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마태 18,1-5)

2015. 10. 1. 오전 7:2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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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마태 18,1-5)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1873년 프랑스의 알랑송에서 태어났다. 열다섯의 어린 나이에 리지외의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간 그녀는 결핵을 앓다가 1897년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선종하였다. 짧은 기간의 수도 생활이었지만 데레사 수녀는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면서 고행하였다. 일상의 단순하고 작은 일에 충실하였던 그녀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그리고 사제들, 특히 먼 지역에 가서 선교하는 사제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선종한 뒤에 나온 데레사 수녀의 병상 저서들은 세계 각지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많은 이를 감동하게 하였다. 1925년 비오 11세 교황은 그녀를 시성하고, 1929년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성녀는 ‘소화(小花) 데레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예수님과 어린이 기독교이미지

이사야서의 마지막 부분은 예루살렘의 찬란한 회복을 예고한다.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하듯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실 때, 예루살렘의 멸망을 슬퍼하던 이들이 모두 기뻐하게 될 것이다.(이사야 66,10-14ㄷ)
1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그와 함께 기뻐하고 그를 두고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 때문에 애도하던 이들아, 모두 그와 함께 크게 기뻐하여라. 11 너희가 그 위로의 품에서 젖을 빨아 배부르리라. 너희가 그 영광스러운 가슴에서 젖을 먹어 흡족해지리라. 12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예루살렘에 평화를 강물처럼 끌어들이리라. 민족들의 영화를 넘쳐흐르는 시내처럼 끌어들이리라. 너희는 젖을 빨고 팔에 안겨 다니며, 무릎 위에서 귀염을 받으리라. 13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14 이를 보고 너희 마음은 기뻐하고, 너희 뼈마디들은 새 풀처럼 싱싱해지리라. 그리고 주님의 종들에게는 그분의 손길이 드러나리라.


축일 10월 1일 성녀 소화 데레사(Teresa)

혼인하지 않은 사람은 오직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데에 마음을 쓴다고 강조하면서 바오로 사도는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으므로, 이 세상에 마음을 두지 않기를 권고한다.(. 코린전 7,25-35)
형제 여러분, 25 미혼자들에 관해서는 내가 주님의 명령을 받은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자비를 입어 믿을 만한 사람이 된 자로서 의견을 내놓습니다. 26 현재의 재난 때문에 지금 그대로 있는 것이 사람에게 좋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27 그대는 아내에게 매여 있습니까? 갈라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아내와 갈라졌습니까? 아내를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28 그러나 그대가 혼인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또 처녀가 혼인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혼인하는 이들은 현세의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것을 면하게 하고 싶습니다. 29 형제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30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31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32 나는 여러분이 걱정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혼인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33 그러나 혼인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 34 그래서 그는 마음이 갈라집니다. 남편이 없는 여자와 처녀는 몸으로나 영으로나 거룩해지려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혼인한 여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 35 나는 여러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에게 굴레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서 품위 있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어린이/기독교이미지/예수님이미지/기독교편지지자료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1-5)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톨릭(성화)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가운데에 세우시고 제자들과 비교하십니다. 나름대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라나서서, 하늘 나라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이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제자들이 아직 하늘 나라에 가까이 있지 못하며, 오히려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어린이가 먼저 하늘 나라에 들어가게 될 형편입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질문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그들의 현주소를 있는 그대로 보여 줍니다. 그들은 어린이가 아니라 큰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하늘 나라에서라는 전제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기왕이면 내친김에 하늘 나라에서도 다른 이들의 눈에 띄는 자리에 앉아 훌륭한 인물로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예수님께서는 회개를 요구하시고, 자신을 낮출 것을 명하십니다.
데레사 성녀의 ‘작은 길’은 어린이처럼 단순하게 믿고 의지하는 이에게 내리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십자가의 신비에 대한 통찰과 이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자신의 나약함을 일찌감치 깨달은 데레사의 이 작은 길은 완전한 사랑의 행위 안에서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 자신을 내어 맡기고 단순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 저의 사랑이신 예수님! 저의 성소를 드디어 찾았습니다. 저의 성소는 사랑입니다.” 성녀는 위대하고 거창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수도회에 입회하여 스물네 살에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갈 때까지, 수녀원 담장 밖을 나가 본 적도 없지만, 전교 지역의 주보 성녀, 선교의 수호자가 되었습니다. 데레사는 체질이 허약해서 자주 병에 걸려 많은 고통을 당하였지만, 죄인의 회개와 사제들, 특히 전교 지방의 사제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자기 병고를 주님께 바쳤기 때문이지요.
날마다 일상으로 주어지는 사소한 일을 성실히 수행할 때 인간의 눈에는 보잘것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하느님께서는 이 점을 크고 위대하게 평가하신다는 것을 성녀의 삶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으며, 작은 길을 통하여 우리도 성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10월 애국조회 및 소화데레사 축일


