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9주간 토요일] 회개하지 않으면 (루카 13,1-9)
율법은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면서도 나약한 인간에게 그것을 행할 힘을 주지 못했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보내시어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주심으로써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 수 있게 해 주셨다.(로마서 8,1-11)
형제 여러분, 1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4 이는 육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채워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5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6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7 육의 관심사는 하느님을 적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것은 하느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8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11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시편 24(23),1-2.3-4ㄱㄴ.5-6(◎ 6 참조)
◎ 주님, 이들이 당신 얼굴을 찾는 세대이옵니다.
○ 주님의 것이라네, 온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온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 그분이 물 위에 세우시고, 강 위에 굳히셨네. ◎
○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 ◎
○ 그는 주님께 복을 받으리라. 구원의 하느님께 의로움을 얻으리라. 이들이 야곱이라네. 그분을 찾는 세대, 그분 얼굴을 찾는 세대라네. ◎
예수님께서는 회개를 촉구하신다. 포도밭 주인이 심은 나무가 열매를 맺어야 하듯이, 선물로 구원의 은총을 받은 이들도 올바른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다.(루카 13,1-9)
1 바로 그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3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4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5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6 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7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8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로마서에서 믿음과 올바른 행위의 관계는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인간은 율법의 행업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강조합니다. 여기서 의화와 올바른 삶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지, 오랜 기간 신학에서 많은 토론이 있어 왔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율법이 할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기에,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채워지게 하셨다고 역설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는 율법에서 요구하는 올바른 삶을 살 수 있게 된 셈이지요. 다만 그것이 율법의 힘으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보내시어 우리의 죄를 없애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데에 차이가 있습니다.
분명 그리스도인에게 올바른 삶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올바른 삶은, 의무를 지키려는 노력에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에서 저절로 흘러나와야 합니다. 당신 아드님을 내어 주신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움직여 주실 때, 땅에 뿌리를 박은 나무가 열매를 맺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올바른 삶을 열매로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삶에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알지도,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를 제대로 깨닫지도 못한 것입니다.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압니다(마태 12,33 참조).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2코린 5,14). 성령을 받아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맺을 열매를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열거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22-23).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회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복음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1년 간 더 지켜보겠다고 하시면서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에게 회개할 기회를 다시 주십니다. 다시 주어지는 기회는 은총입니다.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에게는 늘 관대하신 하느님, 그러나 좋은 기회를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엄격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 송영진 모세 신부
10월
27일의 복음 말씀의 주제는 '회개'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학살한 사건을 알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루카 13,2-3)."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라는 말은, 죽은
사람들에게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보다 더 죄가 커서 그렇게 죽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고, 그
사건은 천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라는 말은, 그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아서' 그렇게 죽었다는 뜻도 아니고,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으면 '그런 식으로' 죽게 될 것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이
말은 그 사건과는 상관없이 '하느님의
심판을 받기 전에 서둘러서 회개해야 한다.' 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일 뿐입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실로암 탑에 관한 말씀도 같은 뜻입니다.
빌라도가
사람들을 학살한 일은 '사건'이고, 실로암
탑이 무너져서 사람들이 죽은 일은 '사고'입니다. 그런
사건이나 사고 때문에 죽은 사람들에게는 그
일이 비극이고 불행이긴 하지만 인간
세상에서 늘 일어나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건과 사고가 죄인들에게 내리는 천벌은 아니라고 하시면서, 그렇게
죽은 사람들을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각자
자신이 받게 될 심판을 먼저 생각하고 서둘러서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멸망'은 사는 동안에 겪게 될 불행이 아니라 하느님의
심판 때의 일이라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인들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적도 없고, 죄를
지으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천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신 적도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기간은 회개를 위한 기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부로 남의 불행을 천벌이라고 표현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가
겪고 있는 고통과 불행에 대해서도 자기가
죄를 지어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옳지 않고,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왜 이런 고통을 주시는가?' 라고
하느님을 원망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인간에게 고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고통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마약이나
도박이나 음주를 즐기다가 중독 상태에 빠지는 것도 '벌'이
아니라 회개하라는 '경고'입니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다음에 하느님께서는 카인을 죽이시지 않았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카인을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시기까지 하십니다. 그것은
그에게 충분히 회개하고 보속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카인
자신은 자기가 평생 떠돌며 헤매게 된 것을 지은
죄에 대한 형벌이라고 생각했지만(창세 4,13)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그 내용을 해석하면 그것은
형벌이 아니라 '회개하고 보속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물론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하느님께서
죄인들을 즉시 처벌하시는 내용들이 수없이 나오긴 하는데, 그러나
지금은 구약시대가 아니라 신약시대입니다. 신약시대는
'사랑의 시대'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기다려 주시는 사랑입니다.
