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로마제국을 선교시켰던 '평화'
가톨릭은 유대교에서 갈라져 나온 신흥종교였다.
너무나 미미하고 보잘것없던 신흥종교... 작은 무리였던 가톨릭이 로마제국 전체로 퍼져서 로마제국을 개종시킨 것은 결코 쉽게 된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 핵심이 무엇이었을까...
그 첫 번째는 놀랍게도 '평화'였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서로 평화롭게 살았던 때문이었다. 서로 안싸우고... 평화가 로마제국을 개종시킨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제자들은 예수님 생전에는 예수님이 정말로 누구신지 잘 몰랐다.
그저 예수께서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헤로데를 물리치고, 또 로마제국마저 물리치고 새로운 왕국을 세워서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님이 왕만 되면 제자들은 팔자 고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모와 처자를 떠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오만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운 땡볕에 다리가 아파도 쉬지도 못하고 다녀야했고, 배가 고파 사흘씩 굶기도 했다. 마땅히 잘 곳이 없어서 나무 밑에서 잔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고, 사람들에게 쫒겨 나서 도망을 다닌 적도 많았다. 그 모든 고생을 하더라도 예수께서 왕만 되면 모든 고생이 끝나고 높은 자리 하나 얻어서 평생을 호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평소에도 제자들은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기도 했고, 제자들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미리 청탁을 하기도 했다. '예수님, 왕이 되시면 우리아들 하나는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주이소...'
그렇게 기다려 왔는데, 웬걸, 예수께서 로마 군인들에게 맥없이 붙잡혀서 끌려가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크게 낙담하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속으로 '이기 아닌데, 이라만 안되는데...' 하면서 발버둥을 쳤지만, 예수께서 잡혀서 헤로데의 관저로 끌려가 두들겨 맞는 것을 보고는, 모든 게 허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제자들은 군중 속에 숨어서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혹시라도 예수님과 한패라고 붙잡히면 같이 맞아죽겠지 싶어서 제자들은 비겁하게도 하나둘씩 스승을 버리고 도망쳐버리고 만다. 그것도 예루살렘에서 150km나 떨어진 갈릴래아까지 비호같이 달아나버렸다.
그나마 수제자인 베드로만 사람들 틈에 몰래 남아서 숨을 죽이고 보고 있었다.
안그래도 불안하게 보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아줌마가 베드로를 툭치면서 '당신도 저 사람과 한패지요?'하고 물었다. 화들짝 놀란 베드로는 딱 잡아떼고 있다. '아니오, 사람을 잘 못 봤소. 나는 저 사람이 누군지 모르오.' 이 아줌마가 다른 곳으로 가면 좋겠는데, 베드로 주변에서 계속 어른대다가 두 번째로 '아냐. 당신 맞아. 안면이 있는데.' 재차 따지자, 베드로는 괜히 더 큰소리로 '이 양반아, 나는 저 이 누군지 모른다 안카나.' 쪼끔 있다가 또다시 '당신 분명 맞아, 내가 지난번에 봤어.' 세 번째로 다그치니까, 베드로는 '이 양반이 사람 잡네...'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잡아뗀 베드로는 그 질로 스승을 버리고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스승이 붙잡혀서 두들겨 맞고 있는데도, 제자들은 저만 살겠다고 다들 비겁하게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이제 예수님은 혼자가 되었다.
예수님은 헤로데 궁전에서 밤새도록 두들겨 맞으면서 심문을 받았다. 종교재판이었다. 유대율법에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는 사형이었다. 예수님은 스스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사형이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사람을 사형에 처할 권한이 없었다. 그래서 유대 권력자들은 로마총독에게 고발하여 사람을 처벌하였다. 하지만 이스라엘 율법을 어기는 것은 로마제국에 직접적으로 도전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로마총독도 때때로 애매할 때가 많았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떡하든 큰 죄를 덮어씌워서 예수님을 반드시 죽이고자 했다. 당시에 가장 큰 죄는 반역죄였다.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 이 사람이 자기가 왕이라칸다'고 고발했던 것이다.
