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강 교회의 구성원

2011. 5. 18. 오전 6:4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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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강 교회의 구성원   

 

지난 강의까지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역사를 보는 것은 과거의 사실에서 지혜를 구하고자 함이다. 그래서 역사는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 12번 교회역사 이야기를 들었다.

 

1강부터 12강까지 요점을 정리한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감정의 변화가 심하고 굳건하지 못하다. 외롭고 허무하고 우울하고 스스로 삶을 버리기까지 한다. 왜 그렇겠나... 그것은 인간성이 죄로 물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성이 이기심으로 물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원죄'라고 불렀다.

 

그렇기에 죄로 물든 인간의 인생은 고단하다. 고단한 인간을 구하기 위해 구세주께서 오셨다. 구세주는 우리를 죄와 고통에서 구해주시는 분, 영원한 행복의 길을 보여주셨다. 그 행목은 겉으로는 작고 보잘 것 없게 보이지만... 죽음도 두렵지 않는 행복이다. 사람들은 그 것을 '구원'이라고 불렀다.

 

구세주께서는 구원이 계속 되도록 교회를 창립하셨고, 교회의 운영을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맡기셨다.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교회는 순식간에 사람들을 사로잡았고 마침내 자유를 얻게 되었다.

 

교회는 무수히 좋은 일을 하였지만, 교회는 세월 속에서 점차 변질되었다.

 

외적으로 정치와 합쳐지면서 '권위주의'로 변질되었고, 내적으로 '형식주의'로 변질되었다.

 

교회의 변질은 사람들의 불만을 낳았다. 그 불만은 두 가지 큰 사건을 낳았다.

 

첫째, 1500년대에 교회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를 뛰쳐나가 여기저기 너도나도 자기의 확신에 따라 새로운 교회를 세웠으니 그것이 개신교가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도 사람들은 자기주관에 따라 새로운 신흥종교들을 세우게 되었다.

 

둘째, 1800년대 세상이 급변했다. 군주제도가 민주제도로 바뀌고, 봉건제도가 자본주의로 바뀌던 시기에 교회는 세상변화를 무시하고 옛날전통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그 결과는 사람들의 대량 교회이탈이었고 세상으로부터의 고립이었다.

 

교회의 지도부는 전통을 굳게 지키는 것이 교회를 살리는 길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개혁적인 학자들은 교회의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했다. 그러는 동안에 시간은 계속 흘렀고 유럽교회는 끊임없이 추락했다.

 

마침내 교황 요한 23세가 개혁적인 학자들을 수용해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개최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교회도 변해야 한다'고 개혁을 추진했다.

 

현대세계에로의 적응(Aggiornamento)가 공의회의 소망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과연 오늘의 교회가 변화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의 요구에 귀를 귀울이고 잘 변화해나갈 것인가가 오늘의 과제이다. 신부님들을 포함한 성직자들이 먼저 변화해야 하고 각성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목표는 사람들의 구원이다. 교회는 복음이라는 좋은 상품, 명품을 가지고 있다.

 

이 명품을 우리만 가지고만 있어서는 안되겠다. 이 명품을 어떻게 오늘날 사람들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게 잘 전해줄 수 있을 것인가가 오늘의 과제다. 그렇지 못하면 교회는 또 사람들로부터 외면받아 고립되는 처지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늘부터는 교회내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다.

 

교회내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사명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겠다.

 

 

교회에는 성직자, 평신도, 수도자가 있다.

 

중세시기부터 정치와 종교가 합쳐지면서 성직자, 수도자는 지배자처럼, 평신도는 피지배자처럼 살았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성직자와 수도자는 높은 사람, 평신도는 성직자와 수도자 밑에 있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성직자, 평신도, 수도자는 그 하는 일이 서로 다른 것이지,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 동등하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제는 교회 안에 있는 구성원 모두가 더욱 서로 존중하고 귀하게 여겨 세상구원을 위해 협력해야 하겠다.

 

 

1. 성직자(clericus)

 

가톨릭교회의 일을 직무라고 한다. 그 직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을 성직자라고 한다.