살다보면
'하느님께서는 저 나쁜 놈에게 천벌을 내리시지 않고 왜
그냥 내버려 두시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질문을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나쁜 놈에게 천벌을 내려달라고 기도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옳지 않은 기도이고, 기도가 아니라 저주입니다. 그런
저주가 아니라 그 나쁜 놈이 회개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2베드 3,9)." 뒤에 이어지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루카 13,8-9)." 이 구절의 '올해'는 회개할 수 있는 기회, 즉 지금을 뜻하고, '내년'은 심판을 받을 때를 뜻하는데, '올해'와 '내년'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될지......어떤 사람에게는 그 간격이 몇 십 년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겨우 몇 시간, 몇 분, 몇 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13,1-9)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 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시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6ㄴ~9)
루카 복음 13장 6~9절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 말씀이다. 루카 복음 13장 1~5절이 죄를 회개하지 않는 사람에게 오는 멸망에 대한 경고라면, 13장 6~9절은 지금이 하느님께서 인내하시는 때로 곧바로 회개가 이루어져야 함을 교훈하는 비유이다.
보통 구약에서 포도나무(시편80,9~12; 이사5,2)와 함께 무화과나무 (예레24,3; 호세9,10)는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한다. 여기서도 '무화과나무'에 해당하는 '쉬케'(syke; a fig tree)도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지만, 넓게는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할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문맥상 '어떤 사람'에 해당하는 '티스'(tis; a man)는 '포도밭 주인'인 '하느님'을, '열매'는 '회개'를, 그리고 13장 7절의 '포도 재배인'은 '예수님'을 상징한다. 그리고 포도밭에 무화과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포도밭 주인이 무화과나무에 대해 특별한 기대와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심어 놓았다'에 해당하는 '페튀튜메넨'(pephyteumenen; planted)는 '심다'는 뜻의 '퓌튜오'(phyteuo)의 수동태 완료 분사이다.
여기서 동사를 과거에 이미 완료된 동작을 가리키는 완료 시제로 표현한 것은 이 무화과나무가 심어 놓은 후 많은 시간이 지났고, 이제 완전히 자라 충분히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나무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13장 6절의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 보았지만'에 해당하는 '제톤 카르폰 엔 아우테'(zeton karpon en aute; and sought fruit on it)에서 '제톤'(zeton)의 기본형'제테오'(zeteo)는 '집요하게 구하다', '열심히 찾다'는 뜻이고, '카르폰'(karpon)은 '열매'를 말한다.
여기서 '제톤'(zeton)은 '제테오'(zeteo)의 현재 분사형으로서 포도밭 주인이 그 무화과나무로부터 '열매'를 구하기를 계속적으로 해왔다는 것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포도밭 주인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을 무렵부터 계속해서 그 무화과 열매를 기다리며 열심으로 찾았던 것이다.
루카 복음 13장 7절에는 구체적으로 삼년 동안 열매 얻기를 구했다고 말한다.'보게, 내가 삼 년째'에 해당하는 '이두 트리아 에테'(Idu tria ete; Behold three years)에서 '보라'는 뜻의 감탄사 '이두'(Idu)를 문장 서두에 사용하여 '삼 년'(tria ete)을 강조해 주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그 동안 열매 맺기를 기다린 포도밭 주인의 인내를 암시하는데, 바로 지금까지 심판을 유보하시어 회개의 열매를 맺기를 인내하며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상징한다
이 '삼 년'은 하느님께서 회개의 열매를 기다리시며 인내하신 오랜 기간을 상징하지만, 하느님께서 마냥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라 그 기간을 '삼 년'이란 시간으로 한정했다는 점에서 회개할 시간이 무제한을 주어지지 않고 한정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13장 7절에 '잘라 버리게'에 해당하는 '엑콥손'(ekkopson; cut down)이 등장한다. 이 동사의 기본형 '엑콥토'(ekkopto)는 '나무를 잘라내다' 또는 '완전히 제거하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부정(不定) 과거 명령형으로 사용되었는데, 부정과거는 완료적 결과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완전한 제거, 즉 영원한 멸망을 가리킨다.
이제 루카 복음 13장 8절은 비록 포도밭 주인이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잘라 버리라고 명령했음에도 불구하고, 포도 재배인이 끝까지 열매 맺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을 보여 준다.