<어린이>  송영진 모세 신부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높은) 사람입니까?"
라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자(마태 18,1),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3-4)."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다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하늘나라에는 높고 낮은 서열이 없다.
2) 높아지려고 하지 말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여라.
3)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춰야 한다.
4) 어린이처럼 되는 방법은 회개뿐이다.


어린이처럼 되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 앞에서'(또는 '하느님의')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이'는 하느님만 믿고 의지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금 강조되고 있는 것은 '믿음'과 '겸손'입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안 믿는 사람을 하느님께서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 쪽에서 안 믿음으로써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못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안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사람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의 업적과 능력과 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느님만 믿어야 합니다.
자기가 쌓은 업적이나 자기의 능력을 내세운다는 것은
하느님과 예수님의 은총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뜻인데,
그것은 하느님과 예수님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고,
그렇다면 그런 사람이 갈 곳은 하느님과 예수님이 없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 나라가 하느님 나라일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어린이가 되는 방법은 '회개'뿐입니다.
회개가 아닌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죄를 뉘우치고 보속하는 것만 '회개'인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이 제대로 믿게 되는 것도 '회개'이고,
겸손하지 않던 사람이 겸손하게 되는 것도 '회개'입니다.


회개는 한번 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 날마다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면
그 자격을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노력도 회개입니다.
자기는 죄가 없으니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교만이고,
이미 회개했으니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교만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회개해서 어린이처럼 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으니,
그 나라에는 자신을 낮추는 사람 밖에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자신을 낮춘다면,
그 나라에는 남들보다 더 높은 사람도 없고, 남들보다 더 낮은 사람도 없게 됩니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는 서열 자체가 없는 나라이고,
누구든지 그 나라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모두가 다 '가장 큰(높은) 사람'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라는 제자들의 질문은
그 자체로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남들보다 더 높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습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가 다 똑같은 사람일 뿐입니다.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입니다.
물론 다른 직책보다 더 높은 직책이 있기는 하지만,
그 직책을 맡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높은 것은 아닙니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태 18,5)." 라는 말씀은,
앞의 '하늘나라와 어린이'에 관한 말씀과는 다른 가르침입니다.
이 말씀에 나오는 '어린이'는
사회적으로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소외 계층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누구든지' 라는 말은,
지금 이 가르침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실천해야 할 가르침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하나를'이라는 말은 '하나라도' 라는 뜻이지만,
한 명만 섬겨도 된다는 뜻은 아니고,
"보잘것없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모두 다" 라는 뜻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이라는 말은 "나를 섬기듯이 섬기면"이라는 뜻입니다.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는 "나를 섬기는 것이다."입니다.
따라서 '어린이'가(보잘것없는 사람들이) 곧 예수님입니다.


이 말씀은 '최후의 심판'에 관한 가르침에 다시 나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어린이를 섬겨야 한다는 말씀을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누구든지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린이가 되어서 어린이를 섬겨야 한다."가 됩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간 성인 성녀들은 모두 다 어린이가 된 분들이고,
동시에 어린이를 섬긴 분들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말씀은, 힘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낮추어 어린이처럼 되어서 어린이 같은 사람들을 섬기라는 명령이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서로 섬기면서 사랑을 실천하라는 명령입니다.


축일 10월 1일 성녀 소화 데레사(Teresa)

 <나는 여러분이 걱정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1코린 7,32)

여러분은 걱정이 많으십니까?
무슨 걱정이 그리 많으세요?
자나깨나 돈 걱정, 자식 걱정, 건강 걱정, 직장 걱정...

걱정없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돈이 많다고 걱정이 없어질까요?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이 해결된다고
또다른 걱정이 생기지 않을까요?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걱정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네요.
그게 어찌 가능할까요?

