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7일 연중 제27주간 수요일]주님의 기도 (루카 11,1-4)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
16세기 중엽 오스만 제국(현재의 터키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제국)은 세력 확장을 위하여 유럽을 침공하였다. 1571년 10월 7일 그리스도교 연합군은 그리스의 레판토 항구 앞바다에서 벌인 ‘레판토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의 대승은 묵주 기도를 통한 성모님의 간구로 하느님께서 함께하신 덕분이라 여기고, 이를 기억하고자 비오 5세 교황은 ‘승리의 성모 축일’을 제정하였다. 훗날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이름이 바뀌었다.
하느님께서 니네베를 용서하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자 요나는 크게 언짢아하며 화를 낸다. 그는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분이심을 알면서도 그분의 자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뜨거운 햇볕을 가려 주던 아주까리가 말라 죽는 것을 아까워하는 요나에게, 하느님께서는 그것보다 니네베가 당신께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요나 4,1-11)
1 요나는 매우 언짢아서 화가 났다. 2 그래서 그는 주님께 기도하였다. “아, 주님! 제가 고향에 있을 때에 이미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서둘러 타르시스로 달아났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이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며, 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3 이제 주님, 제발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4 주님께서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하고 말씀하셨다. 5 요나는 그 성읍에서 나와 성읍 동쪽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거기에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하였다. 6 주 하느님께서는 아주까리 하나를 마련하시어 요나 위로 자라오르게 하셨다. 그러자 아주까리가 요나 머리 위로 그늘을 드리워 그를 고통스러운 더위에서 구해 주었다. 요나는 그 아주까리 덕분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
7 그런데 이튿날 동이 틀 무렵, 하느님께서 벌레 하나를 마련하시어 아주까리를 쏠게 하시니, 아주까리가 시들어 버렸다. 8 해가 떠오르자 하느님께서 뜨거운 동풍을 보내셨다. 거기에다 해가 요나의 머리 위로 내리쬐니, 요나는 기절할 지경이 되어 죽기를 자청하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9 그러자 하느님께서 요나에게 물으셨다. “아주까리 때문에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그가 “옳다 뿐입니까? 화가 나서 죽을 지경입니다.” 하고 대답하니, 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았으며, 하룻밤 사이에 자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11 그런데 하물며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시편 86(85),3-4.5-6.9-10(◎ 15ㄴ 참조)
◎ 주님, 당신은 분노에는 더디시나 자애는 넘치시나이다.
○ 당신께 온종일 부르짖사오니,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께 제 영혼을 들어 올리오니, 주님, 이 종의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
○ 주님, 당신은 어질고 용서하시는 분,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자애가 넘치시나이다. 주님, 제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애원하는 제 소리를 들어 주소서. ◎
○ 주님, 당신이 만드신 민족들이 모두 모여 와, 당신 앞에 엎드려, 당신 이름에 영광을 바치리이다. 당신은 위대하시며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 당신 홀로 하느님이시옵니다.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는데, 그 기도에는 우리가 청해야 할 모든 것이 들어 있다.(루카11,1-4)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하느님의 말씀을 피하여 요나가 줄행랑을 친 이유가 오늘 독서에서 밝혀집니다. “아, 주님! 저는 당신께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이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며, 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분’이시라는 사실은 탈출 34,6-7에서 이미 선포된 그분의 이름이며 속성이기도 합니다.
니네베는 아시리아의 수도이고 아시리아는 이스라엘을 괴롭힌 나라인데, 원수인 니네베에게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 싫어서 요나는 그분께 화를 냅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요나서는 에즈라 시대에 유배에서 돌아와 너무 자신들에게만 갇혀 살던 유다교의 경향을 비판하는 예언서로 평가됩니다. 예언자는 우선적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의지를 확신한 사람으로서, 통상적으로 악을 고발하는 것으로 자신의 사명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 이방인들에 대하여 모두 배타적인 분위기였기에, 예언자 혼자서 이방인들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을 역설하게 되면 시대를 역행할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할 수도 있어 이것 또한 고통스러운 일이었겠죠.
아주까리가 요나 머리 위로 그늘을 드리워 그를 고통스러운 더위에서 구해 주었지만, 벌레 하나가 아주까리를 쏠아 먹어 시들어 버립니다. 게다가 해가 떠오르고 뜨거운 동풍이 불어오자, 요나는 기절할 지경이 되어 죽기를 자청합니다. 물론 익살스러운 표현입니다만, 아주까리 때문에 투덜거리는 요나와,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십이만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살고 있는 니네베의 회개와 구원을 위하여 측은히 여기시는 주님의 모습이 매우 대조적이며 훌륭한 묵상 내용이지요.