여기서 포도 재배인은 하느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 나라의 진정한 의로움의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또한 이 구절은 하느님의 심판이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로 말미암아 유보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여기서 포도 재배인의 노력은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는 것'인데, 이것은 별개의 행동이 아니라 무화과나무에 거름을 주기 위한 한 가지 행동을 중복하여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 나라의 의로움의 열매를 맺도록 거름을 주는 것은 말씀을 가르치고, 보호자 성령님을 통해 은총을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로 하느님의 심판이 유보되었는데, 유보된 시간도 거름을 주어 열매를 기다리는 '한 해'라는 한정된 시간이다.
따라서 '거름'에 해당하는 '코프리아'(kopria; dung)로 비유된 예수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바로 이때가 '구원의 시기'이며, 예수님의 말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결국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 밖에 없음을 비유해 주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로마 8,10)
사도 바오로는
죄로 기우는 육의 성향 때문에 괴로워하는 우리에게 걱정하지 말라네요.
우리 몸은 죄 때문에 죽는다해도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느님의 영께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머물기만 하면 우리도 살릴 것이니까요.
그렇습니다.
어쨋든 우리의 육신은 썩어 문드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영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썩어 없어질 육을 살찌우는데는 온갖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정작 중요한 영을 살찌울 노력은 너무도 등한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영을 키워야 영이신 하느님과 더 가까워지고 생명으로 나아갈텐데
육만 더 키우니 어떻게 하느님을 알 수 있고 하느님 나라를 느낄 수 있을까요?
오늘 육을 좀 누르고 영이 자유롭게 살아움직이도록
온갖 욕심을 내려놓고 가을의 정취에 잠시 머물러 보면 어떨까요?
제29주간 토요일 제1독서 (로마8,1-11)
율법이 나쁜 것인가? 율법 자체는 거룩하고 좋은 것이다.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온 것은 율법이 아니라 죄다.율법은 죄를 분명히 드러내는 구실을 할 뿐이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이는 육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채워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8,1-4)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육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안에 사시면,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8,5.8.9ㄱ.10-11)
하느님이 만드신 육 혹은 육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영광과 주님 구원 사업이 계승되는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것도 육을 통해서 하는 것이다. 다만 "육과 영" 중에 주체(Subject)가 어느 것인가? 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세상 사람들은 "영을 가진 육"으로 산다. 육이 주체가 되어 산다.
1세기도 안되어 죽음으로 없어지고 재와 흙이 될 자신의 육, 없어질 자신의 육을 위해 영이 봉사를 한다. 영이 육을 섬기고 있다. 이것은 잘못된 삶이다. 우리 모두는 비물질적 실체로서, 물리적 파괴도 화학적 분해도 안되는 영을 위해 살아야 한다. 육이 영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육을 가진 영", 영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자신이 먹고 살기 위해, 인간답게 살기 위해, 땀흘려 일하고 공부하고 돈을 벌고, 문화와 여가 생활을 즐긴다 하더라도, 그것이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육을 끌고 유지하며 살아 가는 과정도 죄짓지 말아야 하지만, 자신이 번 돈으로,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와 이웃의 공동선을 위해 봉헌하고 나누어야 하고, 육신도 자신의 영혼의 구원과 성화를 위해 기도하고, 묵상하고, 미사하고, 피정하고, 봉사하고, 애덕과 자선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육신 생명안에 영혼 생명이 있으며, 영혼 생명안에 영혼의 핵인 심령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요한 4,24/1테살5,23참조) 심령은 세례와 견진때 받은 성령을 담는 그릇이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느님이시다. 모두가 알다시피,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법을 어기고, 육을 통해 죄와 죽음의 법을 따라 가면, 성령 하느님께서는 우리안에서 떠나 가신다.
오늘 루카 복음 13장 6절에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비유를 잘 보아야 한다. 주인이 왜 포도밭에 포도나무를 심지 않고, 무화과나무를 심었을까? 주인의 포도밭에 여느 포도나무처럼, 너무 흔해 수많은 군중속에 익명으로 자라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그만큼 드러나게 키우고, 돌보고, 정성을 쏟고,특별한 사랑을 쏟아 부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년, 이년, 삼년을 기다려 열매 맺었나? 찾아 살펴 보았지만, 아무 열매도 없었다. 그래서 잘라 버리겠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선민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셔서, 3년을 말씀과 영적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지만, 특히 바리사이, 율법학자, 대제관, 원로들, 스스로 경건하고 구원을 보증 받았다고 하는 자들이 불신을 하고 회개의 열매가 없으니, 한번만 더 기다려 주었다가 정리하시겠다는 말씀이다.
현세적 징벌보다는 종말론적 무서운 영원한 징벌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다.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회개하고 육을 거슬러 살라고, 탄식하시며 간구하시는 성령님을 슬프게 해 드리지 말아야 한다.(로마8,26/에페4,30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