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강 교회일치문제

2011. 5. 22. 오전 6:3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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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강 교회일치문제 

같은 하느님, 같은 구세주를 믿는 사람들이 갈라져 있는 현실은 분명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상황은 아닐 것이다. 갈라진 그리스도교가 다시 일치할 수 있을까? 이런 일치운동을 '교회일치운동', 영어로는 '에큐메니컬 운동(ecumenical movement)'이라고 한다.

 

 

1. 교회분열과 가톨릭교회

 

 

가톨릭교회는 먼저 '가톨릭교회가 어떻게 참된 교회인가'인지 그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참된 교회의 기준으로는 다음 세 가지 기준이 가장 확실한 기준이 될 것이다.

 

첫째, 연속성 : 참된 교회는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와의 연속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둘째, 객관성 : 참된 신앙과 교회는 자기의 주관성에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

 

셋째, 복음성 : 참된 교회의 가르침이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의 가르침과 일치하여야 한다.

 

이러한 기준을 전제하고, '가톨릭교회가 참된 교회다'는 가장 확실한 근거는 무엇인가?

 

가톨릭교회는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신 교회가 사도 베드로를 통해 계속 이어지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고, 그 연속성이 다른 갈라진 교회들 보다 더 자명하고, 가장 확실하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야말로 예수님께서 세우신 참된 교회로 사도 베드로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교회다. 비록 교회 내에 있는 인간들의 나약함으로 과오도 있었지만 세상 끝 날까지 정화와 쇄신을 계속하면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수행해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개신교교회가 가톨릭교회를 탈퇴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확신에 의한 것이었다. : '가톨릭교회가 참된 신앙과 복음을 충분히 유지하지 못하고 변질되었다.'

 

원칙적으로 가톨릭신자들도 다음의 사실을 부정할 필요가 없다. : 즉, 중세 이후 가톨릭교회가 초대교회의 순수성을 잘 유지하지 못하고 정치와의 혼합 속에서 많이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교회의 부족함과 잘못을 반성해야 하는 것이지, 그것이 가톨릭교회로부터 이탈이라는 정당한 근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때 그때마다 새로운 교회들이 줄을 이을 것이다.

 

교회의 부패는 결국 교회 교도권 담당자들의 부패를 말한다. 교회 지도부의 부패를 말한다. 교회자체가 부패되었다고 말한다면, 예수께서 세운 교회를 처음부터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를 이끄는 사람들이 부패했다는 것이고, 교회개혁은 우선적으로 사람들이 변화되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교도권이 변화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개혁을 기치로 했던 개신교가 오늘날 수백 개가 넘는 종파로 분열되어 있고 그 안에서도 순수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따라서 루터는 새로운 교회를 세울 것이 아니라 교회 내에서 개혁을 했어야 했다. 힘이 부치면 다음 세대에 맡기고, 하느님의 섭리에 맡겨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개신교가 가지는 긍정적인 면을 부정할 수도 없다. 개신교에도 성경이 근본 규범으로 존재하고, 세례가 존재하고, 은총과 의화, 그리고 성령께서 현존하심을 부인하지 않는다. 개신교는 '가톨릭교회가 항상 변질되지 않고 신앙의 원천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설령 개신교가 없었다고 해도 가톨릭교회는 늘 초심을 유지하는 원천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교회에 분열이 존재하고 있다.

 

일치는 분열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렇다면 '과연 왜 하느님께서 분열을 허용하셨는가'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분열의 책임이 양쪽에 있음을 고백한다. 당시 무능하고 부패했던 가톨릭교회의 지도부에도 책임이 있고, 급진적이고 극단적이었던 루터쪽에도 책임이 있다.

 

어느 쪽이 더 죄과가 있는지 정확히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 판단은 오직 하느님의 심판에 맡겨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더 책임이 있고, 왜 교회분열이 있었는가의 물음은 근본적으로 '하느님께 물어 보아야 하는 물음'이 된다. 이것을 '신의론(神義論,Theodizee)'이라고 한다.

 

양쪽이 모두 서로 상대 쪽에 대해서 선의를 가져야 한다. 사실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그리스도인의 대부분은 다른 교회에 대해서 '정말로 죄책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을 더 잘 실천할 수 있도록 서로 촉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 책임이 없는 분열에 격분해서 상대방을 원수처럼 대하는 것보다, 구원을 위해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 그리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더욱 근본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온 힘을 다해 우리사회를 아름답게 가꾸고 곳곳에서 사랑의 불꽃을 피워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데 헌신하는 것이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더 소중하지 않겠나.