주님의 기도에서도,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용서와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에 대한 우리의 용서는 서로 닮아서 나란히 갑니다.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가 돌아서서 사는 것을 바라시는(에제 33,11 참조)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의 마음을 깨달을 때, 우리도 그 하느님께 배운 자비와 용서를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송영진 모세 신부
'주님의 기도'는 그 자체로 훌륭한 기도문이면서 동시에 기도할 때 따라야 할 지침이기도 하고,또 신앙생활의 실천 지침이 되기도 합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루카
11,2-4)
1) 하느님을 '아버지'
라고 부르는 것은, "저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고백하려면,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즉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바로 연상되는 말이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작은아들의 말입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루카 15,21)."
그런데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면 아버지라고 부를 자격도 없는데,
그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들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것과 같고, 아들 자격을 회복하기를 바라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큰아들의 경우에, 그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큰아들의 말에 들어 있는 '아버지' 라는 말은 모두 원문에는 '당신'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스스로 아들이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2)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는 온 세상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섬기는 (또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는)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기를 희망하고 청하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그
나라가 오는 것은 아니고, 우리 쪽에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 나라 완성을 위해서 우리도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저희' 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내가' 먹을 양식이 아니라 '우리가' 먹을 양식을
청합니다.
따라서 남이야 굶든지 말든지 자기만 배불리 먹는 사람은 주님의 기도를 바칠 자격이 없습니다.
양식을 청하는 기도에도 역시
실천하겠다는 다짐이 들어 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하늘을 향해서 입을 벌리고 누워 있으면
하늘에서 양식이 내려오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할 일은 스스로 하면서 하느님께 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과 나누는 일도
실천해야 합니다.
만일에 하느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더 많은 양식을 주신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과 나누라는 뜻으로 주시는
것이지
혼자서 독점하라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빵의 기적'을 행하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 빵을 직접 사람들에게 일일이
나누어 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주셨고, 제자들이 그 빵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루카 9,16).
그 다음으로 중요한 말은
'일용할'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마태 6,34)."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이, 또 자기의 인생이 '내일'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내일'은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사람은 사람이 할 일을 하고, 하느님께서 하실 일에 대해서는 하느님만 믿으면 됩니다.
'양식'에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도 포함됩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 세상만 살다가 끝날 인생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4) '용서'는 '지금'
실천해야 할 일입니다.
만일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용서, 화해, 일치를 나중으로 미룬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지금' 달라고 청할 자격이 없습니다.
여기서 또 중요한 말은 '모든 이' 라는 말입니다.
용서하고 싶은 사람만 용서하는 것은 올바른
용서가 아닙니다. 정말로 용서하기 싫은 사람도 진심으로 용서해야 올바른 용서가 됩니다.
5)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라는 기도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죄를 짓고 싶은 대로 막 지은 다음에 용서해 달라고
청할 수는 없습니다.
용서는 하느님의 의무가 아닙니다.
(용서 받는 것이 우리 쪽의 권리도 아닙니다.)
그러니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려면,
앞으로는 죄를 안 짓겠다는 다짐을 해야 하고, 죄를 안 지으려는 노력을 정말로 정성을 다 쏟아서 해야
합니다.
6)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기도하면서, 동시에 노력하라." 이것은 주님의 기도뿐만 아니라 모든 기도의 원칙입니다.
이 기도에는 남을 유혹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남을 죄 짓게 하는 죄'를 가장 싫어하십니다(루카 17,1-3).
여기서 '유혹'이라는
말은 넓은 뜻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만일에 양식을 나누지 않고 독점해서 다른 사람들을 굶주리게 만들고, 그래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게 되었다면, 하느님께서는 양식을 나누지 않은 사람에게 먼저 그 죄를 물으실 것입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루카 11,2)
여러분은 기도를 잘 하십니까?
잘 안되시나요?
어떻게 하면 기도를 잘 할 수 있는지
누가 좀 가르쳐 주면 좋겠지요?
당연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으니까요.
사실 가장 훌륭한 기도는 가장 쉽고 단순한 기도입니다.
출출문장으로
미사여구를 섞어가며
눈물과 아멘으로 기도하는 것이
최상의 기도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Pater Noster)가
최상의 기도이고
천년의 역사 안에서 수많은 기적과 은총을 가져다 준
"성모송"(Ave Maria)이 가장 아름다운 기도이며
"영광송"(Gloria)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바쳐드리는 최상의 흠숭입니다.
그러니 기도가 어렵다 하지 말고
"주모경"만 정성스럽게 바치면 됩니다.
오늘 묵주기도의 성모 마리아 축일에
주모경으로 이루어진 묵주기도 5단을 정성스럽게 바쳐 봅시다.
나의 간절한 염원과 올바른 지향을 담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