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9주간 금요일] 이 시대징표 (루카 12,54-59)

2015. 10. 23. 오전 6: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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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간 금요일] 이 시대징표  (루카 12,54-59)

 

바오로 사도는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고백한다. 사람은 선을 행하는 것이 옳은 줄 알고 원하면서도 악을 행하고 만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을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해 주신다.(로마서 7,18-25ㄱ)
형제 여러분, 18 내 안에, 곧 내 육 안에 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음을 나는 압니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19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20 그래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면, 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입니다.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을 발견합니다.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23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24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시편 119(118),66.68.76.77.93.94(◎ 68ㄴ 참조)
◎ 주님, 당신 법령을 저에게 가르치소서.
○ 당신의 계명을 제가 믿사오니, 올바른 지혜와 지식을 가르치소서. ◎
○ 당신은 좋으시고 선을 행하시는 분, 당신 법령을 저에게 가르치소서. ◎
○ 당신 종에게 하신 말씀대로, 자애를 베푸시어 저를 위로하소서. ◎
○ 당신 자비 저에게 이르게 하소서. 제가 살리이다. 당신 가르침은 저의 즐거움이옵니다. ◎
○ 당신 규정으로 저를 살리셨기에, 영원토록 그 규정 잊지 않으오리다. ◎
○ 이 몸 당신의 것, 저를 구하소서. 저는 당신 규정을 찾나이다. ◎      

정혜경 기상캐스터의 일기예보 방송사고! ^^ - MBC 뉴스 130228 외

하늘의 징조는 살피면서 시대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시대의 징조를 슬기롭게 알아보라고 말씀하신다. 시대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루카 12,54-59)
그때에 54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55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56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57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58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그러지 않으면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끌고 가, 재판관은 너를 옥리에게 넘기고 옥리는 너를 감옥에 가둘 것이다. 59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잇따르는 하늘의 징조들, 무엇을 예고하는가(혜성, TETRAD, 일식)

<오늘의 묵상>

갈릴래아 호숫가에 살던 사람들은 대부분 어부들이었기에 날씨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고, 또한 오랜 경험으로 기후의 변화를 어렵지 않게 가려낼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날씨와 일기는 예측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자신의 구원과 관련된 “이 시대”의 징조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엉뚱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경고하십니다.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이 시대’는 물론 예수님 시대, 곧 하느님에게서 파견을 받으신 당신께서 사람들 사이에 사시면서 말씀과 행적으로 하느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선포하시던 시기를 뜻하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새 시대’를 알아보지 못하고 ‘옛 시대’의 기준과 잣대를 예수님께 들이대면서, 그분께서 율법과 계명을 어기고 잘못 가르치는 등 당신이 틀렸다고 따졌겠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하고 그들을 질책하셨습니다.
예수님 시대 이후 모든 시대마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기들 시대의 징조를 파악하려고 애써 왔고, 그렇게 이천 년이 지났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새 시대의 징표를 알아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새 기준을 찾았을까요?
자신의 나약함을 절감하면서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라는 바오로 사도의 독백과 그러한 모습에서, 우리는 두 시대가 교차함을 봅니다. 자신의 힘만으로 의로움을 얻으려고 애쓰다가 비참함에 좌절하는 것이 옛 시대의 인간이라면, 은총으로 우리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생활을 하는 것은 새 시대의 인간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구체적으로 감사의 생활은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는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따르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시대의 징조를 읽을 줄 아는 새 시대 사람은 아직 시간이 있는 동안 하느님과 화해하고 이웃과 화해하는 현명한 사람입니다.

일기예보는 kbs로...

