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강 유교(儒敎)

2011. 5. 22. 오전 6: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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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강 유교(儒敎) 

1. 공자(孔子, BC 551-479)

 

 

유교의 창시자는 공자(孔子)였다.

 

공자는 춘추시대 노나라의 평범한 가정에서 출생했다.

 

공자의 삶은 고난과 역경의 삶이었다.

 

아버지는 말단 군인이었는데 64세 때 공자를 얻었다. 어머니는 세 번째 부인이었는데 17세였다. 공자는 서자출신이었다. 그나마 공자가 세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17세 때에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고아가 되었다. 훗날 공자는 '나는 어린 시절 가난하고 비천하여 먹고살기 위해 이런저런 일을 많이 했다.'고 회고하였다.

 

공자는 젊은 시절에 가축을 관리하는 하급공무원이 되었다. 이후 승승장구해서 법무장관과 재상에까지 오르지만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성격으로 결국 권력다툼에서 밀려나게 되어 망명길에 올라야했다. 공자는 14년 동안 여러 나라를 떠다니면서 유랑생활을 하였다. 온갖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68세에 실망만 가득안고 고향으로 돌아와 마지막 5년을 교육과 저술에 전념해 많은 제자들을 모았다.

 

공자사후에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전하게 되면서 공자의 가르침은 단순히 가르침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점차 유교라는 종교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 후로 많은 학자들이 공자의 가르침을 종교로 체계화하였다.

 

 

2. 유교의 경전

 

공자의 말씀과 후대학자들의 해석을 편집한 유교의 경전이 사서삼경이다.

 

四書 : 論語, 孟子, 中庸, 大學

 

三經 : 詩經, 書經, 易經

 

 

3. 군자(君子)

 

유교의 근본가르침은 '修己安人'이라 할 수 있다. 즉, 스스로 도를 닦고,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고, 그렇게 해주는 사람을 '군자(君子)'라 불렀다. 따라서 유교인은 평생 군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덕을 실천해야 한다.

 

1) 인(仁)의 실천

 

유교의 근본이 인(仁)이다. 仁이라는 말은 사람 인(人)과 두 이(二)의 합성어로 '두 사람 사이의 가장 이상적인 관계'를 의미하고 있다. 그 중에 제일은 효(孝)였다. 부모를 공경하는 효가 가장 우선이었다. 충(忠)과 부딪칠 때도 효가 우선이었다.

 

2) 의(義)의 준수

 

의는 '도덕적으로 옳게 해야 할 바'를 말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 상황에서 마땅히 취해야 할 바'를 말한다.

 

3) 예(禮)의 갖춤

 

예는 '인을 표현하는 형식'이다. 예의 구체적 실천이 '三綱五倫'이다.

 

三綱 : 君爲臣綱, 父爲子綱, 夫爲婦綱

 

五倫 : 父子有親(親), 君臣有義(義), 夫婦有別(別), 長幼有序(序), 朋友有信(信)

 

 

하지만 이러한 예는 형식주의가 되기 쉬웠다. 특히 제사의 경우 음식 놓는 법이나 절 순서, 수저위치, 술잔에 술을 붓는 법 등등 형식을 많이 따졌다.

 

 

4) 안인(安人),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공자에게 가장 중요한 안인은 '정치와 경제'였다. 특히 춘추시대, 전쟁이 난무하던 당시에 태평성대는 무엇보다 절실했을 것이다.

 

정치에 대해 공자는 법과 같은 힘이 아니라 '덕(德)'으로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경제는 '나눔'이 기본이었다. 나눔은 정의로운 분배, 공평한 분배를 의미한다.

 

 

5) 군자(君子)와 소인(小人)

 

군자는 마음이 넓어 어느 한 군데 치우치는 일이 없지만, 소인은 마음이 좁아 항상 비교해 보길 좋아한다. 소인은 사람을 만나도 인격이 아니라 학교는 어디를 나왔네, 고향이 어딘지, 또 누구를 아는가 하면서 인맥을 따지고, 도움이 될 것인지 계산을 하고, 네편과 내편을 가르고 세력다툼을 한다.

 

군자는 자기 능력의 모자람을 탓하고 다른 사람의 단점을 까발리지 않지만, 소인은 늘 남을 욕하고, 저 사람은 나에게 왜 이렇게 해주지 않을까, 안해주면 섭섭하고 삐지고, 원망하고, 미워한다.

 

군자는 말은 느리고 행동은 빠르지만, 소인은 행동은 느리고 말이 앞선다.