 

 

2. 교회분열과 그 결과

 

 

1) 가톨릭과 정교회

 

1054년, 가톨릭교회와 정교회가 서로를 파문하고 갈라진 이래 양교회는 오랫동안 대립과 반목의 역사를 낳았다.

 

그 이후 정교회의 중심인 동로마제국은 이슬람제국의 계속된 침략으로 가톨릭교회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서 가톨릭교회는 도움을 요청한 정교회와 협력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런 노력이 확대되어 마침내 제2차 리옹공의회(1274년)에서 양교회 대표들이 재통합을 선언하였지만, 실제로는 문서상의 통합에 그치고 말았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후 동로마제국에 대한 오스만터키의 계속된 침공으로 동로마제국은 다시 가톨릭교회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가톨릭교회와 정교회가 다시 협력하면서 양교회의 일치가 다시 모색되어 플로렌스공의회(1439-1445)때 양교회의 통합을 다시 선언하였지만 역시 문서상의 통합에 그치고 말았다.

 

그 후 500여년 이상 양교회는 각자 자기의 길을 가게 되었다.

 

 

2) 가톨릭과 개신교

 

1521년, 독일의 마르틴 루터신부는 가톨릭을 떠나 루터교를 세웠다.

 

1533년, 영국의 헨리8세도 성공회를 세웠고, 성공회는 침례교와 감리교로 분열되었다.

 

1536년, 스위스의 요한 칼빈도 장로교를 세웠다.

 

이후 개신교는 미국에서 여호와의 증인, 안식일교, 몰몬교 등 많은 종파로, 한국에서도 통일교, 신앙촌, 영생교, JMS 등 많은 종파로 분열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랫동안 가톨릭과 개신교는 서로를 적대시하면서 자기 길을 가게 되었다.

 

 

3. 교회일치운동

 

 

1800년대에 들어오면서 일치에 대한 각성이 개신교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한 지역의 선교를 놓고 개신교 종파들 사이에 서로 마찰이 생기면서 먼저 개신교 종파들 사이에 일치가 필요하다는 각성이 생겨났다. 그래서 종파를 초월한 연합회들이 결성되기 시작하였다.

 

가톨릭교회 내에서 일치운동의 시발점은 1850년대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일어난 일치운동이었다. 옥스퍼드 대학 일치운동 선구자들의 목표는 가톨릭과 성공회의 재결합에 있었다. 하지만 교황청은 이러한 일치운동을 극히 부정적으로 생각했고, 끝내는 1865년 옥스포드 운동의 금지를 선언했다.

 

 

1900년대에 개신교 측에서 일치운동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곳곳에서 연구소가 설립되었고 집회와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1910년, 영국 에든버러에서 개신교교파들은 선교지에서 서로 종파끼리 대립하는 현실을 반성하고 서로 협력하여 세계선교에 노력하자고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세계교회협의회'를 결성하고 그 본부를 제네바에 두었다.

 

이 시기에 교황청은 가톨릭신학자와 신자들로 하여금 개신교의 일치운동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일체 금지시켰다. 그것은 개신교의 교회성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고, 가톨릭교회가 유일한 참된 교회라는 확신에 저촉되기 때문이었다.

 

 

한편 가톨릭교회는 개신교에 대해서는 극히 부정적이면서도 정교회에 대해서는 비교적 호의적이었는데, 특히 교황 비오11세는 정교회연구소를 설립하였다.

 

프랑스의 꾸뛰리에 신부는 1936년에 매년 1월 18일부터 25일까지를 교회 일치를 위한 기도 주간으로 제안하여 가톨릭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교계로 확산되게 되었다.

 

 

이 시기 교회일치에 대한 교황청의 경직된 사고에 정면으로 대항했던 학자가 프랑스의 도미니꼬수도회 수도자였던 이브 콩가르신부(1904-1998)였다. 1937년, 그는 「가톨릭적 일치운동의 원칙」이라는 저작을 출판하여 신학계를 놀라게 하였는데, 당시 공식적으로 금지된 영역이었던 그리스도교 일치문제를 신학적으로 분석해서, 일치문제에 대한 균형 있는 시각을 정리하였다. 콩가르신부는 스승이었던 셔뉘신부와 함께 프랑스 솔솨르(Saulchoir) 수도원을 중심으로 일치운동을 발전시켰다.

