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강 정교혼합과 가톨릭교회의 변질

2011. 5. 18. 오전 6:30:29

글자
 
 



예수께서 설립한 가톨릭교회는 사도들과 초대신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300년 동안의 모진 박해 속에서도 빠르게 로마제국으로 전파되었다.

 313년, 마침내 교회는 콘스탄티누스황제에 의해 자유를 얻었고 나아가 국교가 되었다.

 자유는 좋은 것이었지만 가톨릭교회를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e)으로 변화시켰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는 정치와 결합되면서 점점 복음의 순수성이 퇴색되어갔다.

 그 변질을 '외적인 변질과 내적인 변질'로 살펴본다.

 1. 교회외적인 변질 : 정치와 종교의 혼합

 로마황제들은 가톨릭교회를 극진히 대접하였다. 두 명의 황제가 대표적이다.

 콘스탄티누스황제(305-337)는 자기가 살던 라떼란궁전을 교황에게 선물하였다. 그리고 황제는 로마를 떠나 자기 이름을 딴 도시 콘스탄티노플로 이주하여 죽기까지 거기서 살았다. 콘스탄티노플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요충지로서 당시 경제와 무역이 번창했던 로마보다도 더 역동적인 도시였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제국의 수도가 되었고, 1453년에 오스만터키에 함락되었다. 이슬람세력인 터키사람들은 도시 이름을 이스탄불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황제로부터 궁전을 선물 받은 교황은 궁전을 성당으로 리모델링하였는데 그것이 라떼란성당이다. 라떼란성당은 1308년까지 교황좌성당이 되었다. 1309년 교황은 성베드로성당으로 교황좌성당을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베드로성당은 313년 종교자유 이후에 베드로사도가 순교한 지역에 건립된 성당인데, 이후로 점점 더 증축되어 1309년에 교황좌성당이 되었다.

 황제 테오도시우스(379-395)는 가톨릭을 로마제국의 국교로 정했다. 그리고 주교들에게 지방행정권을 부여해서 지방을 다스리게 했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주교들은 지방의 통치자가 되었고 권력자가 되었다.

 바로 이것이 정치와 교회가 혼합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렇게 되어 가톨릭교회는 정치와 합쳐지면서 외형적으로는 크게 발전하게 되었지만, 순수한 복음정신은 쇠퇴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가톨릭교회는 로마제국의 화려하고 웅장한 제도와 조직을 받아들여 교회의 제도와 조직을 갖추어 나갔다. 이렇게 해서 교회가 마치 국가처럼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로마제국 궁정의 화려한 문장, 금실로 수를 놓은 눈부신 복장, 각종 거창한 의식들이 자연스럽게 교회의 제도나 전례 안에 수용되었다.

 성직자들은 점점 말발센 나으리로 받들여지고, 평신도는 기도하기와, 순종하기, 헌금하기에 열심해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각종 칭호나 격식이 제국식으로 변화되었다. 교황님은 성부성하, 추기경님은 전하, 주교님은 각하, 신부님은 지극히 공경하올 신부님, 수녀님은 경애하올 수녀님 등등... 교회의 대다수를 이루는 평신도만이 칭호가 없다.

 나아가 가톨릭신자들만이 참된 인간이고, 신자아닌 사람은 야만인, 미개인,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하여 점차 승리주의와 자만함에 물들게 되었다.

 성 예로니모(340-320)는 이를 표현하여 '그리스도교 황제가 통치하자 교회는 권세와 부가 커졌으나 덕이 작아졌다'고 했다.

 바오로는 예수님께서 보여준 본을 충실히 따랐던 사도중의 하나였다. 바오로는 사도로서 교우들로부터 생활비와 기타 미사예물 등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것을 포기하고 스스로 노동하여 그 비용을 충당했다. (사도 18,3에 따르면 천막 짜는 일)바오로는 물질적인 도움을 사양하곤 했다. (1데살 2, 9) 그것은 교우들의 경제적 부담이 복음선포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무엇보다 사도가 돈을 밝히고 사리사욕을 채운다는 혐의가 복음선포에 지장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1고린 9, 12) 바오로는 자기가 자랑할 것이라고는 십자가의 어리석음밖에 없다고 했다. (갈라 6, 14) 평생을 복음을 전하고 구원을 위한 봉사로 살았던 바오로... 편안함을 멀리하고 억척같이 일을 했던 바오로였다.

