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강 교회와 성령

2011. 5. 22. 오전 6: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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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강 교회와 성령  

1. 교회를 일으키신 성령

 

예수부활은 제자들의 절망을 한없는 기쁨으로 바꾸어 놓았다. 제자들은 스승 예수님을 뵙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요한 20, 21-22)

 

사도행전 2장은 제자들이 불혀 모양으로 내려오신 성령을 받았다고 전하고 있다.

 

제자들은 성령을 체험하였다. 성령은 제자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절망과 두려움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제자들이 이제 일어서서 문을 박차고 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죽음이 그들의 발길을 가로막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제자들은 확신에 차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었고 죽기까지 오직 복음을 선포하는 길을 갔던 것이다.

 

성령께서 하신 일을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교회의 형성

 

성령을 체험한 제자들의 변화된 삶은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시켰다. 성령을 체험한 제자들이 첫 번째로 한 일은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었다.

 

2) 교회의 성화

 

성령은 교회를 형성시켰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교회를 성화시키셨다. 사람들은 성령의 '선물(Charisma)'을 받고 성화되었다.

 

 

 

2. 초기교회의 두 가지 직무 : 교계직무와 은사직무

 

초대교회신자들은 성령을 입고 평화롭게 살았다.

 

성령을 입고 살았던 초대교회 신앙인들은 두 부류가 있었다.

 

첫째, 사도들과 사도들이 뽑은 세운 교회의 책임자들이다. 감독들과 원로들, 그리고 봉사자들로 이들이 바로 주교, 사제, 부제들이다. 이들의 직무를 교계직무라고 한다.

 

둘째, 일반 신자들이다. 일반 신자들도 성령을 입고 힘차게 살았다. 이들의 활동을 은사직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교회 내에는 사도들로부터 비롯된 교계직무 외에도 성령의 은사에 의한 다양한 은사직무를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점차 은사직무가 교계직무로 흡수되고 제도화되었다. (1티모 4, 14; 2티모 1, 6)

 

또한 성령은사를 입고 힘차게 활동하던 사람들 중에 일부는 점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특히 방언이나 치유에 집착함으로써 광신적이게 되었다. 이들은 결국 가톨릭교회를 벗어나 소멸되거나 이단으로 흡수되어 가톨릭교회 내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3. 초대교회 성령운동의 문제점

 

이렇게 초대교회 시기에 활발했던 성령운동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게 되었는데 그 원인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첫째, 우월의식 : 성령은사를 체험한 사람들이 우월의식과 영적인 자만심을 갖게 되고, 신자로서 엘리트의식을 갖게 되었다.

 

둘째, 성서자유해석 : 성서를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또한 영적 자만함에 젖어들곤 하였다.

 

셋째, 감정주의 : 은사는 인간의 감정적 측면을 일깨워 줌으로써 삶에 커다란 활력과 용기를 불러일으켰지만, 개인의 과거 상처를 지나치게 부각시키고, 과도한 감정표현은 오히려 신앙의 혼란을 초래하였다.

 

넷째, 방언집착 : 방언이 마치 은사의 척도인 것처럼 방언에 집착하게 되었다.

 

이미 사도시대에 사도들도, 교회의 책임자도 무시하는 지나친 성령운동을 하는 사람들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주관적인 신앙은 예나 지금이나 문제다.

 

 

 

4. 성령운동에 대한 사도 바울로의 평가

 

 

 

바울로는 당시 가장 골치거리던 코린토교회에 편지를 보내 여러 문제를 지적한다. : 혼인과 독신문제(7, 1-24), 미혼자들문제(7, 25-28),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문제(8장), 성령운동과 은사문제(12, 14장),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문제(16, 1-4) 등.

 

당시 성령이 활발하던 시기였고, 여러 종류의 성령의 은사가 있었다. 그 가운데 교회공동체에 유익한 은사도 많았지만, 그 가운데는 교회공동체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은사도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였다.

 

'방언'이라고 하고, '성령기도' 또는 '심령기도'라고도 한다.

 

이 방언으로 인해 코린토교회 내에서는 분열이 생겼다.

 

방언에 능한 교우들은 우쭐대며 방언을 못하는 교우들을 깔보았고, 방언을 못하는 교우들은 열등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코린토 교우들은 사도 바울로에게 방언은사 문제에 관해 질문하기에 이르렀고 여기에 바울로가 대답하고 있다.

 

바울로는 방언을 성령의 은사로 간주했지만 은사들 중에서 최하급 은사로 평가했다. 바울로는 은사목록에서 방언은사와 방언해석은사를 항상 맨 끝에 열거했다. (12, 10. 28) 더욱이 14장에서는 방언은사를 예언은사와 대조시켜 설명함으로써 방언은사의 가치를 약화시켰다.