<하느님 나라, 회개>  송영진 모세 신부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루카 12,56)"

이 구절의 '땅과 하늘의 징조'는 '날씨의 징조'를 뜻합니다. '이 시대'는 '메시아 시대'를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써 메시아 시대가 시작되었고, 그것은 종말이 시작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종말'은 인류의 멸망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 시대, 즉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뜻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르 1,15).' 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나라가 근처까지 가까이 와 있다는 뜻이 아니라 '시작되었다.' 라는 뜻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은 시대입니다. '완성'되는 시점은 '종말'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날씨의 징조를 풀이해서 예측할 줄 알면서도 하느님 나라의(종말의) 징조는 왜 알지 못하느냐?'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알다.' 라는 말과 '모르다.' 라는 말은  '능력'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노력'을 뜻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알다.'는 '알려고 노력하다.'이고, '모르다.'는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날씨를 예측하려고 노력하면서도 하느님 나라의 징조에 대해서는 왜 알려고 노력하지 않느냐?'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복음서 전체의 내용을 생각하면, 사람들이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서 알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예 듣기를 거부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듣기를 싫어하고 거부해서 예수님을 미워하고 박해하고 죽였던 것입니다.

날씨를 예측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날, 그날의 현세적이고 세속적인 일만 신경 쓰는 태도이고, 하느님 나라의 징조를 알기를 거부하는 것은 현세적인 문제 외에는 생각하기 싫다는 태도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루카 12,57)"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태풍의 진로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미리 대비한다면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는 이익은 현세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과 참 행복은 태풍을 잘 대비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올바른 일'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필요한 일'을 뜻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과 참 행복을 얻으려면 날씨를 예측하기 위한 노력보다 훨씬 더 많은 정성과 노력을 들여서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실천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개'입니다.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루카 12,58)."

인생이란 재판을 받으러 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 다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죽으면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인생은 마음 놓고 즐기기만 해도 되는 시간이 아니라 그 재판(심판)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재판을 준비하는 일이 바로 '회개'입니다.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라는 말은 하느님의 심판대에 서기 전에 서둘러서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인쇄 기술과 정보 통신 기술이 발달한 지금 이 시대는 몰라서 못 믿는 경우는 드물고, 알면서도 안 믿는 경우가 많게 된 시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을 꾸짖으셨지만 요즘 사람들의 모습을 보신다면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을 꾸짖으실 것입니다.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에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실 때, 하느님 나라만 선포하신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회개'는 단순히 지은 죄를 뉘우치는 것만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삶'을 완전히 하느님과 일치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지옥 벌을 안 받기 위해서 하는 회개는 아직 진정한 회개라고 하기에는 부족하고, 정말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제1독서 (로마7,18-25ㄱ)


오늘 독서는 로마서 7장 7-25절의 율법과 죄의 상관관계에 관한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다. 여기에서 사도 바오로와 같은 위대한 신앙의 스승도, 자신의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성을 겸손하고 진솔하게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오늘 말씀을 가톨릭적으로 풀이하면 이런 내용이라고 본다. 

<나도 여러분들처럼 선악의 내면적 갈등을 겪고 있는 약한 존재입니다. 우리 나약한 인간은 자력 구원이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하느님께 갈 수가 없어요. 우리 인간 본성 자체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지만, 인간 본성은 가만히 놓아 두면 악으로 기울여지는 성향(경향:Tendency)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초자연적 사랑인 성령을 받아야만,인간 본성을 초월할 수 있는 초성생활(超性生活)이 가능합니다. 성령을 받으려면, 먼저 회개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성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죄사함의 은총을 얻어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들어야 하며,반드시 기도를 하고 성체를 모셔야 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그래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면, 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입니다."(7,19-20) 

그리고 자신안에 있는 죄의 법하느님의 법사이에 이성의 법이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성령의 빛, 은총의 빛, 말씀의 빛, 신앙의 빛을 받은 바른 이성으로 자신의 감정, 기분, 느낌, 본성을 잘 다스려야 성화(sanctification)의 길을 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본성은 자신안에 있는 생명체와 같은 죄(罪:Hamartia)의 법지배를 받게 되는 비참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누가 이 죽음에 빠진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7,24-25)


 12월5일 (대림2주 인권주일) 회개하여라.