 

성직자는 신품성사를 받고 성직자가 되는데, 주교, 신부, 부제로 구별된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세우고 사도들에게 교회의 직무를 맡겼다. :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 16, 18-19) 하늘나라 열쇠가 '교도권'이다. 교도권은 교회의 직무를 행사하는 권한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교도권을 사도들에게 주셨고, 사도들의 후계자들인 주교들에 의해 계속 이어지도록 하였다. 이렇게 교회가 사도들 위에 세워졌고, 사도들 후계자인 주교들로 계승되는 '사도성'이 가톨릭교회가 주님께서 세우신 참된 교회라는 가장 확실한 보증이다.

 

따라서 직접적으로 교도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주교들이다. 신부와 부제는 주교의 위임으로 교도권을 행사한다. 주교가 가톨릭교회의 중심이다.

 

 

1) 주교

 

주교는 그 하는 일에 따라 여러 직책으로 구별된다.

 

(1) 주교(episcopus)

 

주교는 '지역교회의 책임자'로서 사도들을 계승한다.

 

주교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신앙의 스승이고, 하느님께 거룩한 제사를 바치는 사제이며, 사람들을 사목하는 교회의 목자다. 신앙인들은 주교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린 결정을 따라야 하고, 주교에 대하여 성실한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 전 세계에 약 4천명의 주교들이 있는데 이러한 주교단을 대표하는 주교가 교황이다.

 

 

(2) 교황(papa)

 

교황은 '베드로의 후계자로 가톨릭교회 전체의 으뜸'이다. 신앙인들은 교황의 교도권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창립하면서 베드로를 사도단의 으뜸으로 세웠고, 베드로는 사도단의 단장으로 행동하였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활동하다가 기원후 64년에 순교하였는데, 로마의 주교가 베드로를 계승하여 교황이 되었다.

 

교황의 직책은 크게 세 가지다.

 

① 라틴교회의 총대주교 (가톨릭교회 전체의 책임자)

 

② 로마교구 교구장인 동시에 로마관구의 관구장

 

③ 바티칸이라는 국가의 대통령

 

** 교황청조직

 

- 국무원 : 행정과 외교업무 총괄 (국가의 국무총리 및 외교부장관에 해당)

 

- 성(9개) : 행정기관으로서, 신앙교리성, 동방교회성, 경신성사성, 시성성, 주교성, 인류복음화성, 성직자성, 수도회성, 교육성.

 

- 법원 : 교회 최고의 법원

 

- 평의회(11개) : 실무부서로서, 평신도평의회, 일치평의회, 가정평의회, 정의평화평의회, 사회복지평의회, 이주사목평의회, 보건사목평의회, 교회법해석평의회, 종교간대화평의회, 문화평의회, 사회홍보평의회.

 

- 사무처 : 바티칸의 재정업무를 담당

 

- 기타부서 : 교황알현, 국가원수 및 귀빈 의전, 각국대사 신임장 관장, 교황집전전례주관, 교황선출업무 등등.

 

** 교황청대사관

 

교황청은 각국에 교황대사를 파견하고 대사관을 두는데, 대사관은 두 가지 기능을 한다.

 

첫째, 정치적으로 바티칸국가의 외교사절이다. 바티칸은 정치적으로 하나의 국가로서 교황이 국가수반이다.

 

둘째, 종교적으로 교황님을 대리하는 대리자다. 한국교황대사는 교황청과 한국천주교를 연결하는 연결고리다. 교황청의 업무를 한국천주교에 전달하고 한국천주교에 관한 일을 교황청에 보고한다.

 

현재 주한 교황대사님은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님이시다.

 

 

(3) 추기경(cardinalis)

 

교회의 최고위 성직자로서 주교들 중에 극히 중요한 자리에 임명되는 사람이 받는 고위직책이다. 추기경은 교황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진다. 80세가 넘으면 피선거권이 없다.

 

우리나라는 김수환추기경님과 정진석추기경님 두 분의 추기경님을 배출했다.

 

 

** 김수환 추기경님(1922-2009)

 

김추기경님 신드롬이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분명 추기경님은 한국역사에서도 뛰어난 분으로 평가받으실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인으로는 조선시대 세종과 정조대왕이 계셨다.

 

군인으로서는 신라의 김유신장군과 조선의 이순신장군이, 일제시대 때는 김좌진장군이 계셨다.

 

유학자로서는 이황, 이이도 있지만 나는 정약용을 꼽겠다.

 

종교인으로 보면 일찍이 신라에 원효와 의상스님이 계셨고, 고려 때 지눌과 의천스님이 계셨고 조선에는 사명대사, 해방 후에는 성철스님이 계셨다.

