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강 가톨릭교회란 무엇인가?/전광진 신부

2011. 5. 18. 오전 6:20:18

글자
 전광진 신부의 교회 이야기
 
제1강 가톨릭교회란 무엇인가?

 신앙인들은 신앙에서 큰 힘을 얻는다.

 우리는 먼저 우리를 신앙의 길로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겠다.

 신앙의 길은 생명의 길이다. '죽음이 전부가 아니다.' 죽은 다음에 영원히 사는 길... 주님을 믿고 그 가르침을 따라 살면 이 세상에서 행복하고 죽어서 영원히 사는 이 귀한 신앙,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신앙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귀한 신앙의 길을 모르고 세상 덧없는 일에 마음이 빼앗겨서 정신없이 바쁘게 산다. 그러다가 문득 길이 막히면 어쩔 줄 몰라 한다. 괴로워하고 불안해하고...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러다가 결국 소중하고 귀한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면서 어려움과 고통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누구도... 아무리 많이 배웠거나 아무리 많이 가진 사람도... 어려움과 고통을 겪을 때 신앙은 든든한 울타리와 의지가 될 것이다. 신앙 안에 사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그저 고맙고 감사할일이다.

카톨릭신앙은 마음을 건강하게 해줄 것이다. 정신을 튼튼하게 해줄 것이다.

 

우리는 가톨릭교회에 몸담고 있는 신앙인들이다.

 

 

성당에 20년씩 다녀도 가톨릭교회가 무엇인지 얼른 입이 잘 안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가톨릭교회가 무엇인지 그 핵심을 알고 있어야겠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다. 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부른다.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나? 구체적으로 이런 일을 하셨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죄인들은 용서해주고, 병자들은 고쳐주고, 죽은 사람은 살려주고... 없는 사람들은 있는 사람들에게서 얻어다가 나누어주고..."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가 되자 이런 일이 계속되기를 원하셨다. 그렇게 해서 창립하신 것이 바로 가톨릭교회였다. 교회를 창립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수제자였던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베드로야, 너는 반석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태 16,18-19)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주면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요한 20,23)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사도들은 각 지역으로 흩어져서 복음선포에 주력했다. 복음... 말 그대로 기쁜 소식이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그 가르침대로 살면, 현세에서 복되고, 죽어서는 천국간다'는 소식이다.

 

 

사도들은 처음에는 모욕도 당하고 박해도 받았지만 조금씩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모습이다. 에페소라는 도시에, 필립비에, 고린토에... 한 도시에 교회가 생겨나면 사도들은 그 교회를 운영할 책임자를 뽑았다. 이 사람들이 오늘날로 말하면 주교들이다. 주교는 일을 도와줄 협력자들을 뽑았다. 이 사람들이 신부와 부제들이다. 이렇게 해서 초대교회부터 주교-신부-부제라는 세 단계의 성직자들이 교회를 운영하게 되었다.

 

 

여기에 가톨릭교회의 핵심 세 가지가 들어 있다.

 

 

첫째, 가톨릭교회는 예수께서 '직접' 세우신 교회다.

 

 

둘째,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운영할 권한(교도권)을 사도들에게 주셨다.

 

 

셋째, 이 교도권이 사도들의 후계자들을 통해 계속 ‘계승’되도록 하셨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사도 베드로를 1대 교황님으로 해서 지금 베네딕도16세 제265대 교황님까지 이어져 내려온 교회다.

 

 

사도로부터 이어지는 이 '사도성'이 가톨릭교회가 참교회라는 가장 확실한 근거다.  

 

 

가톨릭교회는 개신교교회와 비슷한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 다르다.

 

 

개신교의 교회관은 이렇다.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시기는 세우셨지만, 예수께서 세우신 교회는 사도들이 죽음으로써 없어졌다. 계승되는 것이 아니다. 참된 교회는 각자의 양심 안에 있는 것이고, 누구나 양심에 따라 교회를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사도로부터 이어지는 사도성이 아니라 개인이 세울 수 있는 '임의성'이 개신교의 한계다.

 

 

개신교교회는 누구나 교회를 세울 수 있다. 좋은 목사님을 모셔올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하면 내보낼 수도 있다. 말하자면 개신교교회는 '사람이 세우는 교회'다.

 

 

가톨릭교회는 누구나 세울 수 있는 교회가 아니다.

 

 

가톨릭교회는 예수께서 직접 세우신 교회다. 그리고 이 교회의 운영을 사도들에게 맡기신 것이고, 사도들의 후계자들인 주교들을 통해 계속 계승되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처음부터 사도들을 주님의 대리자로 존경해왔고,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을 주님의 대리자로 순명해왔다. 또 주교로부터 사목의 책임자로 파견된 본당신부의 뜻을 가능하면 따르는 것이 전통이었다.

 

 

유럽에서 개신교가 시작된 것이 1521년이었다.

 

 

당시 아오스딩 수도회 수사신부였던 마르틴 루터신부가 가톨릭교회를 비판하고 나섰을 때, 신학자였던 요한 에크신부와 신학공개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1519년 독일 Leipzig에서였다. 루터신부는 가톨릭이 잘못되었다고 조목조목 비판을 했고, 에크신부는 루터신부를 설득하려고 했다. 오랫동안 토론이 계속되었지만 루터신부는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에크신부는 루터신부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물었다. "루터신부, 당신은 교황과 주교를 인정하는가?"

