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강 사제독신제도

2011. 5. 22. 오전 6: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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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강 사제독신제도 

가톨릭은 사제들의 독신을 의무로 하고 있다. 정교회는 사제들이 독신을 선택할 수도 있고, 결혼할 수도 있다. 개신교는 목사들이 대부분 결혼한다.

 

 

1. 신약성경과 초대교회

 

 

사제독신제도는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다기보다는, 성과 부부관계를 극도로 부정적으로 보던 구약시대의 관습과 그리스사상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독신제도는 구약의 사제들이 제사 드리기 전날 밤 여자를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는 구약의 '금욕계명'(탈출 19, 15 ; 1사무 21, 5-7 ; 레위 15, 16-17)과, 육신과 성을 극도로 혐오하던 그리스 사상에 그 근거를 가지고 있다.

 

유대교에 있어서 남자들에게 결혼은 엄격한 의무였다.

 

유대교의 사제들도 결혼하였다. 근데 안식일 날(토요일)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당번사제는 예배전날 밤(금요일)에 아내와 잠자리를 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당시 성행위는 불결한 것, 부정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 깨끗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스 종교의 사제들도 결혼하였지만 신에게 제사를 드리기 전날 아내와 잠자리를 피하라는 계명은 엄격한 계명이었다.

 

 

초대교회 때에는 구약 유대교율법과 그리스 종교문화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사제들이 자연스럽게 결혼하였는데, 다만 결혼한 사제들은 미사 드리기 전날 밤에 아내와 잠자리를 금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전통이 되었다.

 

부부간의 성행위는 오직 자녀를 출산하기 위해서만 허용될 수 있는 것이고, 이 경우에도 쾌락을 느끼면 죄가 되는 것으로 가르쳤다. 쾌락을 느끼지 말고 성행위를 하라는 것이다.

 

 

2. 4세기 시기의 변화

 

초대교회 때는 결혼한 사제들이 많았지만 313년 종교자유가 주어지면서 상황이 바뀌게 된다.

 

박해시기에는 신앙을 드러내는 최고의 표현이 '순교'였지만, 박해가 끝나면서 사람들은 순교에 버금가는 최고의 신앙을 모든 욕심을 절제하는 것, 특히 '본능적인 욕구'를 절제하는 것에서 찾게 된다. 그리하여 '금욕'을 순교에 버금가는 신앙의 표현으로 확신하고 너도나도 금욕생활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점점 속세를 떠나 광야나 사막으로 피해가는 은수자들이 독신으로 살게 되었고, 공동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이 독신생활을 하게 되면서, 교구의 사제들도 독신을 택하는 사제들이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

 

4세기 말부터 점차 평일미사가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결혼한 사제들은 이제 매일 밤 아내와 잠자리를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내와 잠자리를 하고 미사를 드리는 사제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에 대해 교회는 갖가지 처벌과 제재를 가했지만 효력이 없었다. 결국 미사 드리기 전날 밤 금욕을 지키는 것을 기필코 실현하고야 말겠다는 교회의 의지가 마침내 독신이라는 최강의 강제수단을 동원하게 된 것이다.

 

 

3. 제2차 라테란공의회의 사제독신제정(1139년)

 

 

1139년, 제2차 라테란공의회는 드디어 사제독신을 의무화하고 있다.

 

1139년 이후로 이제 미혼자만 사제가 될 수 있었다.

 

사제독신의 동기는 '전례상의 금욕계명'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었다.

 

 

4.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확인(1962-1965)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사제독신의 동기로 '전례상의 금욕계명'만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위한 독신'을 추가하고 있다.

 

공의회는 마태 19, 11-12을 원용하여 "하늘나라를 위하여 지키는 동정이나 독신을 통하여 사제는... 갈림 없는 마음으로 더욱 쉽게 주님을 따르며, 더욱 자유롭게 하느님과 사람들을 섬기는 데"에 더 쉽고 더 적합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제생활교령 16)

 

그렇다면 '전례상의 금욕계명'외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독신의 동기로 규정한 '하늘나라를 위한 독신'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가?

 

두 가지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첫째, 사목적 의미다.