 

 

 

오늘날도 은사문제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세례 때, 성체를 통해, 견진성사 때, 또 기도할 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양한 성령의 은사를 받는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은사를 받았음에도 마치 일부사람들만 받는 것처럼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또 다양한 은사들 중에서도 집중적으로 방언의 은사와 치유의 은사만을 받으려고 한다. 이런 은사를 받은 사람들 주위에는 예외 없이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그러다보니 폐쇄적인 집단화의 경향을 보인다. 고린토교회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바울로는 모든 은사 중에 사랑을 가장 큰 은사로 확신했다.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내가 이제 여러분에게 더욱 뛰어난 길을 보여 주겠습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12, 31-13, 13)

 

 

 

5. 오늘날 성령운동과 문제점

 

 

 

초대교회 특히 코린토교회에 성행한 방언현상과 성령운동은 1800여 년 동안 사라졌다.

 

성령운동은 20세기 초에 먼저 미국 개신교에서 다시 시작되어 크게 확산되었다.

 

가톨릭의 성령운동은 1966년 미국 듀케인대학의 평신도 신학교수들과 젊은이들이 새로운 성령강림에 대한 동경을 품고 성경을 연구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1967년에 성령의 은사들을 체험하였고, 점차 대학과 본당으로 성령운동이 전파되었는데, 1970년대에는 한국에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역기능도 적지 않다. 균형을 잃은 신앙의 폐해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성령운동지도자들의 책임과 올바른 인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초대교회 활발했다가 갑자기 사라져간 성령운동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되겠다.

 

 

 

오늘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말 못할 어려움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소외되어 극심한 외로움과 무력감으로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또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다. 고통을 겪는 신자들은 대개 심리적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는다. 흔히 정신병적인 증세에 시달리기도 하고 정상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다. 이들은 교회의 제도화된 틀에서 해법을 찾기가 어렵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고통의 치유에 매달리게 되고, 맹목적으로 고통의 치유와 관련된 단체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간절히 교회에서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사목자들은 따뜻한 배려가 이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성령기도회에서 활동하는 사제들과 봉사자들은 고통을 치유한다는 명분으로 무분별하고 무절제한 신앙행위를 조장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자기의 주관적인 신앙체험은 반드시 교도권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원칙적으로 어떤 신심운동이 교구에서 활동하려면 교구장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

 

교구장의 인준을 받은 교구의 모든 신심운동단체는 그 활동상황을 구체적으로 교구에 보고하고 지도를 받아야 한다. 보통은 교구의 지도신부를 통해 정기적으로 회칙과 임원선임, 재정, 활동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지도를 받는다.

 

마찬가지로 어떤 신심운동이 본당에서 활동하려면 본당신부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

 

본당신부의 인준을 받은 본당의 모든 신심운동단체는 그 활동상황을 구체적으로 본당신부에게 보고하고 지도를 받아야 한다. 보통은 본당신부를 통해 정기적으로 회칙과 임원선임, 재정, 활동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지도를 받는다.

 

 

 

6. 가톨릭교회의 교도권

 

 

 

예수님께서 가톨릭교회를 세우시고 베드로에게 교회를 운영하는 권한을 주셨다. 이것이 교도권이다. 교도권은 하느님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치며 유권적으로 최종적인 판단을 함으로써 가톨릭신앙을 보존하고 교회의 일치를 유지한다. 이 교도권이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에게 이어져 행사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도중심의 교회를 세우신 것은 너도나도 자기의 주관적인 신앙에 따라 교회가 갈라지는 것을 막기 위한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는 것이다.

 

특별히 '사적계시'나 '신비적 현상'을 체험하는 사람들은 겸허한 태도와 교도권에 순명하는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교도권에 순명하지 않고 교회에 분란을 일으키는 것보다, 사적계시나 신비적 현상이 없는 것이 훨씬 낫다. 교도권에 순명치 않는 사적계시나 신비적 현상은 오히려 교회에 해를 끼치는 것이고, 교회를 갈라놓는 것이고, 신흥종파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맡기시고 그 후계자들인 주교들을 통해 이어지는 가톨릭교회를 부정하는 것이고, 결국에는 예수님을 부정하는 것이다. 자기의 주관적인 신앙체험을 앞세워 교회가 갈라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에 예수님께서는 사도들 위에 교회를 세우신 것이고, 사도들을 주님의 대리자로 세우신 것이다.

 

자신의 신앙체험을 앞세워 교도권을 거부하는 것은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맡겨주신 가톨릭교회를 거역하는 것이고, 결국은 주님을 거역하는 것이다. 특별히 사목자들은 신자들이 올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지혜롭고 현명하게 처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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