 하지만 바오로 이후 성직자들은 점점 봉사자가 아니라 봉사 받는 사람들이 되어갔다. 많은 경우 성직자들은 억척같이 일하기보다는 편안함을 더 찾게 되었다.

 중세시기에 정치와 교회의 혼합은 완성되었다.

 476년,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중세천년 게르만시대가 시작되었다.

 476년 게르만민족이 서로마제국을 멸망시키면서 중세 천년 게르만시대가 시작되었다.

 게르만의 여러 종족들, 동고트, 서고트, 부르군드, 반달, 앵글로 색슨족들은 약화된 로마제국을 석권하고 저마다 왕국을 세웠다.

 그 가운데 프랑크족이 지금의 프랑스와 서독일지역에 세운 프랑크왕국은 강력한 신흥국가로 성장하게 되었는데, 카알 황제는 다른 왕국들을 통합하여 마침내 서유럽전체를 통일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카알을 대제라고 불렀다.

 카알 대제(Karl, 768-814)는 프랑크왕국의 국시를 '가톨릭교회의 보호'로 정하고 주교를 지방의 왕으로 임명하였다. 이렇게 되면서 정교혼합이 본격화되었다. 주교들은 평일에는 군주로서 정무를 보고, 주말에는 주교로 교회 일을 보게 되었다.

 오토대제(Otto, 936-973)는 스스로 주교와 수도원장을 지명하였다. (서임권) 황제가 후보자를 지명하면 서품은 통과예식에 불과했고, 주교는 황제 앞에서 복종선서를 해야 했다. 주교는 왕인 동시에 주교직무를 행사하였다. 이렇게 되어 정교혼합이 완성되었다.

 복음을 전하는 가톨릭교회는 국가처럼 바뀌었고, 봉사자인 성직자들은 사람들을 다스리는 권력자들이 되어 교회의 모습 전체가 변질되었다.

 나아가 중세 절대군주사회의 강력한 신분질서가 교회의 제도와 조직 안에 흡수되었다. 이와 함께 교회 내에 강력한 위계질서가 형성되어 하느님-교황-주교-신부-부제-수도자-평신도(남자-여자-어린이) 순서로 교회의 신분질서가 고착되었다. 이런 사회가 1000년 동안 지속되면서 오늘날까지 교회 내에 '서열주의와 권위주의'가 이어지게 되었다.

 정치와 종교의 혼합은 교회 외적인 변질을 초래하였다.

 첫째, 교회가 교황님이 다스리는 제국과 같이 되었다.

 교황은 황제, 주교는 영주, 사제는 기사, 신자는 평민이라는 식이다.

 둘째, 성직자들은 신자들을 다스리는 권력자가 되었다.

 성직자들이 신자들을 위한 봉사자가 아니라 지배자가 되었고 성직자들의 피 속에 권위주의가 흐르게 되어 대대로 전해지게 되었다.

 교회는 하나의 제국과 같았고, 신자들은 '충성과 순명' 속에 살아야 했다. 위법자는 가혹한 처벌로 다스렸다. 교회는 죄인은 발붙일 수 없는 거룩한 성도들의 모임이며, 가톨릭교회 밖에서는 아무도 구원될 수 없는 우월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교회는 용서와 사랑보다는 제도와 법이 그 바탕이었고, 교회는 하나의 국가조직, 그것도 스스로 승리와 자만에 취한 거대한 제국이었다. 이것을 현대 학자들은 '화석처럼 굳어진 경직화'로 표현하고 있다.

 2. 교회내적인 변질 : 형식주의

 이와 함께 내적으로도 교회가 변질되었다.

 예수님은 율법보다는 사랑을, 형식보다는 진솔함을 가르쳤는데, 놀랍게도 교회는 사랑보다는 율법을, 진솔함보다는 형식을 중시하는 쪽으로 변질되었다.

