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에서 천주교에 대해 오해하는 첫 번째가 아마도 '개신교는 예수교 천주교는 마리아교'라는 것이다.
예수를 그리스도(구세주)로 믿는 종교를 그리스도교(基督敎)라고 한다. 그리스도교에는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개신교가 있다. 가톨릭은 예수님을 그리스도, 구세주로 믿는 종교다. 마리아는 그리스도(구세주)가 아니다.
성모마리아에 대해 바르게 알고 바르게 공경해야 하겠다.
1. 마리아의 일생
가톨릭교회는 마리아를 '모든 인간 가운데 가장 훌륭한 인간'으로 존경하고 있다.
마리아는 나자렛이라는 마을에서 아버지 요아킴과 어머니 안나 사이에서 태어났고, 곧은 성품과 총명함을 지닌 시골 처녀로 자라났다.
어느 날 천사 가브리엘이 처녀 마리아를 찾아와서 이렇게 인사하였다. '은총을 가득히 받은 마리아야,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마리아는 몹시 당황하였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천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두려워 하지마라 마리아. 이제 너는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하느님의 아들로 세상의 구세주가 될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마리아는 '저는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성령께서 너에게 임하실 것이다. 하느님께서 이 일을 하실 것이다.' 천사의 말에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주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천사는 마리아를 떠나갔고, 마리아는 성령의 힘으로 예수를 잉태하게 되었다.
몇 달 뒤 마리아는 사촌 엘리사벳을 찾아갔다. 이때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고 마리아에게 이렇게 인사하였다. '세상 모든 여인들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삶은 복된 삶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마리아의 삶은 영광된 삶이 아니라 고통과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마리아의 일생은 한국의 보통 어머니들처럼 말할 수없는 희생과 헌신, 인내와 끈기 그 자체였다. 인간적으로도 마리아는 자식 예수로부터 따뜻한 효성을 별로 받아보지 못했다.
인간적으로 마리아는 잉태에서부터 출산, 양육, 자식의 죽음, 부활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남다른 고통 속에 살았다. 참으로 마리아는 보통의 어머니들보다도 훨씬 못하게 일생을 눈물로 살다간 가련한 여인이었다. 한평생 하느님만을 따라 사신 길, 그것은 영광의 길이 아니라 고통과 시련의 길이었다.
2. 마리아공경
1) 마리아공경 역사
마리아가 세상을 떠난 후 사도들의 노력으로 곳곳에 교회가 세워졌다. 초창기교회는 신자들의 열성은 강했지만 아직 모든 것이 미비했다. 점차 가톨릭교회가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 초대신자들은 예수님께 초점을 두면서도 마리아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마리아는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과 모성을 보여주신 분으로 생각되었고, 세상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야한다는 강한 신념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해서 신자들은 마리아를 모든 신자들이 본받아야할 모범으로 존경을 드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언제부터인가 마리아를 어머니로 부르게 되었고, 교회의 어머니, 예수의 어머니, 주님의 어머니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룩한 어머니라는 뜻으로 '성모마리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천주교의 가장 중요한 기도는 '주님의 기도'와 '사도신경'이다.
이와 함께 예수님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마리아에게 우리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기도문이 입에서 입으로 바쳐지게 되었다. 성모마리아에게 드리는 기도는 천사 가브리엘과 사촌 엘리사벳의 인사말로 구성되었다. 이것이 '성모송'이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천사 가브리엘)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엘리사벳)
천주의 성모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또 로마박해시절, 신앙 때문에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이 순교할 때 머리에 장미꽃으로 된 화관을 만들어 썼는데, 살아남은 신자들이 순교자들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장미꽃을 한송이씩 거둘 때마다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반복해서 바쳤는데 이 기도가 '묵주기도'가 되었다. 묵주기도는 장미꽃다발을 드린다는 뜻으로 장미다발을 뜻하는 라틴말 로사리움으로 불린다.
