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5주간 토요일]귀담아들어라 (루카 9,43ㄴ-45)

2015. 9. 26. 오전 8:04:30

글자


 

[연중 제25주간 토요일]귀담아들어라 (루카 9,43ㄴ-45)

 십자가 그사랑 멀리 떠나서

즈카르야 예언서에는 모두 여덟 개의 환시가 들어 있는데, 세 번째 환시에서 예언자는 측량줄을 든 사람을 본다. 이 환시는 예루살렘이 회복된 다음 하느님께서 그 가운데 머무르실 것임을 알려 준다. 그때에 예루살렘은 평화를 누릴 것이다.(즈카 2,5-9.14-15ㄷ)
5 내가 눈을 들어 보니, 손에 측량줄을 쥔 사람이 하나 있었다. 6 내가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자, 그가 나에게 “예루살렘을 측량하여, 그 너비와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러 간다.” 하고 대답하였다. 7 그때에 나와 이야기하던 천사가 앞으로 나가자, 다른 천사가 그에게 마주 나와 8 말하였다. “저 젊은이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일러 주어라. ‘사람들과 짐승들이 많아 예루살렘은 성벽 없이 넓게 자리 잡으리라. 9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예루살렘을 둘러싼 불 벽이 되고, 그 한가운데에 머무르는 영광이 되어 주리라. 14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15 그날에 많은 민족이 주님과 결합하여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예수님의 고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시지만 그들은 아직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할 때까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온전히 깨달을 수 없다.(루카 9,43ㄴ-45)
그때에 43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할렐루야! 큰믿음출판사의 첫 책   다림줄, 다림추, 데림추. 유형거, 정약용(丁若鏞) 수원 화성(華城)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거중기, 기중기]

다른 사람들이 모두 태평성대를 구가할 때, 예언자들은 그 순간 멸망의 위험을 알아보고, 모든 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에도 그 순간 희망의 불씨를 발견합니다.
기원전 519년, 유배에서 돌아왔지만 아직 성전도 재건되지 않았고 기대하던 회복과 구원이 실현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때에 즈카르야는 환시를 보았습니다. 그가 본 첫째 환시에서는 예루살렘이 멸망한 지 칠십 년이 되었는데도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구하러 나서지 않으시는 모습이었지만, 둘째 환시에서는 하느님께서 시온을 가엾이 여기시고, 셋째 환시에서는 분명하게 구원을 예고하십니다.
화답송에서 노래한 내용도 유다 왕국의 멸망을 선포하던 예레미야가 패망 이후에나 성취될 미래를 예고한 부분의 말씀인데, 여기서 그는 멸망이 임박했음을 알면서도 그 멸망이 끝이 아니라고 선포합니다.
오늘 복음 바로 앞에는 예수님께서 어떤 아이에게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신 것을 전하는 내용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 기적을 보고 놀라워하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수난도 부활을 향한 여정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제자들마저 깨닫지 못합니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다.” 태평성대를 노래하면서 기뻐하는 이들에게 파멸을 선포하시고 그 멸망을 통해 쇄신을 이루시는 하느님의 계획, 당신을 메시아로 믿고 임금으로 세우려는 이들에게 수난을 예고하시는 예수님, 그리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류 구원을 이루시는 하느님의 계획은 인간의 눈에는 받아들이는 것도 묻는 것조차도 두려운 신비일 따름입니다.   

   

십자가 그사랑 멀리 떠나서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송영진 모세 신부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루카 9,43ㄴ-45)."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수난을 예고하시는데,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씀이 어려워서 못 알아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라는 말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하느님의 섭리와 계획에 의한 일이어서
인간이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라는 말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싫어서,
물어볼 생각도 안 했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니까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믿었겠지만,
그들의 심정은,
"뭐가 뭔지 나도 모르겠다. 아예 생각을 말자."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두려워서 나아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뒤로 돌아설 수도 없고,
그래서 아무 생각도 못하고,
그냥 그 자리에서 쩔쩔매기만 하는 사람들과 같은 모습입니다.


그런 모습에서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앞에는 바다, 뒤에는 이집트 기병대, 글자 그대로 진퇴양난에 빠졌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몹시 두려워하면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집트에는 묏자리가 없어 광야에서 죽으라고 우리를 데려왔소?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이렇게 만드는 것이오?
'우리한테는 이집트인들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나으니,
이집트인들을 섬기게 우리를 그냥 놔두시오.' 하면서
우리가 이미 이집트에서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소?(탈출 14,11-12)"


