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강 교황(Papa)

2011. 5. 18. 오전 6:46:29

글자
 
 
제14강 교황(Papa)     

 

1. 교황님의 삶

 

교황은 '베드로의 후계자로 전체 가톨릭교회의 책임'을 맡고 있다.

 

오늘날 '교황(敎皇)'이라는 명칭에 대해 바뀌면 안좋겠나 하는 의견들이 있다. 교황, 교회의 황제라는 뜻인데... 민주시대인 오늘날에 맞게 바꾸자는 의견이다. 근데 마땅한 명칭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의 으뜸이라고 '교종(敎宗)'이라고 했는데 보편화되지는 않았다.

 

교황이 가지는 으뜸의 권한을 수위권(首位權, primatus)이라고 한다.

 

 

1) 성경에서의 수위권

 

가톨릭교회를 이끌었던 사람들이 사도들이었다.

 

12 사도단을 눈여겨보면 늘 세 사람이 돋보인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그들이다.(마르 5,37 이하; 9,2 이하; 14,33 이하) : 예수님께서 타볼산에서의 거룩한 변모 때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따로 데리고 올라가셨고, 게쎄마니 동산에서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조금 더 올라가셨었다.

 

첫째로, 이 세 사람 가운데 항상 베드로는 선임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둘째, 시몬의 이름이 주님으로부터 반석을 뜻하는 베드로로 개명되었다는 사실도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마르 3,16; 루까 6,14; 요한 1,42)

 

셋째, 직접적으로 베드로는 특별한 지위로 임명된다. 가이사리아지방으로 가실 때, 예수님께서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 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7-19) 또, 최후의 만찬 때 '니가 나에게 다시 돌아오거든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다오.'(루카 22,32) 또, 부활하신 후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요한 21,15-23).

 

이렇게 해서 베드로는 가톨릭교회의 초대 교황이 되었다. 계속해서 베드로의 후계자들이 교황으로서 전체 가톨릭교회를 이끌게 되었다.

 

 

2) 교황선출

 

교황은 세습제가 아니다. 가톨릭교회의 성직자는 독신생활을 하기에 아들이 없다.

 

교황은 종신직이다. 교황님이 유고가 생기면 전세계 추기경님들이 모여서 교황님을 선출 하게 된다. 성베드로성당 옆에 있는 부속성당인 시스틴성당이 교황님 선출장소다.

 

추기경님은 보통 150여분 되는데, 누구나 교황님에 선출될 수 있지만 80세 이상은 교황님에 선출될 수 없다. 선거는 무기명 자유선거로 투표자의 2/3이상을 득표하신 분이 당선된다. 선거는 하루에 두 번,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한다. 저녁에는 쉰다.

 

선거기간 동안에는 성베드로성당 앞 베드로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좋은 교황님이 선출되기를 기도하며 기다린다.

 

선거에서 2/3 득표자가 나오면 시스틴성당 굴뚝에 흰 연기가, 실패하면 검은 연기가 나오게 하는 방식으로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알린다.

 

교황선출 기간에는 추기경님들이 외출외박이 금지된다. 일체 외부와의 연락이 두절된 채 교황선출에만 몰두해야 한다.

 

교황에 당선되면 이름을 짓는데 성인 가운데에서 새로운 이름을 택하거나 그 전에 교황님 이름으로 사용되던 이름 가운데 선택한다.

 

최근의 교황님은 현재 265대 베네딕도 16세(2005-),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 요한 바오로 1세(1978), 바오로 6세(1963-1978), 요한 23세(1958-1963), 비오 12세(1939-1958), 비오 11세(1922-1939), 베네딕도 15세(1914-1922)...

 

 

3) 교황숙소

 

교황님의 거처는 바티칸이고 성베드로 성당이 교황좌성당이다.

 

원래 교황좌성당은 라떼란성당이었다.

 

313년 로마제국에 종교자유가 주어지고 1308년까지 라떼란성당이 교황좌성당이었다.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종교자유를 선포하고 자기가 살던 라떼란궁전을 교황님께 헌납했다. 또 사도베드로가 순교했던 지역인 바티칸을 교황님께 헌납했다. 라떼란궁전을 개조되어 라떼란성당이 되어 교황님이 거처하는 교황좌성당이 되었고, 바티칸지역에도 성베드로성당이 건축되었다.

 

성베드로성당은 처음에는 작은 규모였는데 점차 증개축을 계속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베드로성당은 1309년부터 교황님이 거처하시는 교황좌성당이 되었다.

 

 

4) 교황님 일상

 

교황님은 아침에 교황청경당에서 미사를 드린다. 경당은 크기가 이 스튜디오보다 조금 더 큰데, 나는 1990년 유럽에서 공부할 때 한국신부신학생들이 교황님을 방문해서 교황님 경당에서 당시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과 함께 미사를 봉헌한 적이 있다.

 

대축일에는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신다.

 

평소에 교황님은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신다. 교황청 각 부서에서 기안한 공문을 처리하시거나 전세계에서 제출된 여러 가지 업무를 최종 결정하신다.