 

 

4.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그 이후

 

 

교회의 일치운동은 교황 요한23세(1958-1963)에 의해 다시 강력하게 부활하였다.

 

1959년, 교황 요한23세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하면서 공의회 목표를 첫째, '가톨릭교회의 쇄신', 둘째,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로 할 것이라고 천명했을 때, 전체 그리스도교계의 놀라움은 컸다.

 

공의회는 교회일치를 위해서 서로 왜곡되었고 오해되었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서로 사죄하고 용서를 하는 정신을 토대로 서로의 차이점이나 약점을 찾기보다는 서로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에 주목하고, 서로 협력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정교회와 개신교를 '갈라진 형제들', '갈라진 교회들'이라고 부른다. 공의회문헌들은 가톨릭교회와 갈라진 형제들 사이에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 삼위일체 하느님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또 예수님의 가르침인 사랑, 같은 성경, 세례와 성찬을 비롯한 성사와 공동체의 예배, 이러한 신앙을 바탕으로 한 그리스도교 윤리 등등이 교파를 초월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공통점들이다. 역사를 통해 벌어진 서로의 차이점과 생활양식은 공동연구와 이해로 극복해야 할 것이다.

 

 

1) 가톨릭교회와 정교회

 

가톨릭교회는 먼저 정교회와의 화해에 노력해 왔다.

 

1964년, 예루살렘에서 교황 바오로6세와 그리스정교회의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가 역사적 만남을 가짐으로써, 양교회는 묵은 감정의 앙금을 털고 화해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1965년 12월 7일,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종료에 맞추어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과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좌 대성당에서 장엄한 의식을 통해, 1054년의 상호 파문을 폐기하였다.

 

그 이후 양교회 수장들의 만남이 계속되었고 화해와 협력이 다양하게 실현되고 있다.

 

2) 가톨릭교회와 루터교회

 

가톨릭과 루터교회 사이에서도 1967년부터 신학적인 대화를 계속한 결과 1999년 10월 30일, 독일 아욱스부륵에서 마침내 가톨릭측 대표인 에드워드 E.캐시디 추기경과 루터교회 대표인 루터교 세계연맹 크리스찬 크라우저 감독이 '인간구원에 있어서 양교회의 신학과 신앙에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선언하였다. :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신앙으로 구원될 수 있다. 인간의 선행도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가능한 것이다...'

 

 

선배들의 잘못으로 인한 분열의 혹독한 폐해를 후배들이 힘겹게 바로잡고 있다.

 

갈라진 교회들 서로의 노력에 힘입어 교회일치 운동은 상당한 진전을 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전은 사실상 그동안의 반목과 감정적 대립,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적인 백안시로부터 이제 겨우 상호존중의 시각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여전히 개신교의 복잡한 분열상태는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개신교 교파에 따라 더러는 다른 교회에 대해 아직도 지극히 폐쇄적인 굴레 속에 머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직도 가톨릭교회를 이단으로 보거나 원수로 생각하는 교파도 있다.

 

또한 가톨릭교회의 구조에 익숙해진 가톨릭신자들도 '로마교황을 중심으로 한 갈라진 교회들의 흡수통일'이 교회일치의 궁극적 목표로 생각할 수 있다. 교회일치라는 것이 갈라져 나간 정교회와 개신교가 가톨릭교회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는 것이라는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또 일부 개신교신학자들은 교회일치 방식에 대해 가톨릭과 정교회, 개신교가 서로 연방제식으로 자율적이면서도 느슨한 형태의 일치를 주장하기도 한다. 교파의 고유한 점은 인정하면서 느슨하게 연합체를 이루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교회일치에 대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교회일치에 대해서도 서로 생각이 다르고, 일치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서로 생각이 다른 것이 현실이다.

 

다른 교회에 대한 태도가 이제 상호존중으로 변화된 지금부터가 사실상 더욱 어렵다고 하겠다. 우리는 이제 본격적인 교회일치의 과제를 안고 21세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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