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강 수도자와 사도직

2011. 5. 20. 오전 6:3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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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강 수도자와 사도직 

 

1. 수도생활의 역사

 

1521년 개신교분열이후 수도자였던 마르틴 루터는 수도생활이 '세상에 대한 거부요 현실도피의 수단'이라고 비판하였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수도생활이 깊이 연구되었다. : "왜 수도생활이라는 삶의 형태가 생겨났고 많은 사람들이 수도자로 살아왔는가?"

 

학자들은 수도생활이 '세상을 거부하고 현실을 도피하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조용한 생활과 완덕(完德)에 대한 염원’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소망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혀냈다. 사실 일찍부터 이러한 소망을 담은 삶의 형태가 인도, 중앙아시아, 중국 등지에서도 나타났다.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修道者'라고 한다.

 

수도자 가운데 남자 수도자를 '修士'라고 한다. 수사는 두 부류가 있다. 수사 가운데 신품을 받은 수사를 '수사신부'라고 한다. 신부가 아닌 수사를 '수사', 또는 '평수사'라고 부른다.

 

수도자 가운데 여자 수도자를 '修女'라고 한다. 수녀 가운데 신품을 받은 수녀는 없으니 수녀신부는 없다.

 

 

수도생활을 가장 확실하게 정의하는 말은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봉헌하는 봉헌생활'이다. 근데 그냥 마구잡이로 봉헌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틀에 따른다. 그 틀이 세 가지다.

 

첫째, 청빈, 둘째, 정결, 셋째, 순명이다.

 

 

사도행전 21, 8-9은 그 당시 카이사리아 지방의 일곱 봉사자 가운데 한 사람인 필립보스의 네 딸이 동정녀요 예언자임을 밝히면서, 사도시대에 이미 하느님께 봉헌된 동정자들이 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또 1티모 5, 3-16에 보면 교회가 인정하고 있는 봉헌된 부인들이 "하느님께 희망을 걸고 밤낮으로 끊임없이 간구와 기도를 드리는" 내용은 수도생활의 효시로 볼 수 있다.

 

 

로마박해시대 때 신앙을 드러내는 최고의 표현이 '순교'였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았다.

 

근데 313년, 박해가 끝나면서 순교도 사라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순교에 버금가는 신앙의 표현이 '본능적인 욕구를 절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성적인 욕구를 버리는 금욕생활이 순교에 버금가는 최고의 신앙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앙에 불타는 많은 젊은이들은 결혼을 포기하고 덕을 닦기 위해 혹독한 고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은 너도나도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저 광야나 사막으로 떠나 오직 기도하고 침묵 중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살았다.

 

이들은 세속의 번거로움을 피하여 개별적으로 '개인의 수덕'에 전념했다. 이렇게 해서 '개인의 수덕'이 초기 수도생활의 모티브가 되었다.

 

이런 사막의 은수자들이 수도생활의 모체가 되었다.

 

1) 성 안토니오(251-?)는 은수자로 혹독한 고행을 통해 깊은 덕을 쌓았는데, 은수자들이 체계적으로 살 수 있는 삶의 지침을 만들었다. 안토니오는 '은수자들의 아버지'로 불렸다.

 

2) 성 빠코미우스(287-347)는 나일강변 타벤니시에 최초의 수도원 7개를 세우고 수도자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수도규칙'을 만들었다.

 

이렇게 수도자들은 처음에는 세상을 떠나 '스스로 완덕을 쌓아 천당에 가는 것', 즉 '개인의 수덕(修德)'이 목표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덕을 쌓아 천당에 가는 것'만이 목표라면 수도생활은 그저 천국에 가기 위한 좀 이기적인 생활방식이 아닌지가 반성되기 시작하였다.

 

3) 성 베네딕도(480-547)

 

그래서 수도자들은 점점 '자기 자신의 덕'뿐만 아니라 '교회를 위한 봉사'도 또한 중요한 사명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완전한 의미의 수도생활의 기본 토대를 놓은 분이 바로 베네딕도였다. 베네딕도는 수도자들이 개인의 완덕뿐만 아니라 교회를 위한 봉사에 꼭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는데, 훗날 사람들은 베네딕도를 '수도자들의 아버지'로 불렀다. '베네딕도의 수도규칙'은 이후 가톨릭교회 수도규칙의 모델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초기 수도생활의 모티브였던 '개인의 수덕(기도)'에 '교회에 대한 봉사(일)'가 추가되었다.