<내 안에, 곧 내 육 안에 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음을 나는 압니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로마 7,18)

우리 신앙생활의 고민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알고
또 그렇게 살고싶어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맨날 고백성사를 보고나서도 또 똑같은 죄를 범하니
한심하기만 하고 이런 나를 어떻게 하나 고민하게 됩니다.

사도 바오로도 똑같은 고민을 하셨네요.
완벽한 사도같은 바오로도 그러했다면 너무 걱정할 일은 아닌 성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약한 육이 우리의 착한 원의와 달리
죄와 악습으로 몰고가는 현실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비참한 죄의 노예상태에서 구해주실 유일한 분을
나의 스승이요 구세주로 모시고 있음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나의 약함을 겸손되이 인정하고
이런 약한 죄인인 나를 용서해 주시고
생명의 길로 이끌어 주심에 깊이 감사드리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대전 40대 남성·김해 여고생 살해 재판 현장에선 

제29주간 금요일 복음 (루카12,54-59)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54ㄴ~57)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줄곧 말씀하시다가 이제는 그들과 더불어 군중들로 그 대상을 확대해서 팔레스티나의 지리적 조건에 따른 기후의 변화를 반영하여 말씀을 하신다. 구름이 서쪽에서 일어나면 비가 오리라고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은, 팔레스티나는 그 서쪽이 지중해와 접하고 있기 때문에 서쪽에서 오는 바람은 다습하게 되어 비를 뿌리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54절과 55절에서 '바람의 방향에 따른 준비'에 대한 말씀으로 예수님의 오심을 미리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팔레스티나 남쪽에는 아라비아 사막이 있기 때문에 남쪽에서 바람이 불게 되면 사막의 뜨거운 바람을 몰고 오기 때문에 팔레스티나는 몹시 더워지게 된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남풍이 불면 더울 것을 대비해서 미리 준비하였다. 

이처럼 사람들은 천기를 분별하여 날씨에 대해서는 미리 대비할 줄 알았지만, 시대와 진리에 대한 분별에 있어서는 무관심하여 무지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그들의 영적 무지를 우회적으로 짚고 계신 것이다. 

'위선자들아' '위선자들'에 해당하는 '휘포크리타이'(hypokritai; hypocrites)'휘포크리테스'(hypokrites)의 복수형이다. '휘포크리테스'는 원래 '연기자' '무대 연출자'를 가리키는 말로서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 모습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위선'하늘과 땅의 기상은 분별한다고 하면서도  진정 알아야 할 이 시대의 다가올 심판은 깨닫지 못하는 실제적인 어리석음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여기서 '위선자들'이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하느님의 뜻을 안다고 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이 시대'에 해당하는 '톤 카이론~투톤'(ton kairon~tuton; this time)은  일차적으로 '예수님께서 이 지상에서 활동하던 시기'를 말한다. 왜냐하면, 루카 복음 12장 51~53절에서는 이미 예수님의 활동 시기로부터 '분열'을 가져다 주는 심판이 시작되었음을 말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 재림과 다가올 심판의 임박한 시기를 암시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원문에서 '시대'에 해당하는 명사 '카이로스'(kairos; time)은  일반적으로 시간의 순서를 가리키는 데도 사용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의 순서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결정적인 시점'을 가리키기도 한다.  '카이로스'사람의 운명과 관련해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으로서  여기서는 '종말론적으로 임박한 하느님의 심판의 때'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이 시대'는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그 시대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다가올 심판을 준비해야 할 모든 시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이 구절은 루카 복음 12장 58절과 관련해서 볼 때, 영원한 멸망에 빠지지 않고 자신을 구원하기 위하여 스스로 노력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다가올 심판을 피하기 위하여 각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적하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 대전에 져야 할 개인의 책임은 각자 자기 스스로에게 있다는 '구원의 개별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국민참여재판 절차 흐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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