날이 새자 로마총독 빌라도의 출근시간에 맞추어 예수님은 빌라도관저로 끌려왔다.
이제는 정치재판을 받아야 했다. 드디어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 앞에 나왔다.
근데 빌라도가 한눈에 봐도 그 말이 맞지 않았다. 왕이 된다는 사람이 너무나 행색이 초라하고, 군대도 없고, 아무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총독 빌라도가 보기에 예수님은 너무나 초라했다. 로마제국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크게 출세해서 식민지 이스라엘의 총독으로 파견된 빌라도가 보기에 예수님은 참으로 하찮은 존재였다.
당시 로마제국은 많은 식민지를 다스리고 있었다. 강대국이었던 이집트를 비롯해서, 시리아, 그리스 등등. 그 식민지 중에서도 이스라엘은 아주 작은 식민지였다. 이 쪼끄마한 식민지에서, 그것도 신분이 낮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잘 배우지도 못했던 촌무지랭이 예수라는 청년이 왕이 된다는 소리가 빌라도가 보기에 정신이 좀 나간 친구이거나 아니면 이스라엘 권력자들이 모함을 하는 것임을 직감하였을 것이다.
빌라도는 저런 하찮은 예수를 심문하는 것이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고발을 했기 때문에 심문을 한다. : '니가 저 사람들 말대로 왕이냐?' 예수님은 놀랄만큼 침착하게 대답한다. '내 왕국은 이 세상이 아니다.' 성질 급한 빌라도가 재차 묻는다. : '아무튼 니가 왕이냐?'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예수님의 대답이 이어진다. '내가 왕이라고 당신이 말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러 왔다.' 진리를 증언한다는 예수님의 말이 빌라도에게 가소롭게 들렸다. '지까짓 게 뭐를 안다고...', 이렇게 생각한 빌라도는 속으로 역시 '이 친구가 별로 죄 지은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나가는 소리로 예수님께 '진리가 무엇인가'하고 묻고는, 예수님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밖으로 나가서 군중들에게 말한다. '내가 심문해봤는데, 이 친구는 아무 죄도 없다.' 이렇게 되자 유대인들은 악을 쓰고, '예수님을 죽여야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 '죽이시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군중들이 흥분하게 되자 귀찮아진 빌라도는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내주고 말았다. 빌라도에게 한 유대청년의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은 골고타로 십자가의 길을 가셨던 것이다.
스승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을 때에 같이 붙잡혀 죽을까봐 멀리 도망친 제자들이었다. 스승이 뺨을 맞고, 발로 채이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데도 살겠다고 도망갔던 비겁한 제자들이었다.
제자들은 골방에 문을 꼭 걸어 잠궈 놓고 숨어있었다. 유대인들에게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부활개념이 없었기에 스승의 죽음으로 만사가 끝이라고 체념했다. 3년 동안 처자식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것이 허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고기를 잡아먹고 살아야하나. 어디서 품이라도 팔아먹고 살아야 할 것인데, 이런저런 걱정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은 조용히 숨어있어야 했다. 괜히 함부로 밖으로 나 다녔다가는 붙잡혀서 죽을 수 있으니까 우선은 숨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를 3일째... 갑자기 죽었던 스승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턱 나타나신 것이다. 처음에는 유령인줄 알았다. "유령이다!" 예수께서 손과 발을 보여주셨다. "유령 아이다. 함 봐라." 그제서야 제자들은 스승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부활하신 스승 앞에서 제자들은 너무나 기뻤다. 성서는 '너무나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고 표현하고 있다.