 처음에 초대교회신자들은 주님 말씀을 가슴에 간직하고 기쁜 마음으로 성찬을 나누며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면서 살았다. '말씀과 성찬'이 초대교회 신자들 신앙의 원천이었다.

 그런데 종교자유가 주어지고 교회가 법과 제도를 갖추게 되면서 교회가 변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차 말씀은 사라지고 성찬만 남게 되었다. 그리하여 점점 말씀을 선포하는 강론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성찬만이 더욱 강조되었다. 그러다보니 말씀을 듣고 힘을 얻어 기쁘게 살기보다는, 미사만 빠짐없이 참석하고 고해성사만 열심히 보면 되는 신앙생활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결과 신앙생활이 기쁨과 신바람이 아니라, 교회의 법적인 의무만 행하는 형식적인 신앙이 되기 쉬웠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성직자들은 알게 모르게 강론을 소홀하게 되었고, 미사도 건성으로 형식적으로 드리기 쉬웠다.

 훗날 마르틴 루터는 형식화된 성찬을 버리고 말씀만으로 예배를 꾸몄다. 개신교 예배가 말씀(설교) 중심이다. 개신교는 성서를 중심으로 설교에 온 힘을 다해왔다. 목사님들은 설교에 승부를 건다. 온갖 신선한 재료를 준비하고 갖은 양념을 쳐서 얼마나 맛있고 고소한 설교들로 신도들을 배불리시는지... 일요일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개신교신도들의 얼굴을 보면 반짝반짝 빛이 난다. 얼마나 행복한 얼굴인지...

 거기에 비해 주일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가톨릭신자들은 거의 돌부처수준이다. 이론적인 강론, 케케묵은 강론, 왔다리갔다리 강론, 재고품, 유통기간 지난 강론이 문제다. 먹고살기 힘들고 지친 신자들이 주일미사에 와서 축복을 받고 신바람이 나기보다는 그저 주일의무를 채웠다는 것이 전부다. 안머라케이면 다행이고...

 말씀은 사라지고 성찬만 남은 교회에 두 가지가 추가되었다. 첫째, 법, 둘째, 순명이었다.

 이런 교회를 학자들은 '제도교회'라고 부른다.

 제도교회의 특징이 '성사와 법, 그리고 순명'이었다.

 매일 미사에 참여하고, 법과 규칙을 철저하게 지켜야 했고, 엄격히 순명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이 되었다. 그 결과는 율법주의와 형식주의였다.

그리하여 신앙생활이 기쁘고 행복하고 신바람이 넘치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의무를 채우는 것으로 경직되어 버렸다. 이와 함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뒤로 밀려나고 신앙생활이 성사의무를 채우는 것과 개인적 신심생활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런 영향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주일을 지키는 것'과 '내 혼자 열심 해서 천당에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또 신부들은 '미사 드리고 고해성사 주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신앙관은 구원을 '제사중심'으로 만들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음으로써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 졌다. 그러니 십자가의 희생제사인 미사를 충실히 드려야 한다.' 이런 구원관을 '십자가중심의 구원론'이라고 한다.

 그 결과 인간은 십자가를 기념하는 희생제사인 미사를 열심히 드림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제사만 열심히 드리면 구원받는다... 이런 구원관은 여러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켰는데, 그 첫 번째가 '형식주의'였다.

 그리하여 제사인 미사를 드리는 것과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강조되었다.

 하루라도 미사를 빠지면 안되었다. 기도... 아침기도, 저녁기도, 삼종기도, 묵주기도 등등 열심히 바치는 것이 강조되었다.

 그러다보니 매일 미사를 드리고 기도 열심히 하면 자동적으로 삶이 거룩하게 되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또 내가 경건하니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이라면 좋을낀데, 저라면 좋을낀데... 간섭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쉬웠다. 마치 옛날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제사와 기도에는 열심하지만 남들도 자기들처럼 경건해야 한다는 교만함이 알게 모르게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미사와 기도에는 열심하지만 영적인 자만심에 물든 사람들이다.

