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간 금요일]되돌아오는 악령 (루카 11,15-26)

2015. 10. 9. 오전 6: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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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7주간 금요일]되돌아오는 악령 (루카 11,15-26)

 

(10월9일 569돌 한글날) 1926년11월4일 조선어연구회(한글학회의 전신)가 주축이 되어 매년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하여 행사를 거행했고 1928년에 명칭을 '한글날'로 바꾸었다. 1932, 1933년에는 음력을 율리우스력으로 환산하여 양력 10월 29일에 행사를 치렀으며, 1934~45년에는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여 10월 28일에 행사를 치렀다. 그러나 지금의 한글날은 1940년 〈훈민정음〉 원본을 발견하여 그 말문(末文)에 적힌 "正統十一年九月上澣"에 근거한 것으로, 이를 양력으로 환산해보면 1446년(세종 28) 10월 9일이므로 1945년에 10월 9일로 확정했다. 이 날에는 세종문화상을 시상하고 세종대왕의 능인 영릉(英陵)을 참배하며 전국에서 학술대회 및 각종 백일장을 거행한다.


메뚜기 재앙이 일어나 한 해 농사를 모두 망쳐 놓았을 때, 요엘 예언자는 이 재앙이 장차 올 심판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선포한다. 주님께서 심판하실 날이 다가오고 있으니 그날이 오기 전에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가야 한다.(요엘1,13-15; 2,1-2)
13 사제들아, 자루옷을 두르고 슬피 울어라. 제단의 봉사자들아, 울부짖어라. 내 하느님의 봉사자들아, 와서 자루옷을 두르고 밤을 새워라. 너희 하느님의 집에 곡식 제물과 제주가 떨어졌다. 14 너희는 단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집회를 소집하여라. 원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을, 주 너희 하느님의 집에 모아 주님께 부르짖어라. 15 아, 그날! 정녕 주님의 날이 가까웠다. 전능하신 분께서 보내신 파멸이 들이닥치듯 다가온다. 2,1 너희는 시온에서 뿔 나팔을 불고,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보를 울려라. 땅의 모든 주민이 떨게 하여라. 주님의 날이 다가온다. 정녕 그날이 가까웠다. 2 어둠과 암흑의 날, 구름과 먹구름의 날이다. 여명이 산등성이를 넘어 퍼지듯, 수가 많고 힘센 민족이 다가온다. 이런 일은 옛날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세세 대대에 이르도록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


시편 9,2-3.6과 16.8-9(◎ 9ㄱ 참조)
◎ 주님은 온 누리를 의롭게 심판하시네.
○ 주님, 제 마음 다하여 찬송하며, 당신의 기적들을 낱낱이 전하오리다. 지극히 높으신 분, 저는 당신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당신 이름 찬미하나이다. ◎
○ 당신은 민족들을 꾸짖으시고 악인을 없애셨으며, 그 이름을 영영 지워 버리셨나이다. 민족들은 자기네가 파 놓은 함정에 빠지고, 자기네가 쳐 놓은 그물에 제 발이 걸리네. ◎
○ 주님은 영원히 좌정하여 계시고, 심판하시려 어좌를 든든히 하셨네. 그분은 누리를 의롭게 심판하시고, 겨레들을 올바로 다스리시네. ◎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실 때 어떤 이들은 그분께서 베엘제불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계시니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와 있다고 말씀하신다.(루카 11,15-26)
그때에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군중 15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24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25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26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여기서 말하는 ‘힘센 자’는 마귀입니다. 그런데 ‘더 힘센 자’는 예수님이시죠.
논리는 이렇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내시는 것이라면 사탄의 나라는 반드시 분열되어 무너졌어야 했을 것입니다. 사탄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났다면 모를까, 아니라면 사탄들도 그렇게는 하지 않겠지요.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느님의 나라가 사탄의 나라보다 더 힘이 세어서 사탄의 세력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를 쫓아낸다고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나간 그 빈 집을 채워 주어야 합니다.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지배를 당하거나 보이지 않는 줄에 매여 있는 사람들을 그 속박에서 풀어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갖가지 중독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요. 중독에 걸린 사람은 그것에 깊숙이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그것을 놓으면 불안하여 곧바로 다른 것에 매달리고 스스로를 묶어 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러기에 ‘힘센 자’ 마귀를 몰아내면 그 자리를 ‘더 힘센 자’ 예수님께서 채우셔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는 다시 스스로 어딘가를 찾아가 다른 집주인을 섬길 것입니다.
사탄이 들어오기 전에 우리 ‘집’을 예수님께서 온전히 차지하시어 그 안에 다른 누구도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아울러 군중은 정당한 방법으로 예수님을 반대할 수 없게 되자, 중상모략을 합니다.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은 커다란 덕입니다. 반대로 상대방의 진실을 외면하고 험담하는 것은 커다란 악이라는 것을 오늘 복음에서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되돌아오는 악령>  송영진 모세신부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루카 11,24-26)." 