부활은 제자들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죽음이 전부가 아니구나, 죽음 뒤에 부활이 있구나...' 그것은 말할 수 없는 놀라움이었고 벅찬 감동이었다. 제자들은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걸어 잠궜던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가 사람들 앞에서 자기들이 겪은 것을 힘차게 증언하기 시작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구세주였다. 하느님은 그분을 부활시키시고 우리의 주님이 되게 하셨다. 우리가 그 증인들이다. 예수님을 믿으시오. 예수 믿고 그 가르침대로 살면 현세에서 행복하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부활을 확신한 제자들의 증언으로 조금씩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모습이었다. 초대신자들은 그 수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신자들은 똘똘 뭉쳤고 단결했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극진히 사랑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부활하신 예수님의 첫 번째 말씀대로 신자들은 모두가 평화롭게 살았다. 신자들은 작은 무리였지만 평화가 진정으로 큰 힘이 되었고, 그 힘은 마침내 로마제국을 굴복시킨 엄청난 힘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로마제국으로 번지는 가톨릭교회
당시 로마제국은 강대한 군사력과 정치, 웅장한 문화와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수십 개의 속국을 다스리던 역사상 가장 강대한 국가였다. 그 속국들 중에 유대인은 그야말로 보잘것없는 작은 민족이었다. 이 유대의 시골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라는 청년이 세상의 구세주라는 말이 로마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가소롭고 우스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제자들의 불굴의 의지와 확고한 증언과 함께 신자들이 서로 똘똘 뭉쳤던 초대교회는 점점 로마제국 전체로 번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황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책임자와 주요 신자 몇몇만 잡아 죽이면 끝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렇게 해서 박해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박해는 더욱 신자들을 단결시켰고 강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더욱 혹독한 박해가 300년 동안 계속되었다.
로마에 콜로세움이라는 경기장이 있다. 돌로 지어진 이 경기장은 당시에 5만 명이 들어가는 엄청난 규모였다. 프로야구나 축구경기가 없던 당시 로마사람들은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들끼리의 결투를 즐겼고, 검투사와 사자와의 싸움을 즐겼다. 또한 가톨릭신자들을 붙잡아다 굶주린 사자에게 먹이로 주면서 처형했다. 콜로세움...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던 피맺힌 곳이다. 하지만 신자들은 굴하지 않고 더욱 굳건한 신앙으로 뭉쳤고, 300년 뒤에는 마침내 황제까지 세례를 받고 가톨릭을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하게 되었던 것이다.
로마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평화
강대했던 로마제국... 정치, 군사, 경제, 문화, 종교 등 모든 것이 안정되어 무어하나 아쉬울 것이 없던 로마제국사람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은 그냥 쉽게 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초대교회 신자들이 오직 주님부활을 확신하고 평화롭게 살았던 때문이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많이 배운 사람들이 아니었다. 많이 가진 사람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똘똘 뭉쳤다. 그들 입술에는 언제나 웃음이 넘쳤고 얼굴에는 평화가 흘렀다. 로마제국 사람들은 많이 가지고 많이 배웠으면서도 서로 싸우고 욕하면서 살았지만, 신자들은 평화롭게 살았고 죽음 앞에서도 기꺼이 목숨을 내 놓을 수 있었다. 바로 이런 모습들이 로마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사람들은 신자들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살 수 있게 하는가...'
신자들은 부활을 확신하고 서로 평화롭게 살았다. 이것이 로마사람들에게 벅찬 감동을 주었고, 300년 동안 사람들을 하나씩 둘씩 가톨릭으로 개종시켰던 것이다. 평화가 로마사람들의 마음과 혼을 사로잡았던 것이고, 마침내는 로마제국을 녹였던 것이다.
안싸우고... 평화롭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우리는 왜 그렇게 잘 싸우는지 모르겠다...
2. 선교왕 바오로사도
로마제국의 선교왕은 사도 바오로였다.
사도 바오로는 지칠 줄 모르게 복음을 전하였고 불꽃같은 인생을 살았다.
사도 바오로의 원래 이름은 사울이었다.