 

추기경님은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시는 분으로 평가받으실 것이다.

 

 

추기경님은 1922년 대구 남산동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내에 있던 민가에서 출생하셨다. 당시 교구청 내에는 민가가 몇 집 있었는데 옹기장수이셨던 추기경님 선친께서 거기에 사시면서 9남매의 막내로 추기경님을 얻으신 것이다. 추기경님 선대는 경북 군위에서 사셨다.

 

추기경님이 3살 때 추기경님 선친은 군위로 이사하셨고 추기경님은 거기서 초등학교 5년 과정까지 다니시다가 11살 때인 1933년에 대구 남산동 유스티노신학교 예비과에 입학하시게 되었다. 예비과를 마치신 추기경님은 당시 신학교였던 서울 동성고등학교를 거쳐 1941년에 일본 상지대학교로 유학을 하시게 되었다. 일본 상지대 기숙사 사감신부님은 추기경님께 '너는 행운아다'라고 하셨다.

 

1944년 전쟁으로 일본군에 징집되어 동남아 전선까지 끌려가셨다가 전쟁 후에 살아 돌아오신 추기경님은 1947년 서울 가톨릭대학교에 편입하셔서 신학공부를 계속하시게 되었다. 당시 대구 유스티노신학교는 일제에 의해 폐교를 당했고 대구신학생들은 서울에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1951년 전쟁 중에 추기경님은 계산성당에서 최덕홍 주교님으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으셨다. 그때가 29세였다.

 

그리고 첫 임지로 안동본당 주임신부님으로 발령을 받으셨다. 안동본당은 지금의 안동 목성동본당이다. 1년 반 정도 안동본당신부를 역임하신 추기경님은 1955년부터 1년 넘게 김천본당신부 겸 성의중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셨다. 김천본당은 지금의 김천 황금본당이다. 훗날 추기경님은 안동본당과 김천본당시절이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회고하셨다.

 

1956년부터 7년 동안 독일 뮨스터대학교에서 유학하시면서 사회학을 전공하셨다.

 

1964년부터 1966까지 가톨릭신문사 사장을 역임하셨다.

 

그리고 1966년 주교로 간택되셔서 초대 마산교구장으로 임명되셨다.

 

1968년, 노기남 대주교님 후임으로 서울대교구장으로 착좌하시고 대주교로 선임되셨다.

 

1969년, 한국 최초의 추기경으로 서임되셨다.

 

그리고 30년간 서울대교구장으로 일하시다가 1998년 은퇴하셔서 서울 가톨릭대학교 옆에 있는 서울대교구 사제관에서 기거하시다가 지난 2월 16일 향년 87세로 선종하셨다.

 

 

추기경님의 생애는 한마디로 격동의 시기였다.

 

한국역사상 일찍이 그런 격동의 시기는 없었다. 일제시대와 식민지, 징용과 정신대, 6,25전쟁과 동족상잔, 보릿고개과 굶주림, 해방 후 좌우익의 극한 대립과 남북대결, 격동의 정치사, 군부정치와 민주화, 경제발전과 노동자들의 눈물...

 

격동의 난세에... 김추기경님의 삶은 영웅적이었다.

 

추기경님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강한 신심을 이어받으셨다.

 

처음에는 장사를 해서 부모님을 호강시켜드리려고 했었는데 어머니의 권유로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어머니말씀을 잘 따랐던 효자이셨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뒤 얼마동안은 어떻게 하면 신학교에서 쫓겨날 수 있을까하고 고민했다고 한다.

 

신부들은 사제서품때 평생 삶의 모토로 성서구절을 하나씩 택한다. 서품성구라고 한다.

 

추기경님은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를 택하셨다.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 때에 빵과 포도주를 당신 몸과 피로 축성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면서 하셨던 말씀이다. 제자들이 구원을 위해 헌신하실 것을 당부하시는 말씀이다.

 

80세 때 어느 TV에 출연하셔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 "나는 한평생 '사랑과 용서' 두 마디를 가슴에 품고 살려고 노력했다." "서로 사랑하세요... 서로 용서하세요..." '사랑과 용서' 이 두 마디가 추기경님 삶의 모토였다.