 또 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조금씩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은 조금씩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마치 옛날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남을 쉽게 미워하고 판단하고 사람들을 험담하기 쉽게 되었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미사와 기도에는 열심하면서도 남을 미워하고 욕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교회가 제도교회로 바뀌면서 내적으로도 변질되었다.

 첫째, 사랑보다는 법 중심으로,

 둘째, 진솔함보다는 형식주의로...

 오늘날 신학자들은 구원의 초점이 '십자가 중심의 구원'보다 '하느님나라 중심의 구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예수님의 구원활동은 십자가중심이 아니었다. 제자들을 보고, '너거들, 걱정마라. 내가 이담에 십자가에서 죽으면서 너거 죄를 다 짊어지면 구원된다'는 식이 아니었다.

 예수님 선포의 핵심은 '하느님나라'였다. : "하느님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하느님나라의 복음을 실천해야 한다. "즉 미사와 기도에도 열심해야 하겠지만... 우리의 실생활에서 하느님나라의 복음을 잘 실천함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가르침이었다.

 이 하느님나라의 복음이 '사랑과 용서'였다. 가장 단순하게 말하면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3.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첫째는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와 감사이고 그것이 오래전부터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로 표현되었다. 대표적인 경신례가 제사였다. 오늘날로 치면 ‘미사와 기도, 그리고 제물에 해당하는 헌금’이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드렸다. 번제물로는 어린양이 최고였다. 제사는 제단에 어린양을 잡아놓고 불에 태워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었다.

 또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소출이나 수입 중에 십분의 일을 바쳤다. 이것을 십일조라고 한다. : "땅의 십분의 일은, 땅의 곡식이든 나무의 열매든 모두 주님의 것이다." (레위 27, 30)

 하지만 예언자들은 권력자들이 제사만 근사하게 드리고, 힘없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을 보고 꾸짖고 있다. :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아라. 분향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주어라." (이사 1, 11-17)

 예언자들은 하느님께 드리는 올바른 제사는 이웃을 사랑하는 실천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 "사람아,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 (미가 6, 8)

 예수님 시대에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형식주의에 빠져 있었다.

 율법학자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는 철저하게 드렸다.

 기도도 여측 없었다. 법과 규칙을 지키는 데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이렇게 하느님께는 잘했지만... 사람들에게는 못했다. 특히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무시하고 목에 힘을 주고 살았다.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잘하지 못하면서 하느님께는 잘 하는 척 하면서 살았던 그들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위선자'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모습이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드러나야 한다고 하셨다.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진짜로는 하느님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희생제물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보다 먼저 이웃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라고 가르쳤다. :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훨씬 더 낫습니다.' (마르 12, 33)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마태 5, 23)'는 말씀도 '일상의 삶에서 사람들과 화해하고 봉사하는 것이 예배와 제례준수를 우선한다'는 뜻이다. 인간에 대한 봉사가 하느님께 대한 예배를 대신하지는 않지만, 하느님께 대한 예배는 인간에 대한 봉사 안에서 그 진정한 의미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미사 열심히 드리고 남 미워하면 무슨 소용 있겠나?

 미사와 기도는 열심 하면서 남을 판단하고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남은 가슴 아프게 해놓고 하느님 앞에서 예배만 번듯하게 드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미사를 드리고, 기도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기 위해서다.

 이웃사랑의 근본의미는 다음 두 가지다.

 첫째,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이웃사랑은 멀리 떨어진 사람에 대한 막연한 사랑이 아니다. 저 북한동포나 아프리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첫 번째로 내 가족, 그리고 나와함께 사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말한다. 그래서 밖에서는 잘하고 가족들에게 잘 못하는 사람은 참된 이웃사랑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둘째, '구체적인 사랑'을 말한다. 이웃사랑은 추상적인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결코 마음만으로도, 말만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반드시 실제로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사랑이어야 한다. 그 것도 내 방식으로 베푸는 사랑이 아니라, 이웃이 원하는 방식으로 해주는 사랑이다. 내방식대로 하는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이다.

 예수님의 모든 행위는 추상적인 이념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죄를 용서하고 병을 고쳐주었다. 슬픔에 동참하여 눈물을 흘렸고 완고한 마음 앞에 탄식하였다. 예수님은 현실주의자셨다.