사도 바오로는
걱정 없이 산다는 것은
어떤 걱정을 하느냐에 달려있다네요.
내가 인간적인 걱정을 하게 되면 절대 해결되지 않고
걱정이 꼬리를 물 수밖에 없다네요.
그러니 인간적인 걱정은 모두 쓰잘데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걱정은
하느님께서 과연 기뻐하실 일인지
걱정하는 것이랍니다.
해결책도 없는 인간적인 걱정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영적인 걱정이
우리를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만듭니다.

서울 어딘가 건물에 쓰여있는 글귀처럼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97%는
쓸모없는 걱정이라더군요.
그러니 오늘은 걱정일랑 붙들어매고
그냥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맡겨드려 봅시다.

사람의 일만 걱정하면 사탄이 되기 쉽고
하느님의 일만 생각하면 천사가 된답니다.


유럽 ~ Jesus With Children Wallpapers – Set 10 ( 예수님과 어린이 이미지 )

10월의 첫날입니다. 오늘은 어머니의 축일이기도 합니다. 어머니는 배움이 많지는 않으셨지만 겸손하셨고, 지혜로우셨습니다. 신학을 잘 알지는 않으셨지만 뜨거운 신앙을 보여 주셨습니다. 대녀들도 많으셔서, 가끔씩 대녀들과 모임을 갖기도 하십니다. 80이 넘으셨지만 레지오 부단장 일을 하시고, 성령 봉사회, 노인대학에도 열심히 하십니다. 축일을 맞이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어머니를 기억하면 언제나 가족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외출하시고 돌아오시면 늘 따뜻한 물을 준비해서 아버님께서 씻을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집을 나가서 들어오지 않았던 작은 형을 위해서는 늘 따뜻한 밥 한 그릇을 퍼서 이불 사이에 넣어 두셨습니다. 큰 형의 아이들을 몇 년씩 어머니께서 키워 주셨습니다. 제가 몹시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단 10분도 제 곁을 떠나지 않고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아 주셨습니다. 동생 수녀님은 시간이 나면 늘 어머니와 함께 지냅니다. 어머니를 위하는 마음도 크지만, 어머니께서 동생 수녀님의 든든한 쉼터가 되시기 때문 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각 가정에 어머니라는 수호천사를 보내 주신 것 같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영성에 있어서 중요한 개념인 중용의 덕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해서라면 부귀보다 가난을 택할 수도 있고, 장수보다 단명을 택할 수도 있고, 건강보다 질병을 택할 수도 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제나 수도자의 길을 가는 것도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이라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는 것도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이라면 좋은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성녀 소화 데레사는 평생 고통 중에 있었고, 24살의 젊은 나이에 하느님 품으로 갔습니다. 그녀는 수도원 담 바깥을 한 번도 나와 보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그녀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고, 병중에 살았으며, 수도원 안에서만 살았기에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그런 그녀의 삶을 따라하려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교회는 그녀를 선교사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중용의 삶을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데레사 성녀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남겨 주었습니다. “‘애덕'이 제 '성소'의 열쇠를 주었습니다. 교회에는 심장이 있고, 이 심장에는 사랑이 불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랑은 모든 성소를 포함한다는 것, 사랑이 모든 것이라는 점, 사랑은 모든 때와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것. 한마디 말로 말해서 '사랑''영원'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제 사랑이신 예수님! 제 성소를 마침내 찾았습니다. 제 성소는 사랑입니다.


예수님, 제가 저를 '당신 사랑의 희생으로' 드릴 용기를 내게 되는 것은 제가 약한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사랑은 약하고 불완전한 피조물인 저를 제물로 골랐습니다. 예수님! 예수님! '당신을 사랑하기''원하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적에야 사랑을 차지하고 누리게 된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어떻게 저같이 불완전한 영혼이 '사랑'의 극치를 차지하기를 바랄 수가 있겠습니까? ! 예수님! 첫째이며 유일한 벗이여, 제 사랑을 오로지 바치는 당신이여, 대체 이것이 무슨 신비입니까?”


중용이란 평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중용이란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용이란 내 삶의 중심에 하느님이 있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는 바로 중용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들 또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조재형가브리엘 신부

예수님과 어린이 jesus and chi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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