 

추기경님의 업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1. 민주화 공헌

 

박정희정부 시절은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루었지만 18년 장기집권의 부작용으로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은 간절했다. 많은 야당정치인들이 잡혀가서 희생되고, 피가 끓었던 학생들의 저항도 극심했다.

 

당시 곳곳에서 사복차림의 형사들이 국민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던 때였다. 대학교에도 중앙정보부나 경찰요원들이 진을 치고 학생들의 동향을 감시했다. 나도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대학교를 다녔으니 박정희정부 말기의 상황을 현장에서 겪었다.

 

그 때 명동성당은 힘없는 학생이나 노동자들, 철거민들이 피할 수 있었던 피난처였다.

 

박정희대통령도 명동성당만은 어찌할 수 없었다.

 

어느 날도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던 학생들이 경찰에 쫓겨 명동성당으로 도망오자 추기경님은 경찰을 가로 막았다. 경찰들이 학생들을 내놓으라고 다그치자 추기경님 말씀 : "내 뒤에는 신부님들이 있고, 그 뒤에는 수녀님들이 있고, 그 뒤에 학생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을 잡아가려면 나를 밟고 가세요." 결국 경찰들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2. 한마음한몸운동 본부

 

(1) 설립

 

1989년 제44차 세계성체대회 후에 추기경님께서는 성체성사의 의미를 삶에서 실천하게 하고자 생명나눔운동을 실천하는 한마음한몸운동 본부를 설립하셨다. 현재 전세계 52개국에서 운동을 펼치고 있다.

 

(2) 주요사업

 

① 해외원조사업

 

-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에서 빈곤퇴치, 자립지원, 의료, 직업기술교육 등

 

- 긴급구호 : 지진, 쓰나미, 사고 등 긴급해외원조 및 사랑의 집짓기 지원

 

- 국제봉사단 : 몽골 청소년센터, 필리핀 사랑의 선교회 등에 봉사단 파견

 

② 국내사업

 

- 백혈병어린이돕기사업 : 진료비지원, 헌혈, - 골수기증등록사업, - 제대혈등록사업,

 

- 장기기증등록사업 : 뇌사시 기증, 사후기증, - 생명환경운동 : 환경운동, 우리농살리기, 성체줄기세포연구기금, - 인권운동, - 도시빈민사목지원 : 어린이공부방, 청소년교육

 

- 이주노동운동지원 : 이주노동자사업, 자녀지원, 진료비, 쉼터

 

- 사회복지사업지원 : 노숙자쪽방, 결핵환자쉼터

 

- 1989년 7월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신자 5천명 헌혈행사(헌혈잔치)

 

(3) 기타

 

추기경님께서 각막을 기증하시고 선종하신 이후로 전국적으로 장기기증 증가하고 있다. 근데 보통사람들은 장기기증 하면 '사랑의 장기기증본부'를 떠올린다. 사랑의 장기기증본부는 개신교에서 운영하는 단체다. 신자들도 이왕이면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서 장기기증을 하면 안좋겠나. 한마음한몸운동은 장기기증뿐만 아니라 빈곤퇴치, 인권, 환경, 농민운동, 북한돕기 등 다양한 생명나눔활동을 하는데, 장기라는 말이 없어서 장기기증과 바로 연결되지 못하는 것 같다.

 

 

3. 사회적 약자 배려

 

(1) 상계동철거민 보호

 

모든 이를 공평하게 대하셨지만 추기경님은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들을 따뜻이 품어주셨다. 재개발에 밀려 서울 상계동 철거민들이 오갈 데 없게 되자 명동성당 뒤뜰에 천막을 치고 7개월 동안 살도록 배려하셨고, 그때 성당뒤뜰에 있던 테니스장에도 천막을 쳐야하자 좋아하셨던 테니스도 접었다. 요즈음 용산 철거민들의 눈물은 누가 닦아줄 수 있을런지...

 

(2) 라파엘 클리닉

 

라파엘 클리닉은 1997년에 김추기경님의 뜻에 따라 안규리 서울대의대교수를 주축으로 설립한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한 무료진료 및 구호단체다. 1998년에 혜화동성당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동성고 강당에서 운영하고 있다.

 

매주 일요일에 19개과 20여명의 서울대의대의료진과 고대의대의료진, 그리고 100여명의 봉사자들이 운영하는데 전국 외국인노동자 170-350여명이 진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4. 종교인평화회의 결성

 

추기경님은 1986년 한국종교인 평화회의가 결성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다.

