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더 나쁜 사람이 나타나

2011. 5. 10. 오전 6:5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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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더 나쁜 사람이 나타나

  덕망이 있는 정치가에게 신문기자가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본 정치가 중에서 누가 최악입니까?” 그랬더니 그 정치가가 말했습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 최악의 정치가를 찾지 못했습니다.” 기자가 놀라서 “그게 정말입니까?” 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저 사람이 최악이다 싶은 순간, 꼭 더 나쁜 사람이 나타나더군요.”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서 애달프고 미운사람은 봐서 문제랍니다. 우리의 삶은 미운 사람, 고운사람 함께 더불어 살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미운 것만을 가지고 힘겨워합니다. 그러나 미운 것을 통해서 고운 것의 가치를 더 갈망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피하고 싶은 미움의 대상이 은총의 도구입니다. 더 큰 미움을 키우지 않도록 내 속마음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영혼의 거울입니다. 아직 최악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가 미워해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헛된 우상이나 악습, 사람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악의 세력입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저는 허황된 우상 섬기는 자들을 미워하고 오로지 주님만 신뢰합니다.”(시편31,6) 시편 97장 10절에는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아, 악을 미워하여라. 그분께서 당신께 충실한 이들의 목숨을 지키시고 악인들의 손에서 그들을 구출해 주신다.”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미워해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 역겨워하시는 우상이요, 악입니다.

 

요한 사도는 말합니다. “빛 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자입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르고,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1요한1,9-10)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모두 살인자입니다.”(1요한3,15)

 설령 최악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입어 구원을 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그에게는 더 큰 사랑이 필요합니다. 나쁜 사람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희생을 바치는 가운데 자신의 거룩함도 회복하기를 희망합니다.

 “전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나쁜 사람도 없고, 완벽한 사람도 없다.”(레지오교본 441쪽) 사랑합니다.

 

로렌초 로토의 <어머니를 떠나는 그리스도>, 1521년경, 베를린, 회화관

베드로는 이미 열쇠를 쥐고 있다. 화가는 마태오 복음서에 따라 예수가 거룩한 변모 이전에 베드로에게 열쇠를 준 것을 시각화했다. 닫힌 정원은 가장 잘 알려진 마리아의 상징이다. 완벽하게 정돈된 마리아의 방은 수태고지를 완성시킨다. 예수는 어머니 옆에 경건히 무릎을 꿇고 있다. 슬픔으로 실신한 마리아를 요한과 막달라 마리아가 부축한다. 이 장면은 십자가 처형에서 마리아가 실신하는 대중적인 도상을 미리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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