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으면

2011. 5. 10. 오전 6: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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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으면

 

 

미국 교포 사목 때의 일입니다. 한인타운에 있는 중국음식점에서 자장면을 먹게 되었습니다. 식당에 들어서니 여기저기에 앉아계신 분들의 얼굴이 낯익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과 인사를 나누지 않고 미리 예약된 방으로 바로 들어갔습니다. 그분들의 얼굴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분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사순시기에 한 끼 단식으로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고 우리보다 더 힘든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점심값을 봉헌해 달라고 하였는데 하필이면 멀리서 손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오신 손님을 대접하려니 어쩔 수 없이 밥을 사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으면 서로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을 텐데…

 

단식은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로마8,17) 하고 말씀하심으로써 희생에 동참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단식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욕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마태 6,1-6)께 향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듯이 단식할 때 주님 부활의 은총을 합당하게 받게 됩니다. 

 

음식을 절제한다는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건강이 좋지 못해 먹을 수 없는 경우가 있고, 미용을 위해서나 무슨 투쟁을 위해서 단식하는 때도 이것은 그리스도의 수난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법(교회법1251조. 연중 모든 금요일에는 대축일 중의 어느 날과 겹치지 아니하는 한 육식, 또는 주교회의의 규정에 따른 다른 음식을 자제하는 금육재가 지켜져야 한다. 재의 수요일과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수난하시고 죽으신 성 금요일에는 금육재와 금식재가 지켜져야 한다. 1252조. 14세를 만료한 자들은 금육 의 법률을 지켜야 하고 모든 성년은 60세의 시초까지(18세-60세) 금식재의 법률을 지켜야 한다.)으로 정해 놓았으니 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고 해서 마지못해 하는 단식과 금육은 아무 영적 의미도 지니지 못합니다.

 

단식은 구체적으로 음식을 절제하는 것이지만 거기에는 악행들을 벗어버리고 하느님을 갈망하는 영적 단식이 동반될 때 내적인 기쁨이 충만해 집니다. 육적으로 단식을 하더라도 영적으로 순결한 생활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단식은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사실 우리가 하는 단식의 핵심은 음식의 절제에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일 마음이 불의에서 되돌아서지 않고 혀가 악담을 끊어버리지 않는다면, 육체에 음식을 줄이더라도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을 자유를 극기해야 하며, 다른 욕정들도 이런 방법으로 억제해야 합니다.”(레오교황 사순강론) 

 

그리고 “단식에는 자선과 선행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절제한 것을 자신을 위해 사용한다면 율법주의적 단식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단식에 곁들여야 할 행위로는 자선보다 더 유익한 것이 없습니다.” 단식으로 생긴 재화는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베풀어 주어야 합니다. “자선 행위는 결국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사랑의 의무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다른 이들이 겪는 불행을 사랑의 마음으로 함께 아파하는 자세로 해야 합니다.”

 

자선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본받는 행위이며 가난한 이들에게 베푼 자선은 주님께 한 것입니다. 최후 심판의 기준은 구체적 이웃사랑과 자선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25,40) 참된 단식과 자선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모르고 또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주일미사나 금육재를 지키지 못했다면, 성숙한 신앙인이라면 다른 날에 미사를 참례하든지 금육재를 지키는 것이 타당하다(물론 의무는 아니다). 요행으로 몰라서 궐했으니 죄를 모면했다고 좋아하고 넘어가는 신자라면 미성숙한 신자이다.”(정하권, 성숙한 신앙) 사랑합니다.

 

작가미상의 <세 천사의 환대>, 1690-1710, 나무에 탬페라,111x70cm, 코넨 미술관, fpIkonen-Museum, Recklinghausen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천사들을 극진히 대접하고 있다. 이들 세 천사는 성삼위의 상징으로 되기도 한다. 개개의 인물이나 옷의 표현에는 고대적 감각이 농후하고 아마 동시대의 사분화를 모델로 한 것이리라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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