 

예컨대 학문이나 예술, 더 의로운 세계를 위한 투쟁에 전적으로 투신하고자 의식적으로 미혼에 머무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신사제로서 교회를 위해 전적으로 투신하기 위해 결혼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정교회나 개신교에서 보듯이 결혼이 하늘나라를 위한 전적인 투신에 장애가 되지 않고 오히려 더 촉진할 수도 있다. 독신이 전적인 투신에 도움이 되는지는 개개인의 성향에 달려 있다. 따라서 하늘나라를 위한 전적인 투신을 위해서는 반드시 모두 독신을 택해야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둘째, 신비적 의미다.

 

바오로는 하느님 사랑과 부부간의 사랑을 경쟁관계로 보고 있다. 아내를 기쁘게 하자면 하느님께 '갈라짐 없는 사랑'을 바치는 일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1코린 7, 32-34)

 

이러한 경쟁관계는 오늘날 신학적으로는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헌장은 하느님사랑과 부부사랑이 대립관계가 아니라고 하고 있다. 하느님사랑과 부부사랑이 함께 중요하다는 것이다.

 

교회헌장은 독신이 '하느님께 대한 갈라짐 없는 완전한 헌신'을 '좀 더 쉽게' 해줄 수 있다고 하고 있다. (42항) : "천상은총의 고귀한 선물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어떤 사람들에게만 허락하신 것으로, 동정이나 독신 생활 안에서 갈리지 않은 마음으로 더욱 수월하게 오직 하느님께만 헌신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하늘나라를 위한 독신'의 의미는 하느님께 대한 헌신을 '더 쉽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더 쉬움'이라는 의미도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혼인 안에서 더 쉬울 수도 있고, 독신 안에서도 더 쉬울 수 있기에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5. 평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독신의 동기를 추가하였지만 '하늘나라를 위한 독신'도 절대화하기에는 문제가 있기에 결국 독신제도의 핵심동기는 여전히 '금욕계명의 준수'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육신의 금욕' 자체가 종교적으로 어떤 가치를 갖는지가 궁금하다.

 

인간의 성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부부사랑과 자녀출산과 같은 긍정적 의미가 있는가하면, 성의 남용이 가져오는 병폐와 같은 부정적 의미도 있다. 오늘날 성이 더욱 다양하게 상품화되고 있다. 각종 잘못된 성문화와 사람들의 탐욕이 우리 시대의 천박한 풍조인 것 같다. 여기에 종교적 독신은 잘못된 성에 대해 비판하고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일깨워줄 수 있다. 이렇게 '독신생활은 잘못된 성문화나 갖가지 형태의 왜곡에 대한 종교적 저항의 표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독신생활이 가지는 긍정적 역할을 나약한 인간인 사제들이 과연 현실 안에서 잘 수행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제들이 독신의 긍정적 의미를 잘 실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독선과 권위에 빠지고 신경질 환자가 되어간다면 독신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지... 독신이라는 이유로 헌신과 봉사보다는 보상심리로 세상에서 대접받고 산다면 독신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지... 하는 것이다.

 

 

6. 독신제 반대 주장

 

 

오늘날 독신제를 폐지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첫째, 독신제의 중압감

 

독신을 지키기 위한 중압감으로 보상심리가 발동하여 사제직을 충실히 하지 못한다면 독신제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 성소의 감소

 

성소의 감소를 막기 위해 독신제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환속의 폐해 방지

 

사제직을 떠나는 환속이 공동체에 많은 손실을 줄 수 있기에 그런 폐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독신제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7. 결론

 

극심한 사제성소의 고갈로 교세가 급속히 줄어드는 유럽에서는 사제가 결혼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독신생활의 목표 : 결혼을 포기하는 것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더 큰 가치를 실현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하느님 나라'라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폭넓은 이웃사랑'을 뜻할 것이다.

 

독신자는 한사람의 남편이나 한사람의 아내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자유로운 마음으로 '만인의 벗'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제 어디서나 자기를 필요로 하는 일에 흔쾌히 투신할 수 있는 것이 독신의 큰 장점이다. 이런 장점을 발휘하여 독신생활을 하는 사제와 수도자들이 '만인의 벗'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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