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 대림 제2주간 수요일 - 마태오 11,28-30
<전능하신 주님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신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0,25-31
25 “너희는 나를 누구와 비교하겠느냐? 나를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 거룩하신 분께서 말씀하신다.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고 보아라. 누가 저 별들을 창조하였느냐? 그 군대를 수대로 다 불러내시고, 그들 모두의 이름을 부르시는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능력이 크시고 권능이 막강하시어,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27 야곱아, 네가 어찌 이런 말을 하느냐?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 이렇게 이야기하느냐? “나의 길은 주님께 숨겨져 있고, 나의 권리는 나의 하느님께서 못 보신 채 없어져 버린다.” 28 너는 알지 않느냐? 너는 듣지 않았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줄도 지칠 줄도 모르시고, 그분의 슬기는 헤아릴 길이 없다. 29 그분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신다.
30 젊은이들도 피곤하여 지치고, 청년들도 비틀거리기 마련이지만, 31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
시편 103(102),1-2.3-4.8과 10(◎ 1ㄱ)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들아,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께서 해 주신 일 하나도 잊지 마라. ◎
○ 주님은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낫게 하시는 분.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로 관을 씌워 주시는 분이시로다. ◎
○ 주님께서는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도다. 우리의 죄대로 우리를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우리에게 갚지 않으시도다. ◎
<고생하는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로 오너라
<더 이상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미사에서 영성체가 끝난 후의 일이었습니다. 습관대로 잠깐 묵상시간을 가졌습니다. 영성체의 순간, 너무나 은혜로운 감사의 순간이기에 그냥 후다닥 일어날 수가 없지요. 꽤 긴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난 후 신자석을 한번 둘러보았는데, 제 눈에 ‘확’ 띄는 자매님 한분이 계셨습니다.
다른 신자들에 비해 표정이나 자세가 너무나 달랐습니다.
다른 분들의 모습은 천태만상이었습니다. 꽤 긴 침묵시간을 못 견뎌 몸을 뒤채는 사람, 심심하다보니 주보를 뒤척이는 사람, ‘빨리 집에 가야 하는데’ 하는 얼굴로 자꾸 시계를 보는 사람, 기다리다 못해 먼저 일어서는 사람...
그러나 그 자매님의 얼굴은 너무나 평온했습니다. 그 얼굴은 기쁨의 빛으로 가득 찬 나머지 광채까지 났습니다. 눈을 감았음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미소 짓는 듯 했습니다. 한 마디로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참된 위로, 참된 평화, 참된 휴식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하게 제시하고 계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우리가 행복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 다니지만 미사 보다 더 큰 행복은 없습니다. 우리가 특별한 그 무엇을 찾아 여기 기웃 저기 기웃거리지만 성체성사보다 더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기적을 찾아 정처 없는 순례를 거듭하지만 성체성사야말로 기적입니다.
매일의 미사 중에 우리는 기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에로, 슬픔에서 환희로, 좌절에서 희망으로, 죄의 종살이에서 자유에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건너가는 은총의 파스카 축제, 기적 중의 기적이 바로 우리가 매일 봉헌하는 미사입니다.
매일 기적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데, 또 다른 기적을 찾아 헤매 다니는 것은 웃기는 일입니다.
이른 아침, 일출 무렵, 풀잎 끝에 맺혀진 이슬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참으로 영롱합니다. 정말 눈길을 끕니다. 그러나 그 순간은 잠시입니다. 아침 해가 떠오르면 즉시 말라버립니다.
이른 아침, 강가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바라보신 적이 있습니까? 대단합니다. 정취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은 찰나입니다. 아침 해가 떠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 눈앞에서 그 자취를 감춥니다.
우리가 찾아 헤매는 인간적인 위로가 그렇습니다. 여기 저기 위안거리를 찾아 숱하게도 헤매 다녀보지만 대체로 다 부질없는 것들입니다. 부초 같은 것들입니다. 연기처럼 사라져버리는 것들입니다.