 

 

군자가 되기 위해서 공자는 '교육이 절대적'이라 하였다. : 논어의 첫 구절,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라',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공자는 이론적인 학문보다 인성교육, 인간됨됨이교육을 더 중시했다. : '집에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손히 하고, 믿음의 태도로 이웃을 사랑하고, 어진 이를 가까이 하라.'

 

 

4. 한국의 유교

 

 

1) 유교의 한국전래

 

우리나라에 유교가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였다.

 

고구려는 372년 국립대학인 태학을 설립하여 유교의 경전을 가르쳤고, 백제에서는 일본에 유교를 전한 왕인박사가 있으며, 신라에는 원효대사의 아들인 설총이 국립대학인 국학을 세워 유교경전을 가르쳤다.

 

고려 때 불교가 번성했지만, 정치와 국민생활은 유교식으로 정착되었다. 과거의 과목으로 유교경전이 채택되었고, 고려말에 송나라 유학인 '주자학(성리학)'이 유입되면서 이 주자학이 조선조 유학발달의 초석이 되었다.

 

조선은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을 기조로 하여 주자학을 기본통치이념으로 삼았다. 조선시대에 유학은 만개하였고 국민의식의 토대가 되었다. 근데 중국에서는 유학이 주자학, 양명학 등등으로 다양하게 발달한 반면, 우리는 주자학으로 단순화되어서 사고나 생활양식이 획일화되었다. 주자학도 공자사상에 대한 하나의 해석인데도, 우리는 주자학을 절대시해서 다른 사상을 철저히 박해하였다.

 

18C에 들어오면서 조선유학의 새로운 움직임이 있었다. '실학(實學)'이 그것이었다. 실학은 탁상공론을 버리고 실천적인 효과를 강조하였는데, 정약용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실학의 독창적이고 실천적 가르침이 일제의 침략으로 계승되지 못하고 단절되고 말았다.

 

 

2) 유교에 대한 비판

 

상명대 김경일 교수가 유교비판저서를 냈다. :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이 책은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모든 악습과 부패의 원인을 유교에 돌리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심지어 유교를 곰팡이, 공자를 바이러스라고 혹평하고 있다.

 

(1) 서열주의

 

유교는 서열과 복종을 강요해서 형식주의가 되었다. 그리하여 양반은 대접받고 평민은 한평생 뼈골이 빠지도록 살아야 했다.

 

(2) 권위주의

 

방안에 있는 물그릇을 아버지가 모르고 걷어차면 '누가 물그릇을 여기다 놓았어'가 되지만, 자식이 걷어차면, '너는 눈이 삐었냐'가 된다.

 

(3) 폐쇄주의

 

능력보다는 가문끼리, 출신학교끼리, 고향사람들끼리 밀어주고 땡겨주니 발전을 저해하고 분열을 조장할 수 있다. 특히 좁은 땅에서 망국적인 지역차별은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4) 여성차별

 

조선시대 여성의 지위는 신라나 고려보다 못했다. 고려 때는 제사지낼 아들이 없을 때는 출가한 딸이 대신 지내기도 했고, 재산상속이나 재혼 등에 있어서 여자도 상당한 권리가 있었는데, 유교가 여성을 남성에 완전히 종속시켰다.

 

(5) 창의성 말살교육

 

스승의 권위에 무조건 맹종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학문적 창의력이 발달되기 어려웠다. 유럼이나 미국 같이 자유롭고 개방적인 곳에서 한국인의 능력은 돋보인다.

 

(6) 가족이기주의

 

효에 대한 절대적 강조는 가족이기주의를 낳았다.

 

자기 가족만 지나치게 집착하면 내핏줄만 중시하게 된다. 남의 자식이야 어떻든 내 자식만 잘 봐달라는 촌지문제나 내 자식 군대 안보내려는 병역문제도 고쳐져야 할 것이다. 외국으로 입양을 많이 보내면서도, 우리는 다른 사람 아이를 여간해서 입양하려하지 않는다.

 

 

5. 유교는 종교인가

 

많은 사람들은 유교는 윤리나 철학이지 종교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사실 종교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도 간단치 않다.

 

종교적인 것과 비종교적인 것의 기준은 '초월적인 존재의 유무'일 것이다. 이점에서 보면 유교는 분명히 종교적이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사람은 '하늘로부터 성품을 받았기 때문에 선하게 살아야한다'는 공자의 가르침도 초월자를 전제하고 있다. 유교는 하늘의 뜻을 가르치지만 현세에 더욱 집중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인류에게 큰 가르침을 주신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자의 가르침이 후대에 계승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드러났다. 남녀차별이나 서열주의, 권위주의와 같은 잘못된 관행들은 오늘날 반드시 고쳐져야 할 것이다. 신앙인들은 이러한 한국인의 유교문화를 잘 이해하고 선교할 때도 참고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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