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돼지보다 못한 짐승

2011. 5. 11. 오후 1: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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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돼지보다 못한 짐승

 

하루는 소크라테스(고대그리스 철학자, B.C.470-399)가 여러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어떤 심술궂은 사람이 고기를 뜯어 먹고 뼈는 모두 소크라테스 앞에다 슬그머니 밀어놓았습니다. 그러고는 “소크라테스는 혼자서 저렇게 많은 고기를 먹었으니 돼지”라고 빈정대며 놀렸습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조용히 일어나 말했습니다. “그래, 나는 돼지라서 고기를 많이 먹고 뼈를 이렇게 쌓아 놓았지만 뼈까지 모두 먹어치운 당신은 돼지보다 더한 짐승이 아닌가!”

 

시편 저자는 말합니다. “자기 이웃을 몰래 헐뜯는 자, 그런 자를 저는 없애고 거만한 눈과 오만한 마음, 그런 것을 저는 참지 않으오리다.”(시편101, 5) 그러니 남을 비방하거나 흉을 보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예레미아 예언자는 남을 모함이나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을 ‘철면피’(예레6,28-30)라고 말하고 있으며 바오로 사도는 ‘없는 말을 지어내고 서로 헐뜯고 하느님의 미움을 사는 사람’(로마1,29-31), 이런 사람을 조심하라고 권고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겉으로는 신심이 있는 체 하여도 신심의 힘은 부정(2티모3,5)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활동을 하다 보면 예기치 않은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더더욱 알만한 사람이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은 사람들이 욕을 하면 축복해 주고 박해를 하면 견디어 내고 중상을 하면 좋은 말로 응답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쓰레기처럼, 만민의 찌꺼기처럼 되어도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슬기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를 빈정대고 놀려대면 사실 그 자신의 인격이 드러날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욕설을 두려워 마십시오. 비방을 듣더라도 낙담하지 마십시오. 주님 앞에 바로 서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것이 행복입니다.

 

베드로의 첫째 편지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바른 양심을 가지고 온유하고 공손하게 대답하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분의 선한 처신을 비방하는 자들이, 여러분을 중상하는 그 일로 부끄러운 일을 당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보다 낫습니다.”(1베드3,16-17) 사랑합니다.

 

 

루벤스 (Pater Paul Rubens(1577~1640))의 <그리스도와 참회하는 여인>

 

작품 <불신의 토마스>에서 본 그리스도의 모습을 여기서 되찾게 된다. 그리스도 앞에서 죄를 뉘우치고 있는 여인은 막달라 마리아이다. 참회하는 여인까지도 루벤스는 주제나 내용에 관계없이 육체의 찬미와 관능미의 표출을 잊지 않고 있다. 도리어 관능적인 육체의 여인상이 죄를 참회하는 자연을 타당화 할 것 같다. 루벤스의 위대함은 육체를 자유자재로 정신과 심리적인 상태에 예속시켜 표출한다는 점이다. 탐욕의 육체, 성을 표상하는 육체, 절망의 육체, 모성적인 육체, 향락의 육체 등 다양하다. 여기서도, 여인은 타락된 육체를 가려, 뉘우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인물의 표정으로 좌우되고 있는 장면이 여러 종류의 인체 표출을 보게 하는 것이다. 감격, 놀라움, 존경 등의 표정이 이 그림을 지배하고 있으며, 이에 밝고 아름다운 색채가 장면을 명쾌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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