이스라엘은 이미 하느님의 강한 권능을 체험했었습니다.
열 가지 재앙으로 이집트인들을 치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느님께서는
고향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탈출 6,8),
이집트를 탈출한 뒤에는 실제로 이스라엘을 지켜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밤낮으로 행진할 수 있도록 그들 앞에 서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 속에서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 속에서 그들을 비추어 주셨다.
낮에는 구름 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을 떠나지 않았다(탈출 14,21-22)."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백성 앞을 떠나지 않았다고 되어 있으니,
바다가 앞에서 가로막고 뒤에서 이집트 기병대가 추격해 오는 상황에서도
구름 기둥과 불기둥은 백성을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두려워했습니다.
함께 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는 등의 기적들을 행하시는 것을
이미 많이 보았고, 예수님의 가르침들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수난 예고를 듣자 두려워하기만 합니다.
그동안 보고 들은 것을 모두 잊어버렸거나, 믿음을 잃었거나...
(이것은 그만큼 예수님의 수난 예고가 충격적인 말씀이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들의 과정과 결과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믿음을 잃고 두려워하기만 하는 사람들을 쉽게 비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비판에는 자기는 안 그럴 것이라는 자만심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실제로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자기가 어떻게 행동하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눈앞에 닥친 일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클 때,
그것을 믿음으로 극복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자들은 수난 예고를 듣고 그 말씀에 관해서 묻는 것조차 두려워했지만,
최후의 만찬 때에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입니다.
"베드로가 다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모두 그렇게 말하였다(마태 26,35)."
지금 베드로 사도의 말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모두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예고하셨을 때(마태 26,31) 했던 말인데,
이 말만 보면, 베드로 사도도 다른 사도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큰소리친 것과는 반대되는 행동을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고(루카 22,54-61),
다른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체포될 때 달아나버렸습니다(마르 14,50).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다는 사도들의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한 말이긴 한데, 실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마도 그때 그들은 자신의 믿음과 용기에 대해 자만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그렇게 될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루카 22,40)."


믿음을 잃게 만들고 예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만든다는 점에서
'두려움'도 '유혹'입니다.
자신의 믿음과 용기에 대한 '자만심'도 '유혹'입니다.
이런 유혹들을 이기는 방법은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그리고 자만심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기도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루카 9,45)

여러분은 질문을 잘 하시는 편인가요?
질문을 잘 하는 사람이 대체로 공부도 잘 하고
그 문제에 대해 많이 알고 있더라구요.

옛날 로마 유학시절에
'신학적 해석학'이라는 강의를 들었었는데
철학적, 신학적 기반이 약했던 저는
한 학기 내내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답니다.

구술시험에 들어가서
사실 하나도 못알아들었다고
교수님께 말씀드리자
왜 질문하지 않았냐고 그러더군요.
뭘 알아야 질문하지요? 했더니
껄껄 웃으시며 만점을 주시더라구요.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은 질문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지요?
그 비유는 어떤 의미인가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뭘 해야 하지요?..."

반면 예수님의 말씀을 잘 못 알아듣는 사람은
허구한 날 뭘 달라고 청합니다.

오늘 주님께 무슨 질문을
드리실래요?
주님의 말씀을 깊이 알아들으면 들을수록
질문을 더하게 되고 그분은 답을 해 주십니다.
이렇게 우리는 스승이신 그분의 제자가 되어갑니다.
주님을 알아가는 기쁨에 행복해집니다.

그런 축복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즐거운 명절 되십시오.


다림줄이 가려져서, 뭐가 뭔지 모르는 신자들 다림줄과 기준

민족의 명절인 추석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오늘은 어머니가 계신 의정부 집으로 가려고 합니다. 추석하면 떠오른 것들이 있습니다. ‘둥근달, 송편, 가족, 귀성길, 연도, 선물, 만남과 같은 것들이 떠오릅니다. 추석이 외로운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군에서 추석을 보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노숙자가 되신 분들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추석을 보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도소에서 추석을 보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무도 찾아 주지 않는 독거노인들도 계십니다. 하느님의 크신 자비와 사랑이 외로운 이들에게도 따뜻함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추석 선물로 영적식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예전에 광고 중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선택이란 참 중요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성서에서 식별이란 말은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저울로 재 본다는 뜻입니다. 우리 어르신들은 예전에 손으로 들어 보면서 물건이 좋은지 아닌지를 판별하였습니다. 수박도 들어보고, 두들겨 보고 맛있는지를 살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씩 쪼개 본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분석을 한다는 뜻입니다. 식약안전청에서는 물건의 성분을 분석할 때 잘게 쪼개 봅니다. 그것도 부족하면 분쇄해서 갈아 봅니다. 그러면 물건의 성분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식별이란 전체적으로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를 보는 것이고, 식별이란 구체적으로 하나의 행동이 올바른 것인지를 따져 보는 것입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고를 때, 차를 살 때, 집을 살 때 우리는 꼼꼼히 따져보고, 신중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잘못 판단을 하면 커다란 손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께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하느님은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식별입니다. 처음에는 올바른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한번 써보고, 살아봐야 안다.’ 겉보기와는 다른 경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식별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식별의 결과입니다. 결과가 좋고, 결실이 있으면 영적식별을 잘 한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가 나쁘고, 결실이 없으면 그것은 악의 유혹을 따른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를 때 위로와 고독이 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면 결과는 늘 기쁨과 평화입니다. 악의 유혹을 따를 때도 위로와 고독이 있습니다. 악의 유혹을 따를 때 결과는 늘 불평과 불만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늘 감사하십시오. 항상 기도하십시오.’ 이것은 영적식별을 잘 하기 위한 조건입니다.

 

영적식별을 잘 하는 사람은 3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겸손입니다.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남의 의견도 충분히 듣습니다. 누군가 영적 식별을 잘 했는데, 교만하다면 그것은 악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둘째는 진중함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쉽게 하지 않습니다. 남의 허물과 탓을 이웃에게 전하지 않습니다. 깊은 바다와 같아서 사람들을 품어 줄 수 있습니다.

셋째는 순종입니다. 비록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할지라도 교회의 가르침에 순명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의 의견이 교회의 가르침과 다를 때, 교회를 비판하고 순명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올바른 영적식별이 아닙니다

조재형신부


다림줄(3.31~4.4 정몽률목사님) [도서리뷰] >다림줄< - 벽돌을 반듯이 쌓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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