 

여름에는 두 달 가량 교황님 별장인 가스텔 간돌포에서 지내신다. 로마의 여름은 매우 덥기 때문이다.

 

 

5) 교황의 가르침

 

교황은 교황령이나 회칙, 사도적 권고, 편지 등을 통하거나 교황청의 부서들이 반포하는 율령이나 판결문을 통하여 통상적인 가르침인 교도권을 행사한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교도권은 교황좌선언이나 공의회를 통해 행사된다.

 

교황좌선언이란 '교황의 이름으로 반포하는 가르침'을 말한다.

 

또 교황은 '공의회'를 통해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을 선포할 수 있다.

 

 

2. 교황님, 교황님

 

가톨릭교회는 2천년 역사 동안 뛰어난 교황님을 많이 배출하였다.

 

하지만 때때로 그렇지 못한 교황님들도 있었다. 교황님을 포함해서 가톨릭교회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나약한 인간이기에 늘 회개와 쇄신이 필요한 것이다.

 

초대교황이신 베드로 이후 전체 265분의 교황님 가운데 가장 뛰어난 교황님으로 존경받는 대표적인 두 분의 교황님은 그레고리오 1세와 요한 23세 교황님이다.

 

 

1) 초대교황인 베드로(64년 순교)

 

베드로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먹고 살던 어부였다. 티베리아 호수, 겐네사렛 호수라고도 불리는 갈릴래아 호수, 요르단 강이 갈릴래아 호수를 거쳐 사해로 들어간다. 어부들은 갈릴래아 호수에서 우리로 치면 송어와 같은 고기를 잡아서 시장에 내다 팔고 살았다. 어부들은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잡히는 고기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중에 제일 대표적인 것은 베드로고기라는 게 있다. 옛날 베드로가 잡던 고기라고 베드로고기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특히 베드로는 성격이 우직하고 급한 사람이었다. 예수께서는 이 베드로를 중심으로 가톨릭교회를 세우시고 세상에서 사람들 구원을 위해 봉사하게 하셨다. : '내가 너 베드로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 저승의 힘도 교회를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니 이 교회를 잘 돌보아라.

 

베드로는 제1대 교황이 되었고, 이후로 지금 265대 베네딕도 16세 교황님까지 이어지고 있다.

 

 

바오로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 바오로는 많이 배웠고, 대단히 명석한 사람이었다. 열정과 끈기는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베드로를 중심으로 세워진 가톨릭교회를 바오로가 로마제국 전체로 퍼트렸다. 훗날 가톨릭교회는 로마제국을 넘어 세계전체로 퍼졌으니... 바오로는 가톨릭교회 세계화의 주역중의 주역이었다.

 

베드로는 계산적이지 못하고 그냥 마음가는대로 퍽 저지르는 사람, 요즘말로 좀 속터지는 사람이었고, 그에 비해 바오로는 아주 영리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예수께서는 이 두 분을 교회의 초석으로 삼으셨다.

 

 

2) 중세교회의 아버지,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게르만민족 침입시기에 가톨릭신자들을 보호하고, 게르만민족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켜 오늘날과 같은 유럽의 토대를 놓았던 분이었다.

 

교황은 먼저 교회외적인 분야에서 교회발전의 초석을 놓았다.

 

우선 게르만왕들과 담판해서 로마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었고, 또 게르만민족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또 교회의 땅을 관리해서 게르만민족의 침입의 여파로 피폐해진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를 도왔고, 사목적 배려로 사람들의 절망적인 고통을 덜어주려고 힘을 다하였다.

 

나아가 영국선교에 박차를 가했으며, 여러 분야에서 교회발전의 기초를 놓았고 교회가 서유럽의 중심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교회내에서도 교회개혁을 주도하였다.

 

성직자의 생활을 개혁하였고, 사제생활의 지침서인 '사목규정'을 저술하였다.

 

윤리신학과 수덕신학의 기본서를 저술했고, 베네딕도를 수도생활의 초석이 되게 하였다. 전례를 개혁하여 미사를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정착시켰다. 그레고리안 성가도 개혁하여 종교음악발전의 기초를 놓았다.

 

그는 14년의 재위기간동안 뛰어난 업적을 남겨 '중세 교회의 아버지'으로 평가받고 있다.

 

 

3) 현대교회의 아버지, 교황 요한 23세(1958-1963)

 

교황 요한 23세는 2천년된 중고 가톨릭교회를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하신 분이셨다.

 

가톨릭교회는 2천년을 지나오면서 교회내적으로 여러 분야에서 때가 끼고 낡아서 고물이 다 되었다. 아직도 권위주의와 같은 옛날 방식을 고집하니 사람들로부터 점점 따돌림을 당하고 고립되었다.

 

또한 교회외적으로도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방식이 너무나 크게 바뀌고 있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독신자들이 급속도로 늘고,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정보를 가진 오늘날 사람들은 신앙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많이 변질된 가톨릭교회에 일대 개혁을 단행하고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도록 토대를 놓으셨다.