 

1981년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아시아 종교인평화회의에 참석하신 김추기경님은 개신교 강원용 목사, 불교의 성철스님, 원불교 김대거 종법사, 유교의 박중훈 성균관관장, 천도교 고정훈 교령 등 한국 6개 종교지도자들과 함께 '한국종교인평화회의'를 결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종교인평화회의는 우리사회가 어지러울 때마다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국민의 아픔과 슬픔을 어루만지고 국가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등 국민통합에 공헌해왔다.

 

대구에서도 15년 전에 대구종교인평화회의가 결성되어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등 6개 종단이 서로 협력하고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왔다.

 

광주, 부산에서도 종교인평화회의가 결성되어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고, 매년 영호남 종교인평화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정치인들에게는 늘 국민의 봉사자로 살 것을 주문하셨고, 특히 사회적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도록 당부하셨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희망을 잃지 말고, 참된 행복을 품고 살면 두려울 것이 없다고 가르쳐주셨다.

 

가진 사람들에게는 가진 것을 나누는 행복을 가르쳐주셨다.

 

추기경님의 가르침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순리를 거스리지 않고 그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것을 말씀하셨고 실천하셨다.

 

언제 들어도 쉽고 명확하게 말씀하셨던 추기경님...

 

하느님 말씀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깨닫는데 70년이 걸리셨다는 추기경님...

 

스스로를 언제나 '바보'라고 생각하시면서 겸손함을 잃지 않으셨던 추기경님...

 

당신 삶을 마무리하시면서 그저 '고맙다고' 하셨던 추기경님...

 

이제는 편히 쉬시면서 우리와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해주실 것이다.

 

 

(4) 대주교(Archiepiscopus)

 

몇 개의 교구가 모여서 관구가 되는데, 관구장 주교를 대주교라 한다. 또 교황청대사도 대주교다.

 

(5) 부교구장주교(coadiutor)

 

교구장 승계권이 있는 주교를 부교구장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부주교라고 불렀다.

 

(6) 보좌주교(auxiliaris)

 

교구장주교를 보좌하는 주교다.

 

 

2) 신부(presbyter)

 

(1) 신부

 

신부는 '주교의 협력자'로 신품성사를 받고 주교를 보필한다. 신부는 두 부류가 있다. 교구신부와 수도원신부다. 교구신부는 교구소속신부이고 수도원신부는 수도원소속 신부다.

 

교구신부도 두 부류가 있다. 본당에서 사목하는 사목신부와 본당 이외의 기관에서 일하는 특수사목신부다. 특수사목신부는 학교나 병원, 언론이나 사회복지 등의 기관에서 일한다. 교구청이나 대리구청 같은 행정부서에서 일하는 신부도 특수사목신부라 하겠다.

 

(2) 몬시뇰(Monsignore)

 

신부들 가운데서 특별히 교회에 공헌한 신부에게 주는 명예직책이 몬시뇰이다. 몬시뇰은 '나의 주님'이라는 뜻으로 과거 왕이나 귀족에게 전하, 각하의 뜻으로 사용된 용어다.

 

(3) 보좌신부(vicarius parochialis)

 

신자들이 너무 많거나 또 다른 이유로 본당신부 혼자 사목을 감당할 수 없다고 교구장이 판단하면 보좌신부를 파견한다. 보좌신부는 본당신부의 명을 받아 본당운영에 협력한다.

 

 

3) 부제(diaconus)

 

부제는 주교의 명을 받아 '주교와 신부에게 협력하는 협력자'다. 부제는 복음을 읽고 가르치며, 세례와 혼인을 거행하고 여러 가지 교회직무를 통해 주교와 신부를 돕는다.

 

 

2. 평신도(laicus)

 

평신도는 '성직자가 아닌 신자'를 지칭하였는데, 3세기경부터 점차 수도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이 정착되면서 교회 안에 성직자, 평신도, 수도자의 구별이 뚜렷하게 되었다. 평신도는 '성직자, 수도자가 아닌 신자'를 말한다.

 

 

3. 수도자(religiosus)

 

수도자는 청빈, 정결, 순명의 3가지 복음정신을 실천하면서 '봉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초대교회부터 세상의 번거로움을 떠나 스스로를 하느님께 봉헌하고 사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은수자의 형태로 있다가 점차 공동생활을 하는 수도회로 발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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