그런데 사람들은 점점 예수님보다도 마리아께 매달리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마리아가 하느님처럼 공경 받게 되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점점 더 무분별하고 과장되게 마리아를 숭배하였다. 성모마리아가 인간인지 하느님이신지를 구별하지 않고 그저 열심히 마리아께 기도하고 매달리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 마리아가 하느님과 비슷한 분으로까지 생각되면서 가톨릭은 마리아교라고 오해를 받게 되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청하는 것보다 마리아께 청하면 더 쉽게 구원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마침내 마리아를 여신으로 숭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나아가 마리아를 예수님과 함께 '공동구세주'라고 믿기까지 하였다.
개신교를 시작했던 마르틴루터 신부와 같은 사람들은 마리아에 대한 잘못된 신심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올바른 신심을 가지도록 가르쳤다. 루터신부는 죽기까지 마리아를 공경하였고 방에 성모상을 모시고 마리아께 기도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개신교는 마리아공경을 하지 않게 되었다. 유럽개신교는 그렇지 않지만, 한국개신교는 더욱 마리아를 무시하고, 오히려 공격적이고 적대적이기까지 한 실정이다.
가톨릭교회의 마리아열풍은 교황 비오12세의 재위기간(1939-1958)동안 최고조에 달했다. 다행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이후로 교회는 지나친 마리아공경을 반성하고, 올바른 마리아공경을 가르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제들과 신자들의 무분별하고 지나친 마리아공경과 신심은 오히려 성모마리아를 왜곡시키고 있고, 성모마리아발현과 관련된 잘못된 믿음은 건전한 가톨릭신앙을 해치고 있는 실정이다.
2) 성모발현
1800년대에 들어오면서 성모님이 발현하셔서 계시를 주신다는 보고가 잇달아 교황청에 접수되었고 성모마리아신심을 더욱 확장시켰다. 지금까지 성모발현에 대한 수많은 보고가 있었지만 교회 교도권이 그 진실성을 인정한 발현은 다음과 같은 10번이었다.
멕시코의 과달루페(Guadalupe, 1531년), 프랑스 파리의 뤼 뒤 박(Lu de BAC, 1830년), 프랑스의 라 살레트(La Sallette, 1846년), 프랑스의 루르드(Lourdes,1858년), 프랑스의 퐁맹(Ponmain, 1871년), 아일랜드의 노크(Knock, 1879년), 포르투갈의 파티마(Fatima, 1917년), 벨기에의 보랭(Beauraing, 1932년), 벨기에의 바뇌(Banneux, 1933년), 암스테르담(Amsterdam, 1945).
미국의 베이사이드나 나주의 성모발현은 공식적으로 부인되었고, 메주고리예의 성모발현은 아직 조사 중에 있어서 최종결정이 유보된 상태다.
** 나주의 성모동산 사건일지
1985년, 광주대교구 나주본당 윤율리아 소유의 성모상에서 이적현상이 보고됨
1994년, 광주대교구장 조사위원회 구성(김재영신부외 30명) 4년간 조사
1998년, 광주대교구장 교지: 나주사건은 진실성을 인정할 수 없음
하지만 윤율리아 측은 교구장과 교지를 거부하고 모임을 계속하게 됨
2001년, 후임 광주대교구장 확인교지 발표
2007년 11월 13일, MBC PD수첩에서 나주 성모동산 방영
2008년 1월 21일, 나주공동체에 대한 광주대교구장 파문교지 반포
3) 사적계시와 교도권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시는 것을 '계시'라고 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여 응답하는 것을 '신앙'이라고 한다.