보통의 유대가문에서 태어난 사울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였다. 사울은 율법학자 가믈리엘 문하에 들어가 율법을 익히면서 율법전문가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 즈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사건이 있었고, 이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유대인들로부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한창 혈기 왕성할 때였던 사울은 십자가에서 처형된 예수라는 청년이 부활했다는 사실과 구세주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런 것은 유대의 율법을 거스르는 일이고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낭설을 퍼뜨리는 자들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고 박해의 대열에 동참하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다마스커스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자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붙들러 가는 길이 바오로의 운명을 바꾸어 놓게 된다.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예수님께서 바오로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너는 장차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사울은 그길로 다마스커스에서 세례를 받고 이름이 바오로로 바뀌어 주님의 사도로 거듭나게 되었던 것이다.
주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는 불굴의 의지로 거침없이 복음을 전하다가 마침내 순교하게 된다. 유대지방의 조그만 종교였던 가톨릭은 바오로의 노력으로 로마제국 전체로 퍼지게 되었으니, 바오로는 가톨릭교회에서 베드로와 함께 가장 큰 사도라고 할 수 있다.
바오로는 선교에 가장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1고린 9, 16)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2고린 4, 8-9)
바오로는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결코 굴하지 않는 놀라운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사실 바오로도 한평생 모진 고통을 겪었다.
한평생 바오로는 지병을 앓았고, 선교여행을 다니면서 항상 도적들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겪었고, 사람들의 모욕과 반대를 만났다. 그럴 때마다 바오로는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불굴의 신념으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똑바로 자기 길을 갔다.
어려운 일을 겪는 신자들에게 바오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위로해주고 용기를 주었다. :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로마 8, 35-39)
2002년 1월에 나는 서품 10주년을 기념해서 동기신부들과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를 했다.
나는 터키의 안티오키아에서 사도바오로를 생각했다.
안티오키아는 바오로의 주민등록지였고 바오로가 길어 먹었던 곳으로 알려진 '바오로의 우물'이 있는 곳이다. 안티오키아를 거점으로 바오로는 로마제국 전체로 향해갔던 것이다.
터키는 넓은 지역이고 곳곳이 척박한 지역이다.
특히 카파도키아지역은 기기묘묘한 형상의 괴석들과 광야가 끊임없이 펼쳐진 곳이다.
버스로 몇 시간을 달려야 겨우 마을이 보일정도로 끊임없이 펼쳐진 구릉지대가 많다.
그 넓은 지역을 바랑을 메고 샌달을 신고 걸어 다녔을 바오로를 생각했다.
아무도 반겨주는 이 없던 도시를 방문해서 생전 처음 듣는 예수님이야기를 해야 했던 것이 바오로의 운명이었다.
불같은 열정으로 바오로는 터키지역 곳곳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에페소에, 갈라디아에... 골고사이에, 키프로스에...
바오로의 다음 여정은 그리스지역이었다. 필립비에, 데살로니카에... 아테네에, 고린토에...
숱한 죽을 고비를 넘긴 바오로는 기어이 로마로 진출했다.
로마에서 2년여 동안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면서 마지막 불꽃을 태웠던 바오로... 결국 순교로 장렬하게 지상 삶을 마감하였다.
바오로 탄생 2000주년을 맞아 교황님께서는 2008년 6월 28일부터 2009년 6월 29일까지를 ‘바오로의 해’로 선포하시고 우리 모두 바오로의 쇠를 녹일 듯한 열정과 바위를 녹일 듯한 불굴의 의지를 본받아 선교에 힘을 다하자고 권고하셨다.
먼저 우리 스스로가 세상사에 흔들림 없이 굳건해야 하겠다. 그리하여 우리도 세상 마지막에 바오로가 남긴 말씀을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 :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2디모 4, 6-7)
마침내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종교자유가 선포되었고, 이어 380년, 가톨릭이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었다. 곳곳에 성당이 들어서고 가톨릭교회는 자리를 잡으면서 유럽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렇게 해서 전 유럽이 가톨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