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강 교회와 성사

2011. 5. 22. 오전 6:44:05

글자
 
 
전광진 신부의 교회 이야기

 

제40강 교회와 성사 

 

성사란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을 말한다.

 

그냥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이 특별한 예식을 통해서 만나는 것이다.

 

사람은 한평생을 살면서 특별한 시점에 하느님과 특별한 방법으로 만나고 축복을 얻는다. 교회는 그러한 만남을 성사로 이름을 붙이고 일생동안 7번을 구별해 놓았다.

 

먼저 사람이 태어나면 세례를 통해 하느님을 만난다.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초등학생이 되면 첫영성체를 통해 하느님과 만난다. 그리고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 앞에서 죄를 용서받는다. 철이 드는 나이인 중학생이 되면 견진을 통해 하느님을 만난다.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릴 때가 되면 혼인성사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또 사제가 되려는 사람은 신품성사를 통해 하느님을 만난다. 그리고 마침내 병중에 있을 때 병자성사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세상을 마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개신교는 세례만 인정한다.

 

마르틴 루터는 신부였음에도 나머지 성사들을 형식주의라고 모두 버렸다.

 

 

1. 세례성사

 

세례성사는 천주교에 입교하는 기본 성사다.

 

우리는 모두 세례를 받고 새 이름을 받는다. 우리도 세례를 받고 세례명을 받았다.

 

 

세례는 한번만 받는다. 자녀가 태어나면 부모는 빠른 시일 안에 세례를 받게 해야 한다. 어릴 때 신앙이 평생 간다.

 

세례성사의 집전자는 성직자다. 위급할 때는 수녀나 신자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다.

 

죽을 위험이 있는 긴급한 경우에는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세례를 줍니다.'하고 말하면서 머리에 물을 붓기만 하면 된다. 이것을 대세라고 한다. 대세를 주었을 때는 반드시 사무실에 알려야 한다.

 

개신교신자가 천주교로 개종할 때 세례를 다시 받아야 하나 : 유럽에서는 보충예식만 하면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례의 유효성이 의심스럽기 때문에 다시 받아야 한다.

 

 

천주교에서 세례 못 받으면 전부다 지옥가나. 옛날에는 천주교에서 세례 못받으면 전부다 지옥간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천주교신자는 아니지만 양심대로 착하고 바르게 살다가 죽으면 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 구태여 세례받을 필요가 있나고 묻는 사람이 있다. 바르게 살아도 천당에 갈 수 있다면 굳이 세례받을 필요가 와 있냐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시켰기 때문이다. 천주교는 사람이 구원받기위한 가장 확실한 길이다. 구원의 정도이기에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서로 한 몸이 되어야 한다. 한 몸 안에서 손과 발이 서로 싸우고 때리고 하면 어떻게 되겠나. 우리는 모두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사람들, 주님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형제자매들이다.

 

 

2. 견진성사

 

 

세례 받은 신자는 모두 견진성사를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중학생이 되면 견진성사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한다.

 

견진성사는 주교가 집전한다. 사제들에게 견진성사를 집전하도록 위임할 수 있다.

 

견진성사의 의미는 두 가지다.

 

첫째, 성령을 받는 것이다. 성령의 선물을 카리스마라고 한다. 바오로사도는 성령의 선물을 9가지로 말하고 있다. (갈라 5, 22) : 사랑과 기쁨, 평화와 인내, 호의와 선의, 성실과 온유, 절제.

 

둘째, 신앙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신앙은 우리 인생에 큰 힘이 된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다보면 어려움을 피해갈 수는 없다. 어려움을 겪을 때 신앙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이렇게 신앙이 우리 인생에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이웃에게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겠다.

 

 

우리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로 성령의 선물을 실천하면서 살아야겠다. : 사랑과 기쁨, 서로 사랑하고 서로 기뻐하는 것, 평화와 인내, 안싸우고 평화롭게 지내고 참을 줄 아는 것, 호의와 선의, 친절하고 남에게 좋은 일을 베풀 줄 아는 것, 성실과 온유, 진실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는 것, 절제, 흥청망청하지 않고 아끼고 검소하게 사는 것. 이런 것을 내 생활에서 증거 해야겠다.

 

 

3. 성체성사

 

 

성체성사는 4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기념이다. 성체는 예수님 구원활동의 핵심인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찬미와 감사의 제사다. 이것을 기념하는 제사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 죽음과 부활에 깊이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변화다. 성체 안에 예수께서 실제로 현존하신다.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가 됨으로써 죄인인 우리가 변화되는 것이다.

 

셋째, 청원이다. 성체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주님께 호소한다. 우리의 모든 것, 우리의 삶, 온갖 어려움이나 고통, 용서와 자비를 청한다.