 

 

중세 이후로 수도회는 봉쇄수도회뿐 아니라 활동수도회도 성해졌고, 특히 베네딕도회와 그 정신을 따른 수도회의 사회봉사는 지대하였다. 12세기부터 프란치스코회, 도미니꼬회 등이 주요한 수도회로 자리를 잡게 되고, 특히 16세기 이후 예수회는 교회의 학문과 영성생활, 전교에 크게 기여해 왔다.

 

교황청 직할로 교구장이 수도회에 관여하지 않는 수도회를 '면속수도회'라 한다. 예수회, 베네딕도회, 프란치스코회, 도미니꼬회, 깔멜회 등이 면속수도회다.

 

 

2. 우리나라의 수도회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수녀원은 프랑스 샬트르 지방에 있는 성바오로 수녀원이다. 1888년에 들어왔으니 100년 조금 넘었다.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은 1634년에 생겼으니 350년 되었다. 그 이후로 독일의 베네딕도 수녀원, 프랑스의 갈멜수녀원 등등이 한국에 진출하였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남자수도원이 지금 독일 남부 성 오틸리엔에서 온 베네딕도 수도원이다. 1909년에 들어와서 서울에 있다가 1927년에 북한 덕원이라는 곳으로 진출하였다. 해방이 되고 공산당이 들어서면서 10분의 신부님들이 순교하시고, 다른 신부님들은 독일로 추방되고 수도원도 몰수되었다. 6.25후 남한으로 이전해서 왜관에 자리를 잡았다.

 

그 이후로 많은 수도회가 진출하여 교회와 세상을 위하여 봉사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자체적으로 많은 수도회가 생겨나게 되었다.

 

현재 수도자들은 만여 명 정도인 것으로 파악된다.

 

 

3. 수도회의 이름과 종류

 

1) 수도회 이름

 

보통 수도회를 창설한 창설자의 이름이나, 어떤 성인의 정신을 따른다는 뜻으로 그 성인의 이름을 따라 짓는다. 베네딕도가 창설한 수도원이 베네딕도회이고, 프란치스코가 창설한 수도원이 프란치스코회다. 근데 창설자나 특정성인의 이름을 따르지 않고 짓는 이름도 있다. 갈멜회, 예수회, 예수성심시녀회,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 등이다. 이런 이름에는 그 수도회가 특별히 따르고 싶은 영성이 담겨있다.

 

2) 수도회 종류

 

수도원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봉쇄수도원과 활동수도원이다.

 

봉쇄수도원(또는 觀想수도원)은 침묵 속에 하느님을 위해 모든 것을 봉헌하는 수도원이다. 깔멜회, 트라피스트회, 칼투시안회와 같은 수도원이다.

 

활동수도원은 세상 속에서 하느님을 위해 모든 것을 봉헌하는 수도원이다. 샬트르 성바오로회, 예수성심시녀회, 베네딕도회, 프란치스코회, 예수회와 같은 수도원이다.

 

 

3) 수도자 분류

 

수도자들 '하느님을 위해 봉헌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크게 세 부류가 있다.

 

첫째, 우리가 아는 보통 수도자들이다. 수도자들은 자기 수도회의 정신에 따라 봉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둘째, 재속회다. 재속회회원들은 세상 안에 살면서 일정한 규칙에 따라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산다. 가르멜재속회, 프란치스코재속회와 같은 재속회다.

 

셋째, 남녀 사도직을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저마다 고유한 사도직을 수행하기 위해 정해진 규칙에 따라 봉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교구나 수도회, 또는 특별한 사도직의 정신에 따라 사도직을 사는 사람들이다.

 

 

4. 수도자 사도직

 

 

1) 말씀의 봉사직(예언직)

 

수도자들의 첫 번째 사명은 말씀을 전하는 일이다. 말씀을 전하는 사명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의 첫 번째 사명이다.

 

2) 전례의 봉사직(사제직)

 

수도자들 두 번째 사명은 '성사생활과 기도생활'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다.

 

3) 사목의 봉사직(왕직)

 

수도자들은 특히 삶에 지친 신자들, 가난하고 소외된 신자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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