보다 영속적인 대상, 보다 가치 있는 대상, 보다 오래 가는 대상을 찾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 다 사라질 것입니다. 자취 없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인연들도, 우리가 목숨처럼 놓기 싫어하는 물건들도 덧없이 우리를 떠나갈 것입니다.
오직 마지막에 남는 것은 주님이십니다. 주님만이 영원하십니다. 주님만이 우리를 영원히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위로자이십니다. 주님만이 영원한 안식처이십니다.
연인들에게 있어 가장 달콤한 휴식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겠지요.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 가장 달콤한 휴식은 그분 앞에 자리 잡고 앉는 것입니다. 그분의 좋으심을 찬미하는 일입니다. 그분의 아름다움을 관상하는 일입니다.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무거운 짐을 지지 않는 인생이 있을는지요? 누구나 ‘힘든 짐’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나 혼자만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생각은 유혹입니다. 물론 실제로 무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마음먹기’입니다. ‘지고 갈 수 있기에’ 주셨음을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힘든 짐을 지지 않으면 인생의 깊이를 알 수가 없습니다.
“밤새워 울어 보지 않았다면 삶을 논하지 말라.” 어느 시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뇌 없이는 깨달음도 없다는 표현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짐이 힘겹고 무겁기에 예수님을 찾습니다. 삶에 아픔이 없으면 신앙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 인간 속성입니다. 실패하고 좌절하고, 반항하고 저항하다 가까이 계시는 주님을 만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볼 수 없고 들리지 않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삶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그분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기에 부활이 있습니다.
어느 봄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 (시인 김용택의 노래입니다.)
대림 제 2 주간 수요일 - 휴식 같은 사람
중국의 유명한 노자는 상창이라는 스승에게서 도를 배웠습니다. 어느 날 상창이 늙어서 죽게 된 것을 안 노자는 스승을 찾아가서 “사부님, 사부님께서 가상을 뜨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게 마지막 가르침을 주십시오.” 하고 부탁하자, 상창은 얼마 동안 노자의 얼굴을 보더니 입을 열고는 “내 이빨이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노자가 “사부님 혀는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상창은 “자, 이제 알겠느냐?”고 했습니다. 노자는 “사부님 알겠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하고 큰절을 드리고는 물러 나왔다고 합니다.
노자는 스승에게서 마지막으로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사람의 이는 강하고 딱딱하여 가끔 혀를 찌르고 상처 나게도 하지만 결국은 다 빠져 없어지지만 약하게만 보였던 혀만 오래 남는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겠지요. 다시 말해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은 오래 남겠지만 강한 성격의 소유자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과도 같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당신에게로 와서 그것을 배운다면 우리가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다. 예수님은 휴식 같은 친구입니다. 어떤 친구를 만나면 힘이 빠지기도 하지만 어떤 친구를 만나면 힘을 얻기도 합니다. 바로 그 차이가 그 사람이 ‘온유하고 겸손 하느냐’에 달려있다는 뜻입니다.
사랑의 실천이 뭐 대단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 배워서 예수님의 성격을 닮으면 저절로 주위 사람들에게 스트레스 안 주고 휴식과 힘을 주니 그것만큼 중요한 사랑의 실천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살아가는 것은 다 고통입니다. 모두 주위 사람들로부터 힘과 휴식을 얻고 싶어 합니다. 오늘 어떤 분이 전화를 하여 저에게 그러면 쌓이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저는 성체조배로 푼다고 했습니다. 경험해 보신 분은 알겠지만 성체 앞에 앉아있으면 모든 스트레스가 다 풀립니다. 성당은 그래서 마치 쓰레기장과 같습니다. 우리의 모든 고민과 어려움을 다 털어버리고 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겸손한 마음으로 인내를 갖고 다 참아내며 살 수 있고 그렇게 예수님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휴식과 힘을 주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오늘 더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휴식 같은 친구들이 되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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