 

넷째, 감사다. 성체성사는 하느님께 대한 인간이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성체에 대한 자세

 

우리는 성체 안에 계신 예수께 합당한 공경을 드려야 한다. 보통 무릎을 꿇거나 깊이 몸을 숙여 절함으로써 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 우리의 신앙을 표현한다.

 

 

4. 고해성사

 

 

고해성사는 죄를 지었을 때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는 회개가 근본이다.

 

고해성사는 다음 다섯 가지 순서대로 한다.

 

첫째, '성찰'이다. 고해성사를 보기 전에 먼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하나하나 따져보아야 한다.

 

둘째, '통회'다. 나의 이기적인 마음에서 나온 생각과 말과 행동들 때문에 주님과 이웃에게 상처를 주었다는데 대한 뉘우침이다.

 

셋째, '고백'이다. 자기가 생각하고 통회한 죄를 사제 앞에 간단하고 분명하게 말한다.

 

넷째, '사제의 보속과 사죄'다. 보속을 잘 못 들었을 때는 다시 묻는다.

 

다섯째, '실천'이다. 신자는 보속을 반드시 실천해야한다. 보속을 잊어버렸을 때는 내가 하느님 앞에 적당한 기도나 선행을 대신 해도 괜찮다.

 

 

5. 혼인성사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는 혼인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부부애.

 

둘째, 자녀를 낳고 잘 교육하는 것이다.

 

가톨릭신자는 원칙적으로 가톨릭신자와 혼인해야한다. 가톨릭신자와 비신자간에 혼인은 교회의 허락을 받아서 혼인 할 수 있다. 관면혼이라고 한다.

 

혼인은 성당에서 혼인성사를 통해서 맺어진다. 예식장에서 하는 혼인은 사회풍습으로 하는 것이지 천주교혼인이 아니다. 성당에서 혼인하지 않고, 예식장에서만 혼인하면 성사생활을 할 수 없다. 예식장에서 꼭 해야 할 경우에는 먼저 성당에서 혼인예식을 하고, 나중에 예식장에서 하면 된다.

 

성당에서 혼인하지 않고 예식장에서 혼인하고 사는 혼인조당 중에 있는 사람들은 고해성사를 보고 성당에서 혼인예식을 하면 조당이 풀린다.

 

요즘, 이혼이 문제다.

 

신자는 원칙적으로 이혼하면 안된다. 불가피하게 이혼했을 때는 신자생활에 아무런 문제없다. 성사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재혼하면 성사생활을 할 수가 없다. 이혼이 늘어나고, 재혼이 늘어나는 요즈음, 재혼한 사람들에게 성사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가 늘고 있다.

 

재혼한 사람들은 교구청 법원에 가서 지난번 이혼을 풀고, 다시 혼인식을 하면 성사생활을 할 수 있다. 다행히 요즈음은 가능하면 조당을 풀어주는 추세에 있다. 우리주변에도 재혼으로 성사생활을 못하는 사람들에게 잘 인도할 필요가 있겠다.

 

부부가 도저히 같이 살기 어려울 때, 교회는 부부가 별거하도록 권고한다. 한번 맺은 약속이 갈라지지 않고 끝까지 잘 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회다.

 

 

6. 신품성사

 

 

초대교회는 주교-신부-부제라는 세 단계의 성직자 신분으로 형성되었다.

 

주교는 사도들의 후계자로 교회의 직접적인 책임자다. 신부와 부제는 주교의 협력자다.

 

신부는 본당사목을 하는 '사목신부'와 학교, 병원, 언론,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일하는 '특수사목신부'가 있다.

 

신품성사는 남자만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초대교회 때부터의 전통이다.

 

주교, 신부, 부제는 독신서약을 하고, 독신생활을 해야 한다.

 

 

7. 병자성사

 

 

병자성사의 목적은 중병이나 노쇠에 따르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자에게 특별한 힘과 은총을 받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병은 나을 수도 있다.

 

신자가 병이나 노쇠로 죽을 위험이 있으면 병자성사를 받을 때가 된 것이다. 본인이나 가족은 본당신부에게 병자성사를 해 달라고 청해야 한다.

 

중병이 들어서 병자성사를 받았는데, 병이 다 나아서 살다가 또 중병이 걸리면 다시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다. 또 큰 수술을 받기 전에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언젠가는 이승을 마감하고, 하느님께로 돌아간다. 어떤 사람은 좀 더 빨리, 어떤 사람은 좀더 늦게일 뿐이지, 모든 사람이 똑 같다. 우리는 이 세상 마지막을 병자성사로 잘 마무리해야겠다. 하느님께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깨끗이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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