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간 화요일] 마르타와 마리아 (루카 10,38-42)

2015. 10. 6. 오전 7: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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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7주간 화요일] 마르타와 마리아 (루카 10,38-42)


요나는 하느님에게서 멀리 도망치려 하지만, 바다 속에서 물고기가 그를 삼켜 니네베에 뱉어 놓는다. 그가 니네베에 들어가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하자 니네베는 회개하고,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재앙을 내리지 않으신다.(요나 3,1-10)
1 주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내렸다.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3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4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5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6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 7 그리고 그는 니네베에 이렇게 선포하였다. “임금과 대신들의 칙령에 따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든 양이든 아무것도 맛보지 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 8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9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10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요나이야기, 니느웨 성읍의 회개  헌신설교 - 40 니느웨 선교사 요나

시편 130(129),1-2.3-4.7ㄴㄷ-8(◎ 3)
◎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주님, 제 소리를 들어 주소서. 애원하는 제 소리에 당신 귀를 기울이소서. ◎
○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니, 사람들이 당신을 경외하리이다. ◎
○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바로 그분이 이스라엘을 모든 죄악에서 구원하시리라. ◎      


마르타와 마리아, 두 모습의 조화

예수님께서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의 집을 방문하셨을 때, 마르타는 시중드는 일에 분주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마리아처럼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루카 10,38-42)
그때에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오신 그리스도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르타가 없었으면 예수님 일행은 진지도 드시지 못하셨을 텐데 ……. 과연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오늘 복음을 어제 복음과 연결시켜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어제 착한 사마리아 사람에 관한 비유를 통하여 둘째 계명인 이웃 사랑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면, 오늘 마르타와 마리아에 관한 말씀은 첫째 계명인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중요성, 곧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마르타는 시중드는 일, 곧 음식을 준비하는 데 몰두하였기에 그분의 말씀을 들을 겨를이 없었고,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의 이러한 행동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물론 마르타의 헌신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며, 어찌 그 정성을 탓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외적인 봉사 활동은 과소평가하시고 관상이나 기도 생활을 더 높게 평가하셨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 복음은 손님으로 오신 예수님을 올바르게 모시고 섬기는 적절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요. 곧 지나치게 필요 이상의 음식을 준비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그분을 제대로 대접하고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 말씀은 마르타와 마리아의 관계에 국한시켜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에 함축된 뜻은 마르타가 방해받지 않고 음식 준비를 잘할 수 있었듯이, 마리아도 방해받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필요한 일’이란 음식을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는 마르타에게 당장 필요한 일을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마르타적인 것과 마리아적인 것, 모두가 필요합니다. 활동과 봉사에 성실하다 보면 묵상과 기도 생활을 소홀히 할 수도 있기에, 두 가지가 중용을 이루어야 합니다.
또한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는 말씀을 마르타와 마리아의 관계를 떠나 다른 경우와 연결시켜 생각한다면, 말씀을 듣고 말씀 안에서 주님을 만나며 그 말씀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가장 “필요한 것” 한 가지가 아닐까요? 말씀을 듣는 것이 원천과 출발점이 되지 않는다면, 사랑의 행위는 지속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화 1


<마르타와 마리아를 방문하시다.>  송영진 모세 신부 


마르타가 예수님을 초대하고,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바쁘게 일하는데,
마리아는 언니를 전혀 도와주지 않고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루카 10,38-39).
우리는 이게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마리아가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고,
또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편애하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마르타도 그렇게 느꼈는지 예수님께 불평합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루카 10,40)."
이 말은, 언니로서 동생 마리아를 꾸짖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 이 말에는 자기도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안타깝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그런 마르타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41-42)."
 