 현실에로의 부르심... 신앙을 마음 안에, 몸 안에 가두지 마라. 반드시 현실에서 드러내라... 신앙을 '고상한 이념 속'에 가두어두지 마라... 마음 속으로만의 확신으로 그치지 마라. 반드시 현실에서 드러내라... 그것도 억척같이 드러내라...

 뛰어난 성인들은 이상주의자들이 아니었다. 사도바오로... 이냐시오... 마더 데레사... 이분들은 고상한 명상 속에 사신 분들이 아니었다. 현실 안에서 죽는 날까지 억척같았던 분들이었다... 깊은 영성이란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내 신앙을 내 생활 구석구석에서 드러내야하겠다. 내 신앙을 마음속에만 감추어 두어서는 안되겠다.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은 나를 진정으로 내어주는 것이다.

 내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삶, 내 생각이나 성격, 내 방식, 내가 원하는 것 모두를 기꺼이 내어 놓을 줄 아는 삶, 한마디로 '타인에 대한 개방성'이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의 핵심적인 의미인 것이다.

 우리는 나의 기준으로 이웃을 보기보다 이웃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줄 알아야 하겠다. 누구나 각자가 하는 일은 서로 중요한 것이고 각자의 생각은 존중되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자기의 몫이 있다. 집안에는 남편의 일이 있고, 아내의 일이 있다. 아버지의 일이 있고, 어머니의 일이 있다. 며느리의 일이 있고, 시어머니의 일이 있다. 이런 일들은 서로 꼭 같이 중요한 것이고, 어느 한쪽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 일만 중요하고 저 사람의 일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농사를 짓고, 어떤 사람은 학생들을 가르친다. 어떤 사람은 육신의 병을 고치고, 어떤 사람은 영혼의 병을 고친다. 이 모든 일들이 서로 꼭 같이 소중한 것이고, 모든 일들은 서로서로 도와주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모든 꽃이 장미꽃일 수는 없는 것이다. 장미꽃도 있고, 국화도 있고, 나팔꽃도 있고, 봉선화도 있다. 이 모든 꽃들이 어울려서 아름다운 자연을 만드는 것이다.

 또 모든 사람은 하느님 앞에 서로 평등한 것이고, 꼭 같이 존중받아야 한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소중한 생명들이고, 우리 모두는 이 지상생활이 끝난 다음에 모두 다 같이 하느님나라로 가야하는 것이다. 베드로씨나 바오로씨, 마리아씨나 데레사씨... 이 모든 분들이 하느님 앞에서 귀한 사람들이다.

 내가 잘 낫다고 저 사람 무시해서도 안되고, 내가 좀 안다고 자랑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내 생각이 옳다고 저 사람 생각 무시해서도 안되겠고, 저 쪽은 틀렸고, 내가 맞다고 원수처럼 지내도 안되겠다. 나이 많다고 업신여기고, 병들었다고 무시해서도 안되겠다. 요즈음 나이 많은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자꾸 밀려나니까 하는 말이, '나이 많아 미안해요...'란다. 키 작다고, 뚱뚱하다고, 얼굴 검다고, 머리숱 적다고 사람 무시해서도 안되겠다.

 정말 세상에 자기만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 교만함이 알게 모르게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것이다. 내 고집과 독선이 남과 나를 갈라놓고 공동체를 병들게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꾸 종양이 생기고 암도 생긴다. 무좀도 생기고 치질도 생긴다...

 서로의 입장을 존중할 줄 아는 마음, 예수님 마음이다. 서로의 일을 존중할 줄 아는 마음, 예수님 마음이다. 서로의 생각을 존중할 줄 아는 마음, 예수님 마음이다.

 서로를 귀하게 여길 줄 알고 중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하겠다. 우리 모두는 잘 낫거나 못 낫거나, 좋거나 싫거나 함께 하느님나라에 가야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 것만 맞고, 남의 것은 틀리다는 생각을 버려야겠다. 내 것이 소중하면 남의 것도 소중한 법이다. 나와 다른 생각,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겠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