이 말씀은, 악령(마귀)에게서 해방되었다면 성령으로 가득 찬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라는 말은, 그 집이 깨끗하다는 뜻이 아니라, 주인 없는 상태라는 뜻입니다. 악령이 차지하고 있다가 쫓겨난 뒤에 아직 새 주인이 없는 빈 집으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빈 집을 악령이 다시 차지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비운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마음을 비우기만 하고 빈 마음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악령이 우리 마음의 집을 차지하는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성령께 집을 내드려야 합니다. (이 말은,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내려 주시는 일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지만, 내리는 성령을 잘 받는 것은 우리 쪽에서 노력해야 하는 일입니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데 자동적으로 성령으로 가득 차는 것은 아닙니다.

또 이 말은, 예수님께서 악령을 쫓아내셔서 그 덕분에 자유롭게 되었다면, 그 자유를 지키려는 노력을 스스로 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한 번 해방되었다고 해서 저절로 자유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악령은 언제든지 되돌아오려고 노리는 존재입니다. 


마귀 들린 상태가 아니라, 단순히 마귀의 유혹을 받는 상황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우리가 한 번 마귀의 유혹을 뿌리쳤다고 해서 마귀가 포기하고 영영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든지 또다시 유혹하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유혹했던 악마의 경우가 좋은 예입니다.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루카 4,13)."


'회개'의 경우도 같습니다. 우리가 한 번 회개하고 깨끗해졌다고 해서 그 '깨끗함'이 저절로 계속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도 회개입니다. 그래서 회개는 날마다 계속해야 하는 일입니다.

쫓겨난 악령이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돌아오는 상황을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나서  무소유와 청빈을 실천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명예욕은 버리지 못하고 명예에 대해서는 더 집착하게 되는 모습. (무소유와 청빈에 대해서 사람들이 칭찬하고 존경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것을 스스로 자랑하고, 그러다가 교만해지고...) 그것은 소유욕이라는 악령에게서는 해방되었지만, 명예욕이라는 더 악한 악령에게 사로잡힌 것입니다.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라는 말씀의 좋은 예는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병자입니다. 벳자타 못 가에서 서른여덟 해나 앓고 있는 병자를 보신 예수님께서 그를 고쳐 주셨는데(요한 5,5-9),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요한 5,14)."

이 말씀은, 그 병자가 죄 때문에 병에 걸렸었다는 뜻도 아니고, 그가 죄 속에서 살았다는 뜻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몸이 건강해진 것에만 만족하지 말고, 영혼 구원을 위해서 힘쓰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병자는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라고 유대인들에게 밀고합니다(요한 5,15). 안식일을 어겼다고 박해를 받을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글자 그대로 배은망덕입니다. 그는 영혼 구원을 위해서 힘쓰기는커녕 구원을 주시는 분을 배반함으로써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더 나쁜 일'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처음보다 끝이 더 나빠진 것입니다. (그 병자의 경우에는 차라리 아픈 몸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몸만 건강해지고, 구원을 못 받게 되었다면...그리고 그것은 그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예수님 탓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 자신의 탓입니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하면, 가장 좋은 예가 마리아 막달레나입니다. 막달레나는 예수님 덕분에 일곱 마귀에게서 해방된 사람입니다(루카 8,2). 만일에 마귀들에게서 해방된 것에 대해서만 만족하고 그냥 예수님을 떠나버렸다면, 막달레나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습니다(루카 8,3). 즉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악령이 떠나서 비어 있게 된 마음과 영혼을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가득 채운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첫 번째로 만나고, 부활의 첫 증인이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루카 11,15)

여러분은
누군가가 인기가 좋거나 나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면
그를 칭찬하고 그를 통해 이루어주신 선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시나요?

아니면
그를 인정할 수 없어서
그의 인격이나 성향 등을 들먹이면서
그를 깎아내리려 하신 적은 없나요?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이룩하시는 선과 말씀 때문에 기뻐한다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이루시는 선업에 대해서도 기뻐하며
그 일을 이루신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어야 참 신앙인이 아닐까요?

예, 오늘
누군가 멋지고 놀라운 말과 행동으로
큰 일을 이루는 것을 보게 되거든
웃기고 있네 라는 둥 제깟놈이 뭐 라는 둥
어디 출신이라는 둥 성격이 어떻다는 둥
과거가 어떻다는 둥 그 사람을 깎아내리려 하지말고
하느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이룩하시는 선에 대해 하느님을 칭송합시다.
그 사람을 칭송하거나 그 사람에게 아부하지 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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