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왜 내가 이런 아픔을

2011. 5. 8. 오전 6:03:42

글자
 
 
투병 중이신 이신부님을 방문하신 반신부님..
반신부님의 차분하고 조용한, 깊고 깊은 성령이 충만한 기도가 이어졌습니다.
"...나약한 인간을 온존히 주님께 의탁하나이다..
주님 성령의 힘으로 나쁜 세포를 몰아내소서..
끝내 요한신부님께서는.....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주루룩...주루룩 하고 말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상황을 보았지만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은 신부님
신부님의 눈물 처음 보았습니다. 성령을 받으신 기쁨의 눈물이시겠죠.. -이태석신부님 홈피에서 펌-
 
107.왜 내가 이런 아픔을

 투병 중이신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신부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맞이해 주셨습니다. 심각한 병중에 있기 때문에 무슨 위로의 말을 해 드려야 할지 고민하였는데 다른 위로의 말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일상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한참을 웃고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신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하느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으로 믿습니다. 전보다 더 열심히 성체조배도 하고 기도하며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항암치료를 두 번 받았는데 다행히 입맛이 당기고 소화도 잘 된다 하시며 맛있게 음식을 드셨습니다. 

“고통은 은총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수난을 체험하는 순간이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대신하는 복된 시간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왜 내가 이런 아픔을 겪어야 하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아프리카의 수단에서 의료 선교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너무나 열악한 환경이기에 오히려 하느님이 뿌려놓으신 씨앗의 흔적을 느끼게 된다”며 “교육을 통해 그들이 용서와 예의를 배우는 모습을 보는 게 나의 보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아침에 눈 떠서 잘 때까지 무조건 퍼줘야 합니다. 진이 빠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바로 이 사람들이 예수님이 말씀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란 생각에 또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온몸을 바쳐 하느님의 일을 하셨는데 병마와 싸워야 하니 도대체 하느님의 계획은 알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방법은 가까이 가면 갈수록 신비롭기만 합니다. 그래서 더 기도하게 됩니다. 은총의 시간에 한순간도 믿음을 잃지 않기를 기도하며 신부님의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이 아닌 양 일상을 살 수 있는 것은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하늘을 향해 있으면 어떤 역경도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그 인내가 완전한 효력을 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야고1,2-4) 우리 모두가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두 마음을 품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20대의 젊은 예수님에게 십 대 후반인 요한이 몸을 기대고 있다. 이 장면은 조각된 두 인물 사이에 간격이 없이 밀착되어 있어 전적인 믿음을 가지고 의지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요한의 오른 손바닥은 예수님의 오른손 바닥에 포개어 놓고 있고 예수님의 왼손은 요한의 어깨를 부드럽게 사랑으로 어루만지고 있다. 이것은 영적인 사랑의 교감(交感)에서 나오는 행위이며 신뢰인 것이다. 예수님과 요한 두 사람의 복장도 친밀감과 우정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어 부드럽고 평화스런 느낌을 준다.

작가미상의 <주님과의 일치>,1320. 호도나무, 141 x 73 x 48 cm. Museum Mayer van den Bergh, Antwe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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