(1) 공적계시와 사적계시
공적계시 : 성전과 성경에 드러난 계시
사적계시 : 개인이나 단체에게 사적인 방법으로 전해지는 계시
우리의 구원은 공적계시로 충분하지만 우리의 무디어진 마음을 일깨우기 위해 사적계시가 주어지기도 한다. 성모발현은 사적계시인데, 성모발현을 모르더라도 구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2) 사적계시의 판단과 교도권
성모발현과 사적계시를 누가 진실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나? 발현을 목격한 사람이 아니다. 자기가 발현을 목격했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가톨릭신앙은 공적인 신앙이기에 공적인 기관에서 그것을 확인하고 판단해주어야 한다. 아무도 자기에게 스스로 세례를 줄 수 없고, 아무도 자기에게 스스로 사제품을 줄 수 없다. 공적인 기관에서 세례를 주고 사제로 서품하는 것이 공적인 신앙이다.
가톨릭신앙은 개인의 주관적인 확신이 아니라 사도들로부터 이어지는 공적인 신앙이다. 예수께서 가톨릭교회를 세우시면서 신앙에 관한 모든 결정과 판단을 사도 베드로에게 맡기셨다. 사도들은 공적계시를 보존하면서 해석하고 가르쳤다. 그리고 교회의 신앙에 관한 모든 것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판단했다. 이것을 '교도권'이라고 한다. 그 후로 사도들의 후계자들인 주교들이 계속해서 교도권을 수행하고 있다. 주교들은 공적계시를 해석하거나 사적계시를 진실한 것으로 결정하고 판단한다. 주교들의 최고 책임자가 교황이니 최종 판단의 주체는 교황이다. 따라서 사적계시는 반드시 가톨릭교회의 결정과 판단을 따라야 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개신교의 신흥종파처럼 되어 혼란과 폐단을 줄 수 있다.
(3) 사적계시 판단의 기준
첫째, 교리적 기준이다. 사적계시의 내용이 교회의 가르침에 부합해야 한다.
둘째, 심리적 기준이다. 사적계시를 체험한 사람의 심신이 건강해야 한다. 균형을 갖춘 상식을 가지고 있는지, 병적 소인은 없는지 면밀하게 관찰되어야 한다.
셋째, 영적 결실의 효과다. 사적계시의 결과로 영적인 결실들이 드러나야 한다.
3. 마리아에 대한 올바른 이해
1) 잘못된 성모신심
첫째, 성모마리아를 하느님으로 공경하는 신심이다.
둘째, 성모마리아를 구세주로 믿는 신심이다.
셋째, 교회에서 인정하지 않은 성모마리아 발현과 기적을 믿는 신심이다.
2) 올바른 성모신심
(1) 하느님의 어머니
431년, 에페소공의회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하고 반대자들을 단죄하였다.
(2) 평생 동정녀
553년,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평생 동정녀이신 마리아'를 선포한다.
(3)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
1854년, 교황 비오9세는 교서를 통해 성모 무염시태 교리를 선포했다. : '마리아는 잉태될 때부터 죽기까지 원죄와 모든 죄에 물들지 않고 깨끗한 분이었다.'
(4) 마리아의 승천
1950년, 교황 비오12세는 성모승천교리를 선포했다. : '원죄 없으시고 평생 동정이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지상의 삶을 마치신 다음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 영광으로 들어 올려지셨다.'
(5) 인류를 위한 중개자
1965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마리아를 '구원의 중개자'로 선포했다.
구세주 예수님께서 구원의 유일한 중개자이시지만 마리아는 그 유일한 중개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사실 우리 모두도 넓은 의미로 이웃에게 구원을 중개하는 중개자들이다.
가톨릭교회가 성모마리아를 공경하는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 성모마리아를 공경하는 것이 초점이 아니라 성모마리아를 통하여 구세주 예수님을 공경하는 것이 초점이다.
둘째, 성모마리아를 공경하는 것은 우리도 성모마리아의 모범을 본받고자 하는 것이다. 성모님은 여신이 아니다. 성모님에 관한 성경의 모든 증언은 언제나 예수님이 초점이었다. 예수님이 중심이다. 성모님은 항상 예수님 뒤에 조용히 머물러 있으면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참된 성모님 공경은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