 

사람도 초심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세월이 갈수록 마음도 약하게 되고 현실과 타협하기 쉽다. 2천년된 낡은 가톨릭교회의 구석구석을 청소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인데도 교황님은 탁월한 유머와 재치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가면서 그 어려운 일을 하셨으니... 요한 23세는 '현대교회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요한 23세는 가난한 소작농의 13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난 분으로 천성이 소탈하고 검소하신 분이셨고... 한평생 겸손하게 사시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과 축복을 주신 분이시다.

 

로마 성베드로 대성당 지하에 교황님들의 무덤이 있다. 오늘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꽃다발과 향유를 드리고 기도를 바치는 요한 23세 교황님은 이 시대의 진정한 목자셨다.

 

주님의 대리자로 가톨릭교회를 이끄시는 교황님들이 복잡한 이 시대에서 구원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기도드려야 하겠다.

 

 

4) 현재 교황 베네딕도 16세(2005-)

 

교황 베네딕도 16세는 원래 이름이 요셉 라칭거다.

 

1927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남동부 마르크틀 암 인에서 경건한 가톨릭 신앙인의 집에서 태어났다. 교황님은 뮨헨대학교 신학부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51년 3살 위의 형과 함께 뮨헨대교구 사제로 서품되었다.

 

교황님은 천재였다. 게다가 너무나 잘생겼다. 천재인데다가 귀공자 같아서 젊을 때 사진보면 얼굴에서 광채가 빛날 정도였다.

 

26살에 신학박사가 되었고 30세에 교수가 되어 20년간 프라이싱, 본, 뮨스터, 튀빙엔, 레겐스부르크대학교 신학부 교의신학교수로 활동했다.

 

교수로 활동하는 동안 교황님은 뛰어난 저술과 강연으로 명성을 얻으며 당대 정상급 신학자로 활동하였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에서 공의회신학자로 활동하였다. 공의회신학자로 초대받았을 때 나이는 불과 35살이었다.

 

1977년 50세 때에 뮨헨대교구 교구장으로 임명되었고, 4개월 후에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1982년 55세 때 교황청 신앙교리성성장관으로 봉직하다가 2005년 78세 때 제265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님은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 가운데 '그리스도신앙 어제와 오늘'(1968)과 같은 저서 외에도 기초신학과 그리스도론, 구원론, 성사론, 마리아론, 종말론, 토착화 등의 분야에서 뛰어난 저술을 남겼다.

 

단행본이 100여권, 논문이 400여편... 교황님의 필체는 간결하고 힘 있고 수려해서 너무나 주옥같다. 그가 집전하는 미사강론은 천상의 말씀과 같아서 많은 이들이 큰 감동을 받았다.

 

교황님이 가장 심취했던 분야는 교회론이었다. 박사학위가 '아오스딩의 교회론'이었다.

 

교황님이 지은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1969)은 현대의 교회론 저서들 가운데 백미로 꼽히는 빼어난 저작으로 평가된다.

 

 

교황님과 나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나는 대구가톨릭대학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1989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룩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나는 신학교 때 학장신부님을 존경했다. 학장신부님의 전공이 교회론이어서 신학교 4학년 때 교회론을 배웠는데 뛰어난 강의에 감명을 받았고, 교회론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1992년 신학석사학위 논문을 교회론으로 썼는데, 제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헌장의 교회개념'이었다.

 

석사학위를 받고 1992년 한국으로 돌아와서 신품성사를 받았다. 그리고 박사학위를 위해 다시 출국하게 되었다. 나는 또 신학교 때 철학교수신부님을 존경했다. 이번에는 철학교수신부님을 찾아 박사학위 논문주제를 상의했다. 두 가지를 말씀드렸다. : 1. 칼 라너의 교회론, 2. 요셉 라칭거의 교회론

 

철학교수신부님은 요셉 라칭거의 교회론으로 하라고 말씀하셨다. 신부님은 훗날 라칭거 추기경님이 교황님이 되실 줄 미리 아셨던 것 같다...

 

1995년 마침내 '요셉 라칭거에 있어서의 교회'라는 제목으로 박사학위가 완성되었다.

 

2005년 라칭거 추기경님이 교황님이 되셨다.

 

2009년 올해 주한 교황대사 대주교님께서 대구대교구를 방문하셨다. 그 자리에서 내가 교황님의 교회에 대해 박사학위를 썼다는 것을 아신 대사님께서 나의 논문을 교황청으로 보내셨다. 놀랍게도 교황청비서실에서 교황님께 내 논문을 보이셨고... 교황님께서는 반가워하시면서 격려말씀을 해주셨다는 편지를 보내주셨다. 옛날 같으면 교황님 계신 곳으로 절을 세 번 하고 편지를 받아야 하는데, 너무나 놀랍고 큰 영광이었다.

 

 

우리 신앙인들은 교황님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다.

 

가정에서도 가장이 굳건해야 하는 것처럼 가톨릭교회의 가장 큰 어른이신 교황님께서 늘 영육간에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려야 하겠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