례용어, 전례음악, 기타 발음과 상징적인 동작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주의와 배려는 전례 주관자로서 요구되는 봉사의 자세이다.

 

 

성사는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이다. 그냥 만남이 아니라 특별한 예식을 통한 만남이다. 가톨릭교회는 시기별로 일생동안 중요한 시점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축복을 받으면서 살 수 있도록 7가지 성사를 실행해왔다. 태어나면 즉시 하느님을 만나는 세례성사, 사리를 분별하는 나이인 초등학생 정도에 하느님을 만나는 성체성사, 하느님과 화해하는 고해성사, 철이 드는 나이인 중학생 정도에 하느님을 만나는 견진성사, 장성해서 가정을 이루는 혼인성사, 교회직무를 맡는 신품성사,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병고를 이기는 병자성사...

 

 

성사집전에 핵심은 '정성'일 것 같다.

 

성사는 하느님의 거룩함과 은총이 신자들에게 전해지는 특별한 의식이다. 사제들이 거룩한 성사를 주례함에 있어서 정성을 다할 수 있으면 좋겠다. 건성으로 거행하는 미사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있고, 건성으로 거행하는 고해성사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사제들이 지금 바치는 미사가 일생의 마지막 미사라는 각오로 집전에 정성을 다해야 하겠다.

 

부디 사제들이 정성을 다해 성사를 집전하고 사람들이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옛날 방탕했던 아오스딩 성인이 단 한 번의 미사에서 회개하고 사제의 길을 갔듯이, 잘 바친 단 한 번의 미사가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 모든 사제들이 온 마음과 힘을 다하고 온 정성을 다해 성사를 집전하고 참석자들이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3) 사목의 봉사(왕직)

 

"사제들은 주교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가족을 한 형제애로 모으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인도한다."(사제생활교령 6항)

 

하느님의 백성을 돌보는 일을 '사목'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제들을 '사목자'라고 불렀다.

 

사목자라는 말의 원래 뜻은 맡을司 칠牧, '구약시대 유목사회에서 양을 치는 목자'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이런 의미로 신자들과 함께하는 삶이 가장 사제다운, 사목자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옛날에는 '사목'이라는 말이 '성직자가 신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근데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이 말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인류구원을 위해 봉사하는 모든 일'을 가리키는 말로 확대되었다.

 

따라서 넓은 의미로 세례 받은 모든 사람이 사목자가 되었다. 사제는 사목의 책임자, 평신도와 수도자는 사목의 협력자다. 그리하여 협력이 가장 중요하게 되었다. 사목을 성공하기 위해 신부, 수도자, 평신도가 함께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신부 혼자 다 하는 1인 독주는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대도 아직까지 많은 사제들이 사목을 사제의 전유물로 생각하고, '사목방침'이라는 말로 밀고 나가고 있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독선적이다는 말을 듣게 되고 또 권위적이다는 욕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사목은 예수님께서 인간구원을 위해 하셨던 고귀한 일을 계속 하는 것이다. : 삶에 지친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쓰러지는 가정을 일으켜주며,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고,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안아주는 그 모든 일이다.

 

 

사목자의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예수마음'이다.

 

어떤 경우에도 예수마음으로 사람들을 축복해 주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간음한 여인... 돌로 치지 않고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창녀를 책망하지 않고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보잘 것 없던 사람들이 예수님과 단 한 번의 만남으로 큰 기쁨을 얻었다. 그 기쁨은 그들에게 큰 행복이 되었다. 그 행복은 겉으로 보기에는 작은 것 같지만... 죽음도 두렵지 않는 행복이 되었고, 그들 삶을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진실로 사제들도 이 시대에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삶에 지친 사람들, 방황하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어야 할 것이다. 언제나 살인미소로 신자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주어야 할 것이다. 진실된 면담은 그 어떤 정신과 의사보다도 더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하고 진정으로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예수마음은 사람들의 꽉 막힌 인생을 뚫어주고 불행한 인생을 바꾸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신부님들이 서품 때의 약속대로 사제직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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