 

 

루터신부는 잠시 주춤거렸지만 단호하게 대답하였다. "나는 교황과 주교를 거부한다."

 

 

교황과 주교를 거부하는 것은 주님께서 맡겨주신 교도권을 거부하는 것이고, 가톨릭교회를 거부하는 것이다. 가톨릭교회를 거부하는 것은 가톨릭교회를 세우신 주님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마르틴 루터신부는 가톨릭교회를 거부하고 새로운 교회인 '루터교'를 세운 것이다. 이것이 개신교의 출발점이 되었고, 당시 유럽에 가톨릭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준 것이 되었다. 그래서 너도나도 저마다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즉시 칼빈이 장로교를 세웠고, 영국의 헨리8세 왕이 성공회를 세웠다. 그 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참된 교회라고 하면서 많은 교회를 세웠다. 침례교, 감리교...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처음부터 순명을 소중하게 생각해왔다.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를 거역해서는 가톨릭이 아닌 것이고, 주교가 파견한 사제를 거역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신부들은 주교님께 순명한다. 그리고 본당 일에 대해 서 신자들은 본당신부에게 순명하는 것이다.

 

 

사실 신부도 개인적으로는 주교님께 불만이 있을 수 있고, 주교님의 일처리에 대해서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그래도 주교님이 고민하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마지막으로 결정해서 명하는 것은 거역할 수 없다.

 

 

그리고 본당의 모든 일에 대한 책임과 권한은 주교님이 파견하신 본당신부에게 있는 것이고, 신자들은 본당신부의 결정에 순명하는 것이다. 때로는 신자들 보시기에 본당신부님이 인간적으로 좀 부족하고 마음에 안들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본당신부는 주교님으로부터 본당사목의 책임자로 파견된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신부님의 결정이 마음에 안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신부님이 고민하고, 신자들의 의견을 듣고, 마지막으로 결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자들이 순명해야하는 것이다. 본당신부님을 중심으로 서로 똘똘 뭉쳐야하는 것이 우리 가톨릭교회의 전통인 것이다. 예수께서 이 교회를 직접 세우셨고, 사도들에게 맡기시고, 그 후계자들인 주교님들을 통해서 계속 계승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오늘날 평신도들이 회의를 통해 본당사목을 결정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마치 개신교의 장로들처럼, 가톨릭교회도 간부들이 결정하는 것을 본당신부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본당에서의 모든 회의는 의결기구가 아니라 심의기구 또는 자문기구다. 최종결정권자는 언제나 본당신부다. 예수께서 처음부터 이러한 교회의 구조를 원하셨고, 그것은 교회의 분란을 막기 위한 뜻이 담겨있는 것이다.

 

 

하지만 본당신부님들도 주요한 사목적 결정을 하실 때 혼자 하지 말고, 사목회의를 통해, 또는 가능한 여러 경로를 통해 본당교우들의 의견을 두루 듣고, 그 뜻을 존중해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본당교우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독단적으로 결정하면... 권위주의니, 독선적이라느니 하는 욕을 먹을 수 있다. 요즈음 세상이 얼마나 발전했고, 평신도들의 눈높이가 얼마나 높아졌나... 본당신부님들의 넓은 마음이 꼭 필요한 시대라고 하겠다.

 

 

교회와 성전건립.

 

 

하나의 본당이 있을려면 다음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외적인 것이다.  우선은 신자들과 신부가 있어야 한다. 수녀님을 모셔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리고 성전건립이 중요하다.

 

솔직히 신부들은 신설본당에 발령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된 본당에 가서 뜨신 물도 잘나오는 본당신부하고 싶지, 새로 본당을 짓는다는 게 어디 보통일인가. 그래도 누군가는 신설본당을 맡아서 기초를 다져야한다.

 

 

신자들은 신설본당을 지으면서 형편대로 벽돌 한 장씩, 기와 한 장씩 성전건립기금을 모은다. 이런 신자들의 정성이 모아져서 성당이 지어진다. 근데 요즘 너나할 것 없이 다들 얼마나 어렵나. 성전건립기금을 내기가 쉽지 않다. 또 얼마를 내겠다고 약조를 해도 조금씩은 부담을 느낀다. 그래서 다들 물건을 내다판다 우얀다 애를 쓴다. 본당에 있으면 전국에서 전화가 많이 온다. 성전건립기금마련 물건 팔려는 전화다. 다 받기도 그렇고 거절하기도 그런 것이 본당신부님들의 고충이다.

 

 

둘째는 내적인 것이다.

 

첫째는 기도일 것이다. 참으로 기도만큼 우리를 강하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기도는 우리를 강하게 하고, 서로 일치하게 한다. 한마음으로 일치하지 못하면 아무리 사람이 많은들 무슨 힘이 있겠나. 억만금의 돈을 쌓아놓고 서로 싸우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진실로 본당 교우들이 서로 일치하고 똘똘 뭉쳐야 참된 본당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가정공동체(가정교회)도 같은 이치다. 대궐 같은 아파트에 살면 뭐하노... 거기 사는 부부가 원수같이 살면 행복은 물 건너 가는 것이다. 반드시 내적인 일치가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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