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 아픔을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고통은 축복입니다.” 당장 겪는 사람에게 이 말을 하면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겪고 난 후에는 정말 “고통은 은총”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고통은 우리를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유익하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걸려 넘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다가오는 시련을 나에게 유익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신명기 8장 5절에 보면 “너희는 마치 사람이 자기 아들을 단련시키듯,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단련시키신다는 것을 마음 깊이 알아 두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통은 하느님께서 더 큰 은총을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고통이 은총인 것은 고통을 통해 더 큰 사람이 되고 세상의 더 좋은 것을 얻게 되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어기고 잘못된 길을 걸어가던 것을 돌이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겪기 전에는 제가 그르쳤으나 이제는 당신 말씀을 따릅니다. 당신은 선하시고 선을 행하시는 분, 당신의 법령을 제게 가르치소서. 교만한 자들이 제게 거짓을 꾸미나 저는 제 마음 다하여 당신 규정을 따릅니다. 저들의 마음은 비곗살처럼 무디나 저는 당신의 가르침을 기꺼워합니다. 제가 고통을 겪은 것은 좋은 일이니 당신의 법령을 배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당신 입에서 나온 가르침이 좋습니다. 수천의 금과 은보다 좋습니다.”(시편119,67-71)
“불의하게 고난을 겪으면서도 하느님을 생각하는 양심 때문에 그 괴로움을 참아내면 그것이 바로 은총입니다.”(1베드2,19) 혹시라도 고통을 겪게 된다면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있는가를 깊이 살펴보고 말씀을 지킬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아들이시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히브5,8) 고통을 통해서 말씀 안에 머무는 은총을 누리시길 희망합니다. 사랑합니다.
조반니 란프란코의 <시렙다의 과부로부터 빵을 받는 엘리야>,1621-24년경, 로스엔젤레스 폴게티미술관
결국 엘리야가 물을 마시던 개울도 말라버리고 선지자는 하느님의 명에 따라 바다 근처의 외국도시 시렙다로 간다. 엘리야는 한 여자를 만나 물과 빵 한 조각을 청한다. 자신과 아들이 먹을 마지막 음식을 준비하던 여자는 선지자가 청한 것을 준다. 선지자는 여자에게 비가 다시 올 때가지 그녀가 비축해둔 기름과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느님께서 이 땅에 비를 다시 내릴 때까지 뒤주에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고 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