이 말씀에서 '많은 일'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너무 많은 음식'을 뜻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일'을 뜻할 수도 있고,
시중드는 일과 말씀을 듣는 일을 동시에 다 잘하고 싶어 하는
욕심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1) '너무 많은 음식'을 뜻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당신을 잘 대접하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마음이 지나쳐서 욕심이 되거나 집착이 되지 않도록 하라고
타이르시는 말씀이 됩니다.
잘 대접하려는 마음이 너무 지나치면,
자기 과시가 될 수도 있고 교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과공비례(過恭非禮)' 라는 말이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2) '다른 사람의 일'을 뜻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각자 받은 탈렌트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됩니다.
마르타에게는 마르타의 탈렌트가 있고, 마리아에게는 마리아의 탈렌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그냥 내버려 두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마르타가 하고 있는 일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요한 사도의 운명을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요한 21,2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각자 자기가 받은 탈렌트대로 최선을 다해서 일하면 됩니다.


3) 시중드는 일과 말씀을 듣는 일을 동시에 다 잘하고 싶어 하는
욕심을 뜻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둘 다 할 수 없다면 하나만 하여라."가 됩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말씀을 듣는 일을 먼저 선택하라는 가르침이 됩니다.
물론 둘 다 할 수 있다면, 하면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받으려고' 오신 분이 아니라, '주려고' 오신 분이라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먹여 주시는 분이지 우리에게서 받아먹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마르 10,45)"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의 상황에도 적용됩니다.
마르타가 주님이신 예수님을 잘 섬기려고 애쓴 것은 좋은 일이긴 한데,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잘 받는 것이
진짜로 잘 섬기는 것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런 점에서 마리아는 예수님을 잘 섬긴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라는 말씀은,
신앙인의 궁극 목적인 하느님 나라, 영원한 생명, 구원을 잊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해석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목적을 잊으면 안 됩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음식이 아니라 예수님이 중요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데,
만일에 마르타가 자기가 준비하고 있는 음식을
예수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잘못하는 일이 됩니다.
 


이 말은 마리아에게도 해당됩니다.
만일에 (실제로 그럴 리는 없지만) 마리아가 말씀은 안 듣고
'말씀을 듣고 있는 상황에만' 취해 있다면,
또는 자기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잘난 체를 하는 것이라면, 그것도 잘못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성경 안에 있는 말씀은 안 읽고,
비싸고 귀한 성경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기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라는 말씀은,
"마리아는 너보다 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가 아니라,
"마리아는 자기에게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시중드는 일보다 말씀을 듣는 일이 더 좋은 몫이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것을 마리아가 잘 받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마리아의 것을 빼앗지 마라."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주시는 하느님 나라, 생명, 구원은 영원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마르타가 자기 방식대로 실천한 '사랑'도 영원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마르타를 타이르시는 말씀이긴 하지만,
일방적으로 마리아만 편들어 주시는 말씀은 아닙니다.)
 


지금 이 내용은, "일하지 말고 말씀만 들어라." 라는 가르침도 아니고,
활동하는 신앙생활보다 묵상하고 기도하는 신앙생활이
더 우위에 있다는 가르침도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서 일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지를
잊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달리기만 하다가 자기가 왜 달리고 있는지 잊어버리고,
결승점이 어디인지도 잊어버리는,
어리석은 육상선수 같은 신앙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외적인 종교생활만 신경 쓰다가
내적인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펌]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계신 그리스도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루카 10,41)

오늘도 해야할 일이 많나요?
매일 이것저것 해야할 일이 늘 있지요.
그 때문에 조급증이 나고
짜증이 나고
불평도 나오게 됩니다.

사실 이 정도가 되면
일을 줄여야 합니다.

그런데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너무 잘 하려는 욕심 때문에
조급증과 짜증과 불만이
생기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때론 위신과 체면 때문에
단순하게 접근하지 않아서
많은 염려와 걱정이 일어나는 법이지요.

저도 오늘 해야할 일이
이것저것 있네요.
오늘은 좀더 단순한 마음으로
웃으면서 하나하나
처리해 봐야겠어요.
그 일을 어떻게 더 잘 처리할까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너무 고민하지 않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면
어떨까요?

오늘도 주님께서 맡겨주시는 일
신나게 해 봅시다.
화이팅!


예수의 일생....마리아 마르다 나자로마르타.